햇살은 밝지만, 식탁은 조용하다
창밖에는 햇살이 밝게 쏟아지지만,
주방에는 그 빛이 환하게 미치지 않습니다.
이내 등불을 켜고, 나의 책상이자 가족이 함께 식사하던 식탁에 앉습니다.
방금 쿠키와 산책을 다녀오고,
시원하게 세수를 한 뒤
책도 좀 볼 겸 앉은자리입니다.
의자를 끌어당기며 반듯하게 자세를 취합니다.
버릇처럼, 나는 언제나 의자를 바싹 당겨 앉습니다.
이 자세가 익숙해서인지, 마음을 다잡고 싶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집 안은 조용합니다.
이런 고요한 시간엔 자연스럽게 아내가 떠오릅니다.
아내가 떠난 이후로, 이 조용한 흐름 속에서 그녀는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그리움은 고요함 속에서 더욱 짙어집니다.
혼자 식탁에 앉아 책을 펼쳐보지만,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앉은 이 자리는, 원래 아내가 앉던 자리입니다.
식사시간이면 늘 아내는 이 자리에,
그 옆에 내가, 맞은편에는 딸이 앉았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정해졌던
우리 가족의 식탁 자리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부터 아내의 의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휠체어가 대신했습니다.
그때부터는 항상,
아내를 태운 휠체어가 그 자리를 채우곤 했습니다.
지금은 휠체어도, 아내도 사라진
그 자리는 이제 나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여전히 아내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매일 밤 10시면
의례히 이 자리에 앉아
멀리 떠나 있는 아내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연들을,
추억 속에서 꺼내 아내에게 편지로 건넵니다.
아내가 그리운 식탁,
그리운 자리.
이 자리에 앉으면 옛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나는 아내를 위해
비록 솜씨는 없지만,
맛있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 하나로,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들며
아내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정숙 씨, 내 음식 맛이 어때요?”
라고 묻곤 했지요.
그러면 아내는
“맛있는데, 그건 당신이 나에게
음식을 해줄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야.”
하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 말이 참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그 말속에는, 자신의 아픔이 나를 힘들게 했다는
아내의 미안함이 숨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정성껏 만든 음식을
아내에게 건네고, 옆에 앉아 먹는 걸 도와주던
그 시절이 참 그립습니다.
이내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정선희 작가님의 "오십에 만든 기적"입니다.
중간에 일이 생기면 며칠을 건너뛰게 되지만,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면
조금씩, 다시 나를 찾는 기분이 듭니다.
시간은 기약 없이 흘러가지만,
이 자리에 앉아 책장을 넘기고,
문장 사이로 아내를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조용히 하루를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