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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분이네 Dec 18. 2023

우리 반 애들이 내 브로콜리를 손으로 집어먹음에 감사

아이들이 브로콜리를 손으로 집어먹을 정도로 친근한 선생님임에 감사.


점심시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데친 브로콜리가 나왔지만 식판이 이미 가득 차서 따로 둘 자리가 없었다. 흰 밥 위에 얹었다. 밥 반을 덮은 브로콜리에 초장도 적당히 뿌렸다. 줄기의 뽀득함과 잎 부분이 알알이 흩어지는 식감이 재밌어서 브로콜리가 나오는 날은 먹기 전부터 신난다. 잔뜩 기대에 차서 한 입 먹으려고 하는데 우리 반 여자 아이 셋이 내 앞으로 왔다. 대뜸 '선생님 브로콜리 먹어도 돼요?'라고 묻는다. 디저트 먹고 싶어서 물어보는 아이들은 있었는데 브로콜리 먹어도 되냐고 묻는 아이들은 처음이다. 처음에는 황당하였지만 오죽 먹고 싶었으면 그랬겠거니 하고 한 아이에게는 젓가락으로 먹여주기도 했다.(나는 아직 한 입도 제대로 먹지 않은 깨끗한 젓가락이었다.) 건네주는 사이 한 아이는 거침없이 손가락으로 브로콜리를 집어간다. 크기도 거대한 것을 집었다. 조금 놀란 듯했지만 휘적대는 건 예의가 아니라 생각한 건지, 큰걸 원했던 건지 아이는 그대로 자기 입으로 가져간다. 나머지 한 명도 손으로 내 브로콜리를 집어먹는다. 그게 웃긴 걸 알아서 지들끼리 웃으면서 간다. 당황스럽긴 했으나 바로 옆에 있던 슈크림 붕어빵을 탐내기보다는 건강한 맛의 브로콜리를 좋아하는 입맛이 귀여워서, 그 먹고 싶은 마음을 솔직하게 보일 수 있는 선생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고마웠다. 나중에 그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들도 브로콜리를 받아먹고 싶었는데 자율 배식대의 줄이 너무 길어서 말았다고. 그런데 밥 위로 수북이 쌓인 내 식판을 보고 얼른 달려왔다고 한다. 진짜 웃기는 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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