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 요양병원 이야기 (2018년도에 돌아가심)
친정엄마는 요양병원 생활 2년 동안 4인실에 있었는데, 정말 수많은 간병사가 바뀌었다. 간병사 1명이 4명의 할머니를 24시간 돌봤다. 그 병원은 신축병원이고, 여러 가지 시설도 상당히 좋았다. 그래서 간병비도 다른 요양병원에 비해 조금 비쌌는데, 간병비로만 월 150만 원 정도 들었다. 나중에 정부에서 조금 환급받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6인실에 엄마를 모실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그 병실에만 2년을 있었다.
간병사들은 대부분은 60대 초중반의 한국인이고,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니도 있었다. 어쩌면 부양을 받아야 하는 모습이었는데, 간병사로 일하러 오셔서 며칠 하다가 그만두었다.
간병사들은 조선족도 서너 명 왔었고, 그중에는 탈북민도 있었다. 어느 날 병원에 가니, 또 새로운 간병사가 와 있었다. 다른 간병사들보다 젊어 보였고 말쑥한 모습이었다. 50대 중반 정도로 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40대 중반이었다. 이렇게 젊은 분도 간병사로 일하는구나 싶었다.
그녀는 그 병실의 모든 할머니들에게 세세하게 불편함을 도와주었고, 화장실 청소며 냉장고까지 깨끗하게 청소하고 있었다. 간병사들은 할머니들 식사시간이 가장 바쁜데, 다른 분들은 양손을 다 사용하기에 스스로 식사를 했지만, 엄마는 도와주어야 했다. 다른 할머니들이 편안하게 식사를 하도록 도와준 다음에 엄마에게 와서 반찬을 이것저것 숟가락에 얹어주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냉장고에 상한 음식이 없는지 살피면서, 유통기한이 지나고 이미 상해 가는 간식은 못 먹는다고 다른 할머니에게 버리자고 하니까 그냥 두라고 호통치는 바람에 도로 냉장고에 넣었다. 나중에 할머니가 잘 때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할머니는 어차피 냉장고에 그런 간식이 있는 줄도 기억을 못 하는데 왜 굳이 물어봤냐고 하니까, 할머니의 아들이 가져온 간식인데, 그래도 물어보고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 그 병실에서 간병하면서 나와는 제법 편안해질 무렵, 잠깐 쉬는 시간에 내가 집에서 가져온 간식을 몇 번 주었다.
엄마에게 정성을 다하는 간병사들을 보면 뭐든 주고 싶었다. 엄마를 잘 봐달라는 뇌물성 먹거리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들도 맛있는 간식도 먹어가면서 일을 하기 바랐기 때문이다. 아직 젊은 그녀를 위해 1+1로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 있으면 그녀에게 사 주었다. 엄마에 대해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이어갔다.
나는 프리랜서 기자로도 오랜 시간 일을 했는데, 그녀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기자의 본능이 작동했다. 그녀가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북한의 생활에 대해 궁금했다.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는데 그녀는 흔쾌히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친정아버지를 집에서 15년 동안이나 돌봤다고 했다. 거동이 거의 불편해서 누워서 대소변을 받아냈다고.
"북한에는 이렇게 노인전문 요양병원이라는 곳이 아예 없어요. 거동이 불편하지만 특별한 치료법이 없으면, 집에서 돌보다가 대부분 돌아가세요." 그 긴 세월 동안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싶었다. 혹독한 간병생활을 담담하게 얘기해 주었다. 엄마가 병으로 빨리 돌아가셔서 아버지 간병은 그녀 몫이었다.
중국을 통해서 한국으로 왔는데, 혈혈단신으로 혼자 산다고 했다. 북한에서 결혼도 했는데, 아이가 중국에 있는지 아직 북한에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북한에 있을 때 엄청난 고문을 받았는데, 성고문도 있었는 것 같았다.
지금은 한국에 살면서 국가에서 나오는 지원금과 일하면서 버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여러 가지 내용들을 들었지만 이 글에서 다 알릴 수는 없다.
그녀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병실에 있었는데, 어느 날 그만두었다. 병실의 모든 할머니들을 살뜰하게 보살피면서 병실, 화장실 등 청결상태도 깨끗해서 그녀가 떠났을 때 아쉬움이 컸다.
그녀를 보며 나도 어디를 가나 내가 더 머물러 주었으면 하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