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독서토론회는 가족들의 가슴을 깨운 내면의 대화
어젯밤에 드디어 가족독서토론회를 했다. 독서에 갓 입문한 가족이 어설프게나마 가족독서토론회를 가진 것은 새로운 희망의 출발점이었다. 가장이 중심을 잡고 가족들을 보듬으니 비로소 가정의 질서가 잡히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에게 열 번의 잔소리보다 독서를 통해 전달한 말 한마디가 아이 가슴에 스며든다는 걸 알게 해 주었다. 내가 아무리 호소해도 남편과 아이들에게 내 말이 전달되지 않았는데, 남편이 중심을 잡고 가슴에서 울려 나오는 말을 하니까 딸들도 움직였다.
3주 전부터 9일 저녁식후에 한다고 가족들에게 알리고 가족단톡방에 공지까지 올렸다. 그 시간에 모두 집에는 있었지만 작은 딸도 피곤했는지 낮부터 자고 있었고, 남편도 저녁식후에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약간의 실망감이 밀려왔지만 그렇다고 깨울 수도 없었다. 다음날 단톡방에 저녁에 독서토론회를 한다고 또 올렸다.
예전 같으면 어젯밤에 왜 약속을 안 지켰냐고 한 소리 했을 상황이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제 작은 딸이 아귀찜이 먹고 싶다고 해서 외식을 하고, 집으로 오니 8시 40분. 각자 씻고 거실에 모인 시간이 9시 40분이었다. 그 시간이면 나는 잠이 오는 시간이지만, 어떻게 잡은 독서토론회인데 싶어서 거실 티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고 캐모마일 차를 준비했다. 거실 형광등을 꺼고 간접 조명들과 주방 전등을 켰다.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함이었다.
첫 가족독서토론회로 이 책 -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고명환 저) -을 선정한 것은 남편이 너무 감동을 받아서, 딸들에게도 권유를 했기 때문이다. 딸들은 아빠가 읽어보라고 하니까, 마치 숙제처럼 읽었다. 남편은 두 번째 읽는 중이었고, 큰딸과 나는 완독, 작은 딸은 자격증 시험을 친 이후라 10장 정도 낮에 부랴부랴 읽었다. 내가 먼저 책에 대한 설명을 하고, 각자 전체 느낌과 인상 깊었던 내용 그리고 깨달은 점 등을 자유롭게 얘기하기로 했다.
나는 고명환작가의 책 3권을 다 읽었다. 한강 책, 고전들은 좀 어려운 느낌이었는데, 고명환작가 책은 참 이해하기 쉽고, 실제 내 삶을 돌아보고 적용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아서 책을 참 감명 깊게 읽었다. 고명환작가도 어렸을 때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고생을 참 많이 했더라. 그도 끌려다니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책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았는데, 나도 그러려고 한다. 무엇보다도 늘 tv만 보고 살았는데 요즘은 책이 재미있다. 정말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작년 10월부터 한강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2월까지 총 20권을 읽은 것 같아서 뿌듯하다. 뭐든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고전을 인용한 내용 중, 낙타, 사자, 어린아이 단계가 있는데, 낙타는 늘 끌려다니는 삶을 산다고 했다. 나도 지금까지 끌려다니는 삶을 살았다. 대학 때 적성에도 맞지 않는 기계과를 전공했고, 적성에 맞지 않는 회사 일을 하면서 억지로 30년 동안 일을 해왔다. 늘 스트레스로 뒷목이 아팠고, 회사 일이 싦으니까 그 돌파구로 취미생활과 친구들을 만나면서 삶의 재미를 찾았던 것 같아. 그리고 남을 위하는 길이 곧 나를 위하는 길이라는 말이 정말 와닿았다. 나는 얼마나 타인을 위해 살았는지도 되돌아봤다.
나도 이 책을 읽고 나서, 깨우친 건 내 직장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된다는 게 인상 깊었어요. 가끔씩 일이 하기 싫을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병동의 환자들에게 더 살갑게 대하게 되고, 생각을 바꿔서 일하니까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했어요. 그리고 작가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바쁘셔서 스스로 요리를 해야 했다고 했는데, 나도 요리를 좀 제대로 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자취할 때 했던 김치볶음밥을 해 봤어요.
나: 냉장고에 반찬들이 있었는데, 왜 김치볶음밥이 있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난 책을 몇 장밖에 못 읽었지만, 아까 식당에서 아빠와 엄마가 책에 관련된 내용을 말하면서 내게 말을 하니까 그게 내 마음으로 쏙 들어왔어요. 그전에는 엄마 말이 잔소리로만 들렸거든요. 나도 이제부터라도 책을 좀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읽으려고 사기도 하고, 전자책으로도 읽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은 적이 없는 것 같았어요.
식당에서 남편은 '고전이 답했다'의 내용 중에서 결심을 하지 말고, 당장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를 했다. 작은 딸이 늘 계획만 세우고 실천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남편이 알려준 것이다. 나는 모모에 나오는 배포할아버지의 말을 들려주었다. 이 넓은 도로를 청소할 때 도로 전체를 생각하며 비질을 하는 게 아니라, 한 걸음을 내딛고 호흡한 번 하고, 비질을 한 번하고, 또 한 걸음씩을 내딛다 보면 어느새 청소를 다 하게 된다는 얘기였다. 딱 한 걸음 비질을 하는 것만 생각하다 보면 넓은 도로를 언제 다하지? 하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나도 책을 좀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고명환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책을 좀 읽은 게 아니었구나 싶었지. 진짜 독서의 임계점을 돌파하지 못했구나. 이제라도 내가 원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어. '한낮 벌레일지라도 자기 의지대로 산다면 그렇게 살지 않는 인간보다 낫다.'는 문장을 보고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그 의지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산 것 같아. 내 의지대로 살면서 남의 시선이나 비교보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 때, 지금보다는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은은한 거실 조명아래 가족이 모여 책에 관한 얘기를 한다는 자체가 신선했다. 활발한 독서토론을 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저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였다. 그동안 꼭 필요한 의사소통만 했고 대화가 제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는데, 독서와 관련된 얘기를 하니까 누구나 말이 술술 나왔다. 우리 가족에게도 이토록 많은 언어들이 분출할 수 있구나 싶었다. 대화도 훨씬 풍부해지고 무엇보다도 각자의 가슴에 있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서로의 생각을 좀 더 깊게 알 수 있고, 내면을 꺼냈을 때 격려와 용기를 주었다. 모두가 좋은 느낌이어서 우리는 그 자리에서 앞으로 월 1회는 각자의 책을 읽고 매월 첫째 주 일요일 저녁 8시에 가족독서토론회를 하자고 합의했다. 어제가 가족독서토론회 1회였다. 2회, 3회,...... 앞으로 계속 이어지면서 독서를 통해 성장하고 공감과 교감, 사랑의 자리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