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장미가 피는 계절이면

2025.5.26 (월)

by 시니어더크


정숙 씨,

오늘부터는 '당신에게 쓰는 편지'를 수필문으로 바꿔서 써보려 합니다.

당신도 국문학을 공부하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듯이 저도 이제부터는 수필문을 써서,

매일매일 당신에게 띄워 보내려 합니다.

당신을 향한 저의 모든 마음, 진심을 담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으로 쓰는 수필이라 많이 서툴고 부족하겠지만, 하나하나 고쳐가면서 쓰도록 할게요.

창피한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당신 만큼은 따뜻하게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기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아주 훌륭한 수필문이 나오지 않을까요?

아셨죠, 정숙 씨?



[ 수필의 시작 ]


따뜻한 날씨가 며칠째 이어진다. 이런 날이면 곧 여름이 오겠다 싶다.

점심을 먹고 속이 더부룩하여, 강아지를 데리고 소화를 시킬 겸 동네 산책에 나섰다.

길 옆으로 피어있는 각가지의 꽃들이 참 다채롭다.

봄의 여왕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이름 모를 꽃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낸다.

엊그제만 해도 하얗게 만개한 이팝나무가 하얀 꽃잎을 눈처럼 날리더니,

오늘은 그 자리에 선연한 빨간 장미가 피어있다.


빨간 장미꽃,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자, 그 사람도 좋아하는 꽃이다.

조금 오래된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그 사람과 함께 걷던 어느 5월의 거리.

바람이 살짝 불었고, 장미꽃잎이 몇 잎 우리 발끝에 떨어졌던 날이었다.

"꽃은 피는 것도 예쁘지만, 질 때도 참 고와요."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며,

떨어진 꽃잎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나는 괜히 그 옆에 서서 그 사람의 옆모습을

더 오래 쳐다보았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 다가오면, 나는 늘 장미꽃다발을 준비했다.

빨간 장미에 하얀 안개꽃을 곁들인 꽃다발. 그 사람은 받자마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꼭 안고 방 안에 조심스레 놓곤 했다.

"이 조합이 제일 예쁘잖아요."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오늘처럼 햇살이 좋은 날, 장미가 피어 있는 이 길을 그 사람과 걸었다면 어땠을까.

함께 보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지나온 시간이 문득 그리워진다. 손을 꼭 잡고 걷던 길, 웃음소리, 그리고 나란히 피어있는 장미들.


계절은 변함없이 순서를 지켜가고, 장미는 이 번에도 꽃을 피웠다.

그 사람도 이 빨간 장미를 그리워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이 길 위에서, 장미꽃 사이로 그리움을 걷는다.


예전에는 손을 꼭 잡고 거닐었던 길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휠체어를 밀고 함께 걷는 길이 되었다.

느린 속도였지만, 우리는 그만큼 오래 머물며 꽃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장미가 많이 피어있네요."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나는 장미꽃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방향으로 휠체어를 조금 더 돌려주었다.

그 순간이 참 좋았다.

빠르게 걷는 사람보다, 멈춰 서서 더 오래 꽃을 바라볼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 있으니까.


그날의 장미는 빨갛고, 그 사람의 눈빛은 잔잔했다.

햇살은 조용히 내 등을 감쌌고, 나는 느릿하게 바퀴를 굴리며 그 사람과 봄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었다.

지금 그 장면을 떠올리면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장미 산책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혼자 그 길을 걷는다.

장미는 다시 피었고, 바람도 다시 분다.

다만, 휠체어 위의 그 사람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을 위한 장미꽃을 준비한다.

산소에 갈 때면 어김없이 장미와 안개꽃을 곁들인 꽃다발을 준비한다.

그 앞에 서서 꽃보다 곱던 그 사람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건넨다.

"여보, 장미가 다시 피었어요. 당신이 좋아하던 그 색으로요."


계절은 또다시 바뀌겠지만, 장미가 피는 계절이면 그 사람 생각이 유독 더 짙어진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그 사람은 장미꽃 사이로 미소 짓고 있을 것 같다.

그 모습을 그리며 나는 오늘도, 강아지와 조용히 걸어간다.

그 사람이 보고 싶어 했던 그 길 위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