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상이는 여전히 밉다. 1학기에도 체육 수업 재미없다며 나가려고 하고 드러눕는 게 일상이던 늠(남)의 밉상이. 늠이라 부르면서 선 긋고 싶다. 아이들이라면 다 귀엽고 순박한 줄만 알았는데 고작 3학년짜리가 하는 발칙한 말들과 못된 장난들은 내가 생각이 짧았구나 하고 깨닫게 해준다. 종종 거미와 사마귀를 잔인하게 죽이고 그걸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지 않나, 친구들을 심하게 때리고 괴로워한 모습을 보고 낄낄거리며 웃지 않나. 내가 잘 못 가르쳐서 아이가 이러는 건가 싶어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를 해봤지만 담임 선생님도 많이 힘들어하시는 모양이다.
'밉상이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지도할게요'
축 쳐진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마음 아프게 들린다. 아이가 이런 게 담임 선생님 탓이 아닐 텐데, 그걸 담임 선생님 책임으로 돌리는 선생님의 말씀이 무거워서 더 말을 못 꺼냈다. 일주일에 두 시간 만나는 나와 달리 아이의 1년을 감당하는 선생님은 얼마나 참고 있을까. 어쨌거나 사랑이 필요한 아이라며 서로를 도닥이고 더 큰 일이 벌어지지만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오늘은 뒷 구르기를 배웠다. 등장부터 '개노잼이다!' 시원하게 외치며 들어오는 밉상이. 체육 시간은 재밌는 시간이 아니라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배우는 시간이라 가르쳐줬는데도 못 들은 체 한다. 제일 좋아하는 야구가 아니면 모든 활동은 다 재미없고 배우기 싫다고 버티는 아이는 시작부터 김빠지게 했지만 나는 그런 말에 지지는 않으니까! 스트레칭을 야무지게 하고 경사 면에서 뒷 구르기, 평평한 바닥에서 뒷구르기 순으로 진행했다. 아이는 수업 듣기 싫은 티를 팍팍 내며 다른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아이는 배우기 싫을 때, '아, 나는 이런 거 필요 없는데, 이미 너무 잘 하는데!' 라며 허세를 부린다. 이번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오! 이미 잘 하는가 보구나! 그러면 친구들 앞에서 시범을 보여주겠니?' 나는 순진하게도 작은 도움을 부탁했다. 시시해서 경사 면도, 선생님 도움도 필요 없다던 아이. 한사코 거절하고 평지에서 혼자 구르기 시작했다. 몇 번 뒤로 제껴지나 싶었지만 구르진 못했다. 태권도장에서 만들어진 콩벌레 아이들처럼 뒷 구르기로 굴러다닐 수 있을 줄 알았던 아이는 하나도 못 하는 왕초짜였다. 이 녀석, 부끄러워서 그렇게 허세를 부렸구나. 속으로는 살짝 비웃으면서 다른 아이들 보조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일이 벌어졌다. 제 맘 같지 않게 흘러가는 뒷 구르기에 심통이 난 밉상이가 다른 아이 구를 때 손을 슬쩍 넣어서 등을 아프게 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많이 아팠는지 울고 있었다. 곧바로 밉상이에게 아이를 달래라고 했지만 대충 손으로 훑는데 그쳤다. 내가 주의사항 말 할 때 지독하게 딴 짓 하던 모습이 떠올라 화가 나서 따로 불렀다.
'매트 위에는 몇 명만 올라가랬지?'
'5명'
말없이 쏘아보니
'4명.. 3명...2명' 슬그머니 줄인다.
'다시 물을게, 매트 위에 몇 명만 올라가랬지?'
'1명'
'다시 물을게. 매트 위에 몇 명만 올라가랬지?'
'1명이요.'
옳은 답은 절대로 한 번에 말 안 하겠다는 뒤틀린 심보가 보여 더 괘씸하다.
'너는 아주 못됐어, 내가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해서 아이가 크게 다칠 뻔 했잖니. 아까부터 다른 반 수업을 계속 쳐다보던데, 그럴 거면 그냥 저 반에 가서 수업 들어. 나도 너 같은 애 가르치기 싫어. 내 수업 잘 따라오는 친구들이랑만 수업할거야.'
라고 솔직히 말하고 싶지만 이건 마음 속에 담아두고
'야구 선수가 될 거라며? 내가 봤을 때는 너는 유망한 야구선수가 될 거 같은데 그치? 그런데 이렇게 사소한 체육 시간에 사고 쳐서 커리어가 끊기고 싶니? 뒷 구르기가 잘 안 돼? 선생님이 도와주면 잘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렇게 할까?'
잔뜩 꼬아 말하고 말았다. 밉상이는 끄덕끄덕 하더니 뒷 구르기를 자기도 해 볼 거라고 자세를 잡는다. 영 택도 없이 드러 눕기만 하지만 번번이 되돌아와서 자기 자세 봐 달라고 한다. 이 아이 만나고 처음 있는 일이라 낯설다. 조금은 나아진 건가 하는 기대도 아주 조금 했다.
밉상이네 반 수업, 그 후의 한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왔다. 오후에 수업을 할 아이들이 체육관 앞에서 모여 놀고 있었다. '선생님 오늘 체육 뭐해요?' 뻔하고 지독한 질문을 또 한다. '뒷 구르기 할거야.' '으아, 재미없겠다!' 합창부처럼 입모은 소리가 들린다. 지겨운 이 반응은 대꾸도 힘들어서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곁에 있던 밉상이는 '오늘 재미없는데 재미있어!'라고 한다. 와우, 굉장히 뻔한, 주인공의 마음이 바뀌어서 생전 안 하던 말로 마무리하는 소설의 끝처럼 말한다.
나는 밉상이가 아직은 많이 밉다. 내가 열심히 준비하는 수업에 건건이 태클 거는 건 밉지만 지 성에 안 차는 수업에서 그래도 재미를 찾으려고 하는 걸 보면, 나도 그 미운 아이에게서 좋은 점 찾으려고 애쓰고 싶어졌다. 말 조금만 더 잘 들으면 더 좋을텐데. 나만의 욕심이겠거니하고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