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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 Apr 03. 2020

떠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

<브루클린>이 되새겨준 기억들

비행기도 대중화되기 전인 1950년대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홀로 이민을 감행한 에일리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 21살의 나이에 '서울 유학'이라는 것을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들이 익숙하게 다가왔다.


아일랜드 작은 도시의 식료품점에서 일하던 에일리스는 그녀를 아끼는 신부님의 도움으로 미국에 갈 기회를 얻는다. 요즈음 젊은이들의 도시 간, 국가 간 이동에 가장 흔한 이유가 유학이라면 취업은 아마도 두번째 순위쯤에 올 것이다. 그러나 <브루클린>의 배경인 1950년대에 대학에 가는 여자는 아주 드물었을 것이다. 아마도 취업이나 결혼이 대표적인 이유였으리라 짐작해본다. 에일리스 또한 대도시에서의 취업과 더 좋은 직업을 위해 뉴욕으로 향한다. 영화는 에일리스의 아일랜드 생활을 잠깐만 보여주고 극 초반부터 그녀를 배에 태워보내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는 슬픔의 몫은 관객에게 거의 나누어지지 않는다. 작별인사를 하는 언니 로즈의 진심어린 눈빛에서 에일리스와 언니의 애정깊은 사이를 눈치챌 수 있을 뿐이다.


미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에일리스는 신고식이라도 치르듯 뱃멀미한다. 같은 선실을 쓰는 여자가 에일리스를 돌봐준다. 마치,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타인의 손길 없이 홀로 생존하기란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브루클린에 도착한 에일리스는 하숙집에서 머물며 백화점 판매원으로 일한다. 이 대목에서는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버는 것이 어른의 상징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울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 앞 빵집에서 일했던 개인적인 기억이 떠올랐다. 고향에서는 야무지게 일했었지만 낯설고 거대한 뉴욕에서 쭈뼛쭈뼛 머뭇대는 에일리스의 모습이 짠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민자 중에서도 에일리스는 운이 좋은 편이다. 그녀는 한 파티에서 토니를 알게 되는데, 토니는 앞으로 에일리스가 브루클린을 'Home'이라고 부르게 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무엇보다 그가 좋은 남자이며, 그보다 '좋은 사람'이라는 게 에일리스의 마음을 붙잡은 이유일 것이다. 김혜리 평론가님이 <브루클린> 평론에서 지적한 것처럼, 토니는 야간대학 수업이 끝나고도 공부를 더 해야하는 여자친구를 위해 집에 갈 때까지만 동행하겠다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토니 덕에 미국에 빠르게 적응해가고, 결혼까지 감행하지만 에일리스의 마음 한 켠에는 바다 건너 아일랜드에 있는 엄마와 언니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이 자리잡고 있다. '내가 없는 동안 가족한테 심각한 일이 생기면 어쩌지?'라는 걱정과, 가족과 함께 사는 친구들에 대한 출구 없는 부러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귀가해도 되고, 애인을 집에 데려올 수 있는 자유로움이 독립의 기쁨이라면 앞서 말한 걱정과 부러움은 혼자 사는 사람의 필연적인 과제다.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그런 감정의 크기는 물리적 거리에 비례했다. 독일 교환학생 시절, 통화나 카카오톡으로 좁혀지지 않는 한국과의 거리에 종종 두려움과 공허감을 느꼈다. KTX를 타면 3시간 만에 갈 수 있는 서울과 부산의 거리는 사실 무척 가까운 것이었다는 상대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일년에도 몇번씩 비행기를 타는 2020년에도 지구 반대편이라는 거리가 체감되는데, 에일리스가 살던 1950년대는 훨씬 더하지 않았을까. 한편, 이를 고려하면 1800년대 후반이 배경인 <작은 아씨들>에서 조가 미국에서 유럽으로 떠나는 여정(에일리스와 반대다)이 얼마나 큰 용기를 수반한 것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사건 없는 성장은 없다고 말하듯, 영화는 에일리스로 하여금 떠난 자로서 몇 배로 무겁게 느낄 수밖에 없는 상실의 경험을 겪게 한다. 홀로 떠나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죄책감이 되는 그런 사건이다. 고개를 흔들어 꿈에서 깨어나듯, 에일리스는 짐을 싸서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아일랜드에서, 토니에 상응하는 '썸남'도 만난다. (tmi: <어바웃타임>의 팀이 갑자기 등장한다) 익숙함과 편함에 녹아들어가고 얼핏 아일랜드에 다시 정착할 것처럼 보이던 에일리스는, 보수꼰대참견쟁이인 켈리 아주머니의 선을 넘는 간섭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깨닫는다. "여기가 어떤 곳인지 잊고 있었네요."라고 말하며 그녀는 뉴욕으로 떠나는 배를 예약한다.


엄마와의 마지막 식사자리에서 에일리스는 사실 뉴욕에서 결혼을 했으며, 다시 떠나기로 했다고 고백한다. 엄마는 딸을 비난하지도 응원하지도 않는다. 에일리스도 기대하지 않는 것 같다. 두 사람은 앞으로 서로를 다시 보기 힘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앞서 일어났던 일을 통해 분명히 짐작하고 있다. 에일리스와 엄마의 작별 장면은 영화를 통틀어 가장 슬펐다.


브루클린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에일리스는 몇 년 전의 자신과 똑같이 설렘과 두려움의 복합적인 표정을 하고 있는 이름모를 아가씨를 본다. 자신에게 건네졌던 조언처럼, 에일리스는 그녀에게 뱃멀미와 향수병을 통과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곧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브루클린>의 한국 포스터는 멜로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영화는 완벽한 성장영화다. 성장영화에 죽고 못살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다 컸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런 류의 영화를 찾아보지 않게 되었다. 확실히, 10대 소녀의 성장을 다룬 <레이디 버드>나 <판타스틱 소녀백서>를 보면 이전만큼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에일리스를 보며, 나는 그녀처럼 제 2의 'home'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고향에서는 절대 내 꿈을 이룰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것만은 그녀와 똑같다. 그러나, 언젠가 서울보다 더 먼 곳에 가게 된다면, 에일리스만큼 뱃멀미와 향수병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도록 행운이 따라줄까? 대답은 잘 모르겠지만, 인생의 어떤 경험들은 발딛은 곳을 떠나지 않고는 결코 얻어질 수 없다. 그것만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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