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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린 남편의 말 한마디

고명환작가의 강연을 듣고 30년 만에 나의 독서와 글쓰기를 인정한 남편

by 데레사

어제 남편과 함께 고명환작가의 강연을 들었다. 이런 강연에 관심조차 없던 남편이었다. 독서를 하면서 의식체계에 균열이 생기면서 1개월 전에 고명환작가의 유뷰브를 보고 스스로 신청한 것이다. 그것도 나와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내게 제안을 해서 나도 참여하게 되었다. 30년을 살면서 내게 스스로 어디에 가자고 제안을 한 적이 거의 없다. 항상 본인의 일정이 먼저였고, 내가 어디 가자고 하면 운전기사 역할은 해 주는 정도였다.


아침 일찍 볼일을 보고, 서둘러 강연장에 도착했다. 맨 앞에 앉은 우리는 고 작가의 온 영혼을 담아 진심으로 호소하는 그의 강연에 쏙 빨려 들어갔다. 청바지와 티셔츠, 운동화 차림의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친근하게 와닿았다. 깔끔하게 정장을 입고 나왔다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남편은 이미 고명환 작가의 주요 유튜브를 거의 섭렵했고, 고 작가의 책도 두 권을 읽은 상태였다. 남편이 읽기에 나 역시 두 권다 읽은 상태였다.


고명환작가의 진정성 있는 강의, 가슴까지 들어와

강연 주제는 '365일 가슴 설레며 사는 법'이었다. 책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많이 있었지만, 강연을 통해 듣는 그의 호소는 또 느낌이 달랐다. 독서를 통해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 독서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의 의식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지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고함을 쳐가며 강의했다.


이미 독서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 부의 창출 시스템을 마련해 놓았다는 그의 강연은 독서의 위대함을 확실하게 일깨웠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안에 겸손이 어떻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지, 시간과 노동으로 원화로만 돈을 버는 방법 이외에 자는 동안에도 돈이 흘러들어오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경험을 콘텐츠로 만들어 유튜브나 해외 쇼핑몰을 통해서 달러를 벌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이제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기에 그의 진심을 담은 호소가 머리에서 가슴까지 들어왔다.


강연이 끝나고 남편은 다른 일정이 있어서 그곳까지 내가 태워주었다. 10분 동안 차 안에서 짧게 강연의 소회를 나눴는데, 독서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완전하게 깨달은 것 같았다.


"당신 참 대단하다. 책을 읽고 글 쓰는 게 참 대단한 거지."

"대단한 거 이제라도 알았나?"

"인정한다."

남편의 그 한마디는 '내가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서 상당한 공감과 위로를 얻었는데, 비로소 '내가 옳다'는 느낌이었다. 친정, 시댁, 내가 개인적으로 친분을 유지하는 사람들 중 아무도 가톨릭 신자가 없었는데, 성당을 다니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는 내 삶이 옳다는 자존감이 살아났다.


남편이 만나는 지인들 중에 책을 읽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모임을 하며 취미활동을 하고, 만났을 때

술이 기본으로 의미 없는 농담 같은 얘기들로 웃으며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의 즐거움으로 알았다. 그런 지인들을 만나면서 독서와 글쓰기가 일상인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게 많아서 늘 나를 이상하고 특이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중고등학교 동창인 우리는 다른 여자동창들과도 뭔지 모르게 다른 나를 좀 별난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그 별남이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좀 이상한 사람 이미지였다.


그런데 어제 고명환의 호소 같은 강의에서 독서와 글쓰기의 위대함을 알고, 평소에 독서와 글쓰기를 해 왔던 나를 다시 보게 되는 것 같았다. 이제야 내가 이상하고 특이한 사람이 아닌, ' 독서와 글쓰기를 하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 대단함이란 책을 안 읽는 사람에 비하면 읽는 정도이고, 글을 아예 안 써본 사람들에 비하면 쓰는 정도다.


나는 2022년도에 모 중앙 문학지에 2023년 신춘문예 수필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그전에도 지역에서 신인상에 당선, 공모전 우수상 등의 수상들이 있었다. 그 중앙 문학지는 서울에서 시상식이 있었는데, 나는 그즈음에 코로나초기 때 음압병실에 두 어번 입원 이후 공황장애가 발생해서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지사 일로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갔을 때 공황장애 발생 이후, 또 서울을 가는 게 두려웠다. 남편에게 서울까지 태워달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지사 일로 서울에 기차를 타고 가는 게 두려워서 승용차로 태워다 달라고 했을 때 남편이 짜증을 내며 거절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100만 원어치 책을 사야지 신춘문예 상을 준다고 했다. 물론 신춘문예 상금이 50만 원이어서, 50만 원어치를 더 부담해야 하는 거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등단하고 싶지 않았다. 돈으로 산 신인상이 뭐 그리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많은 문학지들이 그렇게 한다고 했다. 결국 그 신인상은 포기했다. 만일 내가 서울을 아무렇지도 않게 갈 수 있었다면 어쩌면 신인상을 수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동안 몇 번 글쓰기로 수상을 했을 때, 남편은 그러려니 하는 반응이었다.


한강의 책들이 남편에게 책을 읽은 계기가 되었고, 한강의 유뷰브를 보다가 독서 관련 알고리즘 고명환의 유튜브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고 했다. '개그맨 고명환이, 어떻게 책을 읽고 인생이 저렇게 변화가 되었지?'라는 생각으로 계속 유튜브를 보면서 고명환 책을 사달라고 했다. 남편은 한강 책을 읽다가 고명환 책을 읽으니 너무 쉽게 이해되고 상당한 공감을 받은 것 같았다. 2024년도에 한강 작가와 함께 고명환작가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면서 나도 그제서야 관심을 가졌다. 상이라는건 그 사람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증해주는 것이다. 나는 고명환의 유튜브도 본 적이 없었다. 남편이 몇 번 우리 가족 단톡에 올렸지만 클릭하지 않았다.


남편이 독서를 하기 전에는 나와 가치관과 생활이 전혀 다른 언행들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내 지인들에게 남편의 언행들이 문제 있는 것 아니냐며 하소연도 많이 했다. "남편이 잘못되었고 내 말이 옳지?"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나의 지인들은 늘 남편 흉이나 보는 내 모습이 좋지는 않았을것 같다. 나는 해소되지 않은 감정을 그렇게라도 풀려고 했다. 얼마전부터는 남편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칭찬은 남편이 새로운 세계에서 힘을 얻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독서는 비난의 악순환이었던 부부사이를 칭찬의 선순환으로 돌려놓고 있다.


이제는 나도 성경공부, 기도, 세월 흐름에 따라 어느 정도 마음의 힘이 생겼다. 남편이 주 4~5회 있던 술자리 중 주 1 회 정도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술에 취해 들어왔는데 그냥 잔소리로 얘기했다. 작년에는 주 2~3회 마시더니 독서를 한 이후는 주 1회만 술자리를 가지려고 노력한단다. 이즈음에 남편에게 술에 취할 것 같으면 아예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진지하고 강력하게 얘기했더니, 술친구들에게도 모두 공지를 하고 술을 자제하며 마신다.


이제는 나의 말이 남편의 오른쪽 귀로 들어가 왼쪽으로 흘러 나오지 않는다. 어떤 결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단순히 한 가지 이유로 큰 결과가 나타나지는 않는 것 같다. 남편은 한강의 노벨문학상으로 독서의 문을 열었고, 대중성이 있던 고명환 작가의 책으로 독서의 세계로 걸어갔다. 나를 보는 시선도 확실히 달라졌다. 남편에게 독서는 긍정의 도미노가 되어 아직 상흔이 남아있는 나의 자존감까지 회복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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