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엄마들의 삶 , 5년 주부 안식년을 누리는 50대의 한 여성
이 글은 제가 겪은 100%실화입니다. 누군가가
이 글이 실화는 아니제? 라고 묻길래, 글 상단에 첨언 글을 추가로 넣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도연 씨는 어쩌다 밥도 먹고, 여행도 함께 했던 지인이다. 어느 여름날 함께 당일 여행을 가기로 하고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조금 있으니 50대지만 20대 옷차림과 스타일로 작은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나왔다. 민소매에다 가슴이 깊게 파인 상의와 찢어진 핫팬츠를 입었다. 중년여성치고는 봐줄 만한 몸매였지만 저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싶었다. 조금 있으니 남편이 헐레벌떡 뛰어나오며 돗자리와 간식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왔다. 비닐봉지에는 몇 가지 과일을 깎아서 먹기 편하게 잘라놓았다. 마치 아이가 놀러 갈 때 엄마가 챙겨주는 모습이었다.
어느 날은 휴일에 그녀의 집에 가서 식사할 일이 있었다. 남편이 식사 준비를 다 해놓았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식탁을 차리는 중이었다. 도연 씨와 남편은 이런 풍경이 익숙한 듯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남편은 우리에게 밥과 국을 퍼주고 주방에서 나갔다. 나는 약간은 민망해하면서도 정성이 담긴 듯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마셨던 예쁜 맥주잔이 어디 있어?”
도연 씨가 싱크대를 열어보더니 잔이 보이지 않자,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주방으로 와서 익숙한 듯 싱크대 작은 칸에서 꺼내어주었다. 잠시 싱크대 문을 열었을 때나 도연 씨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낼 때 내부 모습은 정리수납 전문가가 해 놓은 수준이었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을 보고 있으려니, 이곳이 한국의 가정이 맞는지 헷갈렸다. 그녀의 남편은 실업자도 아니고, 중견기업의 부장이면서 모 대학 겸임교수였다.
남편은 아내에게 5년 동안 주부안식년을 주었다. 아내가 10년 동안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면서 살림도 했단다. 그냥 전업주부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았다는 거다. 특별히 병시중을 한 것도 아니고, 맞벌이하면서 모신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내에게 고생했다며 이제 그녀에게 자유롭게 살라고 했단다.
그때 도연 씨는 도발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주부안식년을 달라고 했다. 그것도 5년을.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남편은 잠시 고민했지만 흔쾌하게 5년 동안 모든 살림은 자신이 도맡아 하겠다고 했다. 경북의 보수적인 집안의 장남으로 살아온 그녀의 남편은 집안 살림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하나하나 배우며 하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녀의 남편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집안 살림을 맡았고, 그녀는 오직 자기 일만 하면서 매일 남편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았다. 가끔 도연 씨가 늦게 일어나면 식탁에 반찬을 준비해 놓고 남편은 먼저 출근한다. 피곤해서 계속 침대에 있으면 침대까지 먹을 것을 갖다 주기도 한단다. 점심을 밖에서 사 먹는 그녀를 위해 도시락을 싸 주는 것도 기본이다.
남편의 그런 모습은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기본적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깔려 있을 테고, 10년 동안 자신의 어머니를 모셔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을 테다. 평생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도 아내에 대한 존중과 고마움은커녕 늘 자기 부모에게만 전전긍긍하는 남편들도 있고, 맞벌이 아내의 가사노동에 대해서는 당연시하는 게 보통의 가정 풍경이다.
김형석 교수는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자유를 존중해 주는 거라고 했다. 남편은 아내에게 시간의 자유를 주었다. 아내가 하고 싶은 일, 취미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도연 씨가 버는 수입이 적은 건 아니지만 특별히 집에 보탬이 되지는 않다고. 그 수입을 거의 사업에 재투자하거나 본인의 치장을 위해서 사용한다. 남편은 도연 씨에게 본인이 벌어서 본인에게 쓰니까 그것도 고맙다고 했단다.
도연 씨는 이런 남편으로부터 온전한 지지를 받으며 일에만 열중했다. 매일 최대한 예쁜 모습으로 스타일을 꾸민다. 그런 여건들이 도연 씨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거침없이 일하고 일상생활을 즐긴다.
아이들이 고3 때도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집에서 먹는 건 남편이 알아서 차려주었고, 학원비도 남편이 알아서 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디 학원에 다니는 지도 정확하게 몰랐다. 그래도 아이들 둘 다 각자 대학을 들어가 제 앞가림하고 있으니, 아이 양육도 공짜로 한 셈이다.
그녀의 그런 밝은 에너지가 아이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하며 자립심도 길렀을 거다. 남편도 도연 씨로부터 늘 감사와 존경을 받으니, 직장생활도 더 잘 되었는지 자기 분야에서 국내 1호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물론 남편이 집안일을 함으로써 나름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을 테지만, 가정과 일을 지켰고 그렇게 마음이 건강한 그가 애써 사람을 찾지 않아도 좋은 사람들은 주변에 머물렀다.
집안에 아내가 행복하면 가족 구성원들에게 좋은 에너지가 전해진다. 아내가 가족 구성원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늘 지쳐있다면,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서로가 마음을 열고 들여다봐야 한다. 아내의 행복은 대단한 성취나 럭셔리 집, 보석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가사로부터 해방되는 만큼 아내의 행복도도 올라간다. 오죽해야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밥이 남해 밥(남이 해주는 밥)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남편이 무조건 살림을 맡아야 아내가 행복하다는 논리가 아니다. 도연 씨는 특별한 케이스고 일을 분담만 해 줘도, 아니 아내의 마음만 알아줘도 정서적 충족이 된다.
일본에서는 퇴직한 남편들이 살림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한 책들이 출판되고, 인기도 많다고 한다. 또한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은 아내의 가사 일을 돕는 것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내용이란다.
도연 씨처럼 주부안식년을 5년이나 바라지 않는다. 주 1회 만이라도 주부안식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단 하루만이라도 온전한 휴식을 취하면서 심신의 재충전을 한다면 아내들도 행복한 에너지로 충만할 수 있다. 사회와 국가에서 주부 안식일을 공식화한다면 사회와 가정에서도 어느 정도는 인식의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외로움은 개인의 영역이다. 그런데 이 외로움으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불거지자 영국과 일본에서는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고독을 관리해 주는 고독부장관을 임명했다. 이렇게 주부 안식일도 개인 가정사의 문제로 치부하기보다는 사회적 합의가 된다면 서서히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 주부안식일이 일상화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주부에게도 온전한 휴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