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선택한 결과를 책임지게 되며 만족스러울 때가 있는 반면에 고통스러운 경험을 안겨주는 결과도 있다.
수천번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업과 삶의 방향이결정된다.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다양한 사업에 도전하게 된다.
무에서 시작한 심플한 사업은 시장 상황과 트렌드에 따라 변화가 필요하다.
시행착오를 겪을수록 심플하게 정리되면 좋지만 사업은 절대로 심플하지 않다.
복잡하고 어려운 사업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고 싶을 때가 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정리해 보고 싶었다.
창업을 하기 전까지 괜찮은 보수를 받고 일했다.
창업은 단순히 더 많은 수입을 위해서만은 아닌 것 같다.
창업 단계 이익을 생각하면 창업 전 생활이 더 나았다.
안정적인 중견기업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근무했다.
중소기업에서 임원 타이틀을 달고 근무했다.
대기업 또는 외국계 기업의 부서장 러브콜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창업에 대한 갈증을 느끼면서 창업 준비 기간 동안 프리랜서로 소득을 유지했다.
창업 전 프리랜서로 근무하며 적지 않은 소득이 발생했으며 자본금을 확보하기에 충분했다.
일을 선택함에 있어서 이익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냥 즐겁게 하고 싶을 일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창업 계기
삼성전자 프로젝트 투입 당시 영국 회사에 컨설팅을 맡기는 것을 보고
내가 컨설팅 회사를 운영해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그리고 꼭 만들어 보고 싶은 플랫폼도 있었다.
2015년에 창업 계획과 플랫폼 개발 준비를 시작했지만 창업 자금이 부족했다. 정부 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기관(연세대학교)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국내 최초의 위치 기반 모바일 검색 시스템이었지만(현재의 네이버 어라운드), 어느 곳에서도 검증되지 않은 사업으로 사업 성과(매출)를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아이러니하다. 지금 나는 심사역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심사역 중에 기술 검토가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2015년, 사진 및 영상의 메타 정보를 활용해 위치 기반 데이터를 자동으로 생성하고검색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술을 설명했으며 비대면 주문 예약 기능을 추가해 수익화하는사업을 발표했지만 가능성을 내다본 심사역이 없었다.
대부분 비교 대상이 없는 검증되지 않은 사업을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런 플랫폼은 대기업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닌가요?"
이런 황당한 핀잔을 늘어놓는 심사역도 있었다.
2017년 4월 20일, 자본금 5,000만 원으로 무작정 법인을 설립했다. 거래처도 없었으며 막연했다.
회사소개서를 작성해서 몇몇 기업에 뿌렸지만 고정 거래처가 있는 기업들은 이제 막 창업한 기업에 외주를 맡기기 쉽지 않다. 2017년 하반기부터 개인적으로 프로젝트를 의뢰하던 기업들이 외주 업무를 주기 시작했다. 법인 설립 목적과는 달랐지만 매출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외주 사업 매출로 기업을 유지했다.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 월급을 더 많이 받는 것보다 중요하다.
창업 후 프리랜서 시절의 절반 이하 소득이 발생했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웹에이전시에서 만났던 후임들이 연차가 쌓이고 대기업 PM으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외주 일을 넘겨주기 시작했다. 실무자들은 정규직 근무 형태 보다 프리랜서를 선호하는 분위기라 채용 사이트에 유료 기업 회원으로 등록하고 HR팀을 구성해 약 1300명의 실무자 인력풀을 형성했다.
신규 구축 프로젝트는 2건에서 최대 5건을 유지했으며 직접 관리할 수 있는 프로젝트 인원은 최대 20명 수준이었다. 투입 후 현장 사업 이슈 관리, 거래처 관리 및 영업 관리, 투입 인력의 애로사항 및 이슈 해결 등 에이전시 사업 관리자들이 담당하는 업무를 처리했을 때 최대 20명까지 커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익률은 너무 낮았다. 재경비와 사무실 운영비를 제외하면 이익률은 5%도 되지 않았다. 1차 협력사 또는 SI 기업을 거쳐서 내려오는 단가는 턱없이 낮았으며 프리랜서들이 희망하는 단가를 맞추기 쉽지 않았다. 매출은 늘어났지만 빛 좋은 개살구란 말이 딱 이럴 때 쓰는 말 같았다.
SI 재하청을 거절하고 직접 수주한 사업만 진행하기로 했다.
창업 후 3년 동안 창업 전 연봉의 절반 이하 수준을 유지하면서 기업을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매출은 늘었지만 소득은 변화가 없었다. 창업 후 3년 뒤 남 좋은 일만 시키는 재하청은 거절하고 직접 수주한 일만 맡았다. 직접 수주한 사업의 성과를 높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1년에 5건 미만의 외주 사업만 수주하고 직접 실무에 참여하며 이익률을 높였다.
고급 경력직 이상의 실무자들과 일하며 프로젝트 성과에 집중하기로 했다.
변수는 항상 존재한다.
사업이 쉬우면 직장을 선택하는 사람보다 창업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창업을 하면 변수가 더 많기 때문에 비교적 리스크가 적은 직장생활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당연하다. 치밀하게 계획한 사업도 변수는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2021년 10년 차 이상의 실무자들만 고용했다. 하지만 복잡한 구조의 신규 프로젝트는 경력이 높은 실무자들도 투입을 거부하거나 꺼려했다. IT 호황기에는 경력자들도 조금 더 쉬운 일을 선택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요구조건을 모두 맞춰줘도 난이도가 높은 프로젝트에는 항상 핑계를 만들어 중도 하차하는 실무자들도 많았다.
조직화된 기업에서 경영진의 실무 참여율이 높을수록 기업 성장은 둔화된다.
코로나 19로 인해 상주 프로젝트를 비상주로 전환되는 분위기였다.
이슈가 있는 프로젝트를 대형 SI 업체들이 거부하며 중소기업으로 넘어온 게 아니었나 싶다.
실무자가 도망간 프로젝트는 어떻게든 이슈를 해결하고 직접 성과를 만들어야 했다.
프리랜서들이 기피하는 업무를 직접 처리하며 이익률을 4배 이상 끌어올렸지만 이익률 대비 기업 성장은 둔화된다. 에이전시 근무 시절, 매일 야근하며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처리했던 경험과 노하우가 발휘하게 되는 시기였다. 4인 이상의 일을 처리하며 매월 순이익 4,000만 원 이상을 혼자서 만들어냈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수익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지만 업무 참여율이 높을수록 수입은 늘어났다.
조직화된 기업이 성장하는 구조는 아니었다.
조직을 키우며 기업을 성장시킬 것인가?
이익률을 높이고 1인 기업 형태로 운영할 것인가?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을 보유하고 1인 기업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하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회사는 조직을 키우고 성장시켜야 하는 플랫폼 사업과내가 직접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많은 1인 기업의 형태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조직을 키워야 하는 기업에는 성장 단계별 공식이 존재한다.
여러 번의 사업 경험을 통해 단계별 투자, R&D, 투자 유치를 통해 조직을 키우는 방법을 습득하게 되었다.하지만 스트레스를 덜 받고 내 능력만으로 이익률을 더 높일 수도 있다.
조직을 키워야 하는 플랫폼 사업과 1인 기업 형태의 업을 분리하기로 했다.
독립 법인을 설립해 플랫폼 기술 이전 계획을 세우고 플랫폼 사업을 함께 키워갈
대표이사 영입 계획을 세웠다. 플랫폼 사업 대표이사 인터뷰를 시작했다.
무의식이 지배하는 안정적인 삶 VS 스스로 선택한 도전적인 삶
반복되는 일을 처리하다 보면 무의식이 지배하는 삶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그리고 진심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한다.
삶의 목표, 방향, 즐거움 등 그러한 것을 이루기 위해내가 하고 있는 일이 진심으로 내가 원하는 일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고소득 직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IT 분야 근무 22년 차, 사업체 운영 13년 차에 접어든다. 그중 법인 기업 운영만 10년 차로 현재 운영 중인 회사는 창업 후 7년 차에 접어든다. 청소년기부터 자수성가한 사업가들의 책을 즐겨 읽었던 것 같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은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최초 창업은 24살이었다. 사업 경험이 많지 않은 어린 사업가는 더 많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요즘처럼 창업 정보, 경영 정보를 찾기 쉽지 않았던 시절이라 창업이 쉽지 않았다.
사업이 힘들어지면 취업을 선택했다.
직장에서 분업화되어 있는 업무는 중소기업을 운영해 본 입장에서 부담이 적은 일이었다.
에이전시 근무 시절에는 적게는 프로젝트 3개부터 많게는 5개까지 소화했다.
2010년, 웹 에이전시에서 PM과 기획 PL 역할을 담당했던 시기만 하더라도 3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관리하며 야근하며 주요 화면 설계까지 담당하고 부서장 역할까지 병행했다.
매일 오전 8시 출근, 저녁 8시 전에는 퇴근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 시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프리랜서로 근무하거나 비상주 외주 사업을 맡는 경우 3~4개의 프로젝트를 거뜬히 처리할 수 있는 것 같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설계하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다른 실무자들보다 복잡한 시스템을 설계하고 결과를 만들어 가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설계, 디자인, 퍼블리싱을 모두 담당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점진적으로 큰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면서 한 분야만 잘하게 되면 되기 때문에 사업보다는 직장생활이 더 쉬웠다.
첫 번째 사업을 실패하고 쇼핑몰 솔루션 회사에 입사 후 사업체 운영 경험을 살려서 일하다 보니 다른 직원들보다 훨씬 많은 성과를 달성했었다. 20대 후반에 대리로 입사해서 고속 승진, 6개월 만에 실장을 달고 1년만에 임원 제의를 받았다. 40대 임원들의 반발이 심했다.사업 보다는 확실히 직장생활이 더 수월 하지만 성과 보다는 기업 내 정치에 휘둘리다 보면 창업에 대한 갈증이 생기기 시작한다. 조직 성장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잡념을 없애고 오롯이 내가 가고 싶은 일을 성장시키며 전념할 수 있는 사업은 분명히 매력이 있는 일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만 나이 39세가 되는 해에 청년 창업 기업으로 법인 설립을 했다. 청년이라기보다는 중년에 가까운 나이지만 기보에서 만 39세까지 청년으로 인정되어 보증비의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정부 지원 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아 만들고 싶었던 플랫폼 개발을 착수했다. 총 개발비의 1/10 수준이었지만 시제품 개발 착수 의지를 다지기에 충분했다. 외주 개발 이익을 재투자하고 직접 수주한 프로젝트 비중을 늘리며 기업을 운영했다. 창업 후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다.
창업 전, 10년 사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삶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창업 후에도 여전히 외주 사업을 처리하며 직정인과 같이 반복되는생활을 하고 있었다. 습관처럼 외주 개발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창업 시 계획했던 사업과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변화가 필요했으며 IT 시장의 인력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해외 시장 답사 겸 휴식을 갖기 위해 1개월간 KL-조호바루-싱가포르를 경유하며
싱가포르 법인 컨설팅 기업과 개발업체, 현지 개발자들과 미팅을 했다.
현지에서 만난 사업가들과 개발자들의 삶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마지막 1주일은 가족들과 휴식을 취하고 싶어서
코타키나발루를 경유했다.
1개월의 해외 출장은 사업과 삶을 돌아보는 중요한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2023년 2월 1개월간의 해외 출장 후 슬럼프를 격기 시작했다.
슬럼프는 짦게 지나간다고 하는데 슬럼프라기보다는 번아웃에 가까웠다. 그런데 번아웃 증상을 찾아보니 번아웃과 똑같지도 않다. 그냥 번아웃인가 보다 하고 1년이란 시간을 흘려보내며 현재의 내 삶과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라면 완벽하다. 하지만 여기서 혼선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잘하는 일은 특정 조직이나 팀에 존속되어 있어야 하는 일이지만 내가 추구하는 삶은 공간,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일이다.
내가 잘하는 일과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달랐다. 직장 생활 중 길들여진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