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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의 엄마들도 사람이다

친정엄마의 요양병원이야기 (2018년에 돌아가심)

by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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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는 신도시 지구에 있어서 젊은 사람들이 많다. 엘리베이트에서 아기들을 종종 보는데, 보석이라도 보는 듯 귀하고 예쁘게 보인다. 아기가 예뻐보이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라는데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아기가 귀하기 때문 일거다.


언론에서는 저출산의 심각성을 연일 보도한다. 20대 후반 딸에게 저출산 문제를 얘기하자, 딸도 결혼하면 아이를 낳을 생각이 전혀 없단다. 손자의 사랑은 포기하란다. 이유를 물어보니, 여러 가지로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이 없단다. 추측건대 여러 이유 중 하나로 친정엄마와 나의 삶도 영향이 있었을 거라고 본다. 친정엄마의 삶은 내게 영향을 끼쳤고, 나의 삶은 또 딸에게 습자지처럼 영향을 끼쳤으리라.. 언젠가 딸이 내게 엄마처럼 살 자신은 없다고 했다. 딸에게 숨겨할 무엇을 들킨 느낌이었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살아온 엄마들의 삶은 고달팠다. 가족에 대한 희생과 헌신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신의 꿈과 행복을 뒤로하고 오직 가족만을 위해 살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이들에게도, 사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창호지 문이 어스럼하게 비치는 새벽녘, 마루에서는 엄마의 청소하는 소리가 귓전에서 맴돌았다. 겨울이면 마루에 놓인 물그릇이 얼어 있었다. 우리가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동안 엄마는 어느 새 도시락 3개를 싸고, 밥상 세 개를 후다닥 차려놓았다. 16명 대가족의 맏며느리였던 엄마는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했다.

저녁에는 가족들의 옷감들을 수선하며 자정쯤 잠들었던 것 같다. 아버지도 함께 농사일했지만,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시면 마루에 앉아 밥상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엄마는 가만히 쉬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동생 젖을 먹이는 시간은 밥 먹을 때였던 것 같다. 거의 매일 19시간의 초고강도의 노동을 하며 그 노동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노년에는 그 삶의 연장선으로 농사일의 노동이 삶의 낙이 되어버렸다. 뇌경색으로 반신마비가 오고 나서야 요양병원에서 알게 된 친구에게 엄마의 바람을 얘기했다.

“친구야, 다 나으면 맛있는 회도 먹고 좋은 데도 놀러다니자.”

이제는 영원히 걸을 수도 없는 엄마가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세상에는 여자와 남자, 엄마라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는 줄 알았다.


나의 삶도 엄마의 삶과 형태는 다르지만 노동강도까지 합치면 별반 다르지 않다. 온갖 가전제품으로 가사 일이 대폭 줄어들었지만 주부에게 가사는 업무 퇴근 후 주부 출근이 된다. 국가에서도 토·일에는 쉬라고 휴무로 지정했는데, 주부의 삶에는 휴무가 없다. 물론 가정마다 문화가 조금씩 차이가 나겠지만 대다수 맞벌이 주부의 가사는 365일 휴무가 없다. 선진국들도 우리나라와 조금 차이가 날 뿐 남편들은 집안일 아이 양육에 책임감까지는 없었다. 명절, 공휴일이 쉬는 날이지만 주부업무는 더 고강도로 늘어난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가사노동은 철 따라 또 집안일들이 너무나 많다.


예전에는 위의 형제들이 동생들을 돌보면서 부모가 여섯 자녀를 일일이 돌보지 않아도 아이들은 흙바닥에 딩굴면서도 자랐다. 요즘은 아이들을 밥만 먹여서 키우는 게 아니라 사교육의 정보, 사교육비까지 신경 써야 한다.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하기 전까지 돌보는 가정이 많다.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을 아날로그 부모가 키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준다’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집에 온 손님도 아니고, 함께 경제적 활동을 하는 아내는 아이들 양육, 노부모 봉양이라는 또 다른 집안일도 거의 아내 혼자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이 퇴근 후 밖에서 술자리를 가지고, 집에 와서는 티브이 리모컨과 놀고 있을 때, 맞벌이 아내들은 또 집으로 출근해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편도 사회도 국가도 눈 감고 있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선진국들도 저출산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들과 시대 흐름, 개개인의 가치관들이 얽혀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 지인 중 한 명은 딸이 결혼을 하면서 손자를 봐 주기 위해 수 십년 살아온 창원을 떠나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주중에는 손자를 봐주고, 주말에는 양가의 시골 노모를 돌보기 위해 아내는 친정으로, 자신은 본가로 간다고 했다. 물론 매주 가는 건 아니지만, 자신들을 위한 시간은 거의 없다고 했다. 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돌보는 우리 세대는 양 어깨에 가족 부양이라는 책임감을 얹고 살아간다.


이런 모습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과 얽혀 있어 젊은 부부가 결혼 후 아이를 낳지 않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저출산은 단순히 인구 감소를 넘어,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 정부는 다양한 대책을 내놓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역부족이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출산 문제 밑바닥에는 ‘한국 엄마의 녹록지 않은 삶’이 깔려있지 않을까? 엄마들이 행복하지 않은 사회에서 아이들은 행복할 수 없다. 엄마들이 자신의 삶을 살면서도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엄마의 삶은 마치 밭을 일구는 것과 같았다. 끊임없이 씨앗을 뿌리고 가꾸었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꽃 한 송이 피울 시간은 없었다. 이제는 그 밭에 새로운 씨앗을 심어야 할 때다. 엄마들의 행복이라는 씨앗을 심고, 그 씨앗이 꽃피울 수 있도록 물과 햇볕을 공급해야 한다. 한국 엄마의 묵은 숙제는 이제 우리 모두의 숙제가 되었다. 이런 숙제를 해결하지 않고, 돈으로만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은 너무나 근시안적이다. 가족이 다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적 인식, 시스템, 정책은 어디에 있을까? 한국 엄마들도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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