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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아내의 자리, 나의 자리

햇살은 밝지만, 식탁은 조용하다

by 시니어더크


창밖에는 햇살이 밝게 쏟아지지만,

주방에는 그 빛이 환하게 미치지 않습니다.

이내 등불을 켜고, 나의 책상이자 가족이 함께 식사하던 식탁에 앉습니다.


방금 쿠키와 산책을 다녀오고,

시원하게 세수를 한 뒤

책도 좀 볼 겸 앉은자리입니다.

의자를 끌어당기며 반듯하게 자세를 취합니다.

버릇처럼, 나는 언제나 의자를 바싹 당겨 앉습니다.

이 자세가 익숙해서인지, 마음을 다잡고 싶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집 안은 조용합니다.

이런 고요한 시간엔 자연스럽게 아내가 떠오릅니다.

아내가 떠난 이후로, 이 조용한 흐름 속에서 그녀는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그리움은 고요함 속에서 더욱 짙어집니다.


혼자 식탁에 앉아 책을 펼쳐보지만,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앉은 이 자리는, 원래 아내가 앉던 자리입니다.

식사시간이면 늘 아내는 이 자리에,

그 옆에 내가, 맞은편에는 딸이 앉았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정해졌던

우리 가족의 식탁 자리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부터 아내의 의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휠체어가 대신했습니다.

그때부터는 항상,

아내를 태운 휠체어가 그 자리를 채우곤 했습니다.


지금은 휠체어도, 아내도 사라진

그 자리는 이제 나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여전히 아내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매일 밤 10시면

의례히 이 자리에 앉아

멀리 떠나 있는 아내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연들을,

추억 속에서 꺼내 아내에게 편지로 건넵니다.


아내가 그리운 식탁,

그리운 자리.

이 자리에 앉으면 옛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나는 아내를 위해

비록 솜씨는 없지만,

맛있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 하나로,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들며

아내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정숙 씨, 내 음식 맛이 어때요?”

라고 묻곤 했지요.


그러면 아내는

“맛있는데, 그건 당신이 나에게

음식을 해줄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야.”

하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 말이 참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말속에는, 자신의 아픔이 나를 힘들게 했다는

아내의 미안함이 숨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정성껏 만든 음식을

아내에게 건네고, 옆에 앉아 먹는 걸 도와주던

그 시절이 참 그립습니다.


이내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정선희 작가님의 "오십에 만든 기적"입니다.

중간에 일이 생기면 며칠을 건너뛰게 되지만,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면

조금씩, 다시 나를 찾는 기분이 듭니다.


시간은 기약 없이 흘러가지만,

이 자리에 앉아 책장을 넘기고,

문장 사이로 아내를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조용히 하루를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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