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보다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
이 구절은 까루 린포체뿐 아니라 동서고금의 현자들과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보편적인 진리다. 이론상으로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 잘 실천되지 않는 것이 보통 사람의 마음이다. 상처의 깊이가 깊을수록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말이 현실에서도 진리라는 것을 살면서 터득하는 중이다.
수십 년 전, 내가 일하던 직장에 나보다 어린 동료 A가 있었다. 나와 성격은 달랐지만 업무 외의 사적인 교류도 했고, 때로는 밖에서 밥도 함께 먹던 사이였다. 내가 먼저 입사했고 나이도 많았으므로 당연히 내가 선배였지만, 우리는 평범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에게서 냉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직장 상사들은 나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중했다. 내가 그 분야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즐겁게 일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의 업무 능력을 인정하고 나를 찾는 외부 기관이 많아 상사들 역시 나를 중요하게 여겼고, 중요한 자리에는 대부분 나를 보냈다.
어느 날 전체 회의 시간에, 우리 직장의 핵심 인재이자 회의를 주재하던 상사가 무의식중에 나를 '우리 ㅇㅇㅇㅇ님'이라고 불렀다. 다른 직원들은 성과 직함만 불렀는데, 내게는 '우리'라는 친근한 단어가 들어갔다. 나를 향한 상사의 그 호칭은 순간적으로 기분을 좋게 했지만, 동시에 다른 직원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했다. 그 상사와 내가 특별히 더 친밀한 관계였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말이 별로 없고, 애써 사람에게 웃으며 다가서는 스타일도 아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편안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며 동료들과도 서로를 존중하며 지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A가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 A는 전화로 다짜고짜 내게 심한 말을 퍼부으며 연장자인 내게 해서는 안 될 악담까지 쏟아냈다. 영문도 모른 채 오물을 뒤집어쓴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차분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욕을 듣는 건 받아들이겠지만, 그 이유를 알고 들을게.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잘못이 있다면 말해줘."
그러나 그녀는 끝내 화가 난 이유나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말하지 않은 채, 악담을 퍼붓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너무 얼떨떨해서 직장 상사나 동료 몇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모르는 상황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들 역시 아무도 이유를 몰랐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몇몇은 A에 대한 안 좋은 일화들을 내게 들려주기도 했다. 어떤 선배는 A의 행동이 나에 대한 질투 때문일 것이라 짐작했고, 다른 이는 A와 관련된 안 좋은 일을 한 시간 동안이나 하소연하기도 했다. A는 그 후로도 업무적으로 사사건건 부딪치며 나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주었다.
결국 나는 그곳을 그만두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다른 곳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내게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이었기에 직장에 미련은 없었다. 그런데 직장의 모든 상사와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내게 사직을 만류했다. 급기야 대표까지 전화가 와 간곡하게 붙잡았다. A와는 업무를 분리하고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으나, 나는 나로 인해 A에게 가혹한 조치는 하지 말라고 했다. 만류하는 그들에게 미안했지만, 이미 떠난 내 마음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나는 새로운 곳에서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직장의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A가 위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위암 판정을 받고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선배는 A가 몸이 안 좋았기 때문에 모두와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한때 A를 저주하고 싶을 만큼 분노가 컸지만, 그래도 몸을 다치게는 하지 말라고 기도했는데, 그녀는 몸이 아파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에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는 소식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성당에서 울면서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기도를 해 주었다. 나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조의금도 전달했다. 그 직장을 떠난 뒤에도 A와 마주치는 것조차 싫을 만큼 분노가 남아 있었기에, '이제 더 이상 마주칠 일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칠 정도로 증오의 잔재는 깊었다.
상대방이 죽고 나서야 나의 분노는 연민과 미안함으로 뒤섞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비로소 A를 용서할 수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용서를 '한' 것이 아니라 원망과 분노, 증오가 사라지면서 저절로 용서가 '된' 것이다. 용서는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방이 죽고 나서야 혹시나 길에서라도 마주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분노도 사그라졌다.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한다고 했으나, 가슴 밑바닥에서는 용서가 되지 않아 결국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다. 용서는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힘으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을 때 그녀가 50세가 되면 무엇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50세가 되었고, 아직 살아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럴 때면 일상의 스트레스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까지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일 말고도 내게 상처를 준 이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들을 내 의지로 용서할 수는 없었다. 그저 내 마음이 변화하자, 상처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작아지면서 용서가 되었다. 결국 용서는 상대방을 해방시켜 주는 일이 아니라, 내 안에 평화가 머물러야만 일어나는 나 자신의 해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