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로 살지 못할 때 공황장애 발병
지난 5월 황금연휴를 앞두고, 아름다운 여행에 대한 설렘보다는 장거리 여행에 대한 긴장감이 더 컸다. 예전 공황장애 트라우마의 잔재가 내면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공황장애를 극복했다고 말하지만,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찌꺼기들처럼 컨디션이 저하되거나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있으면 그 찌꺼기들이 다시 수면 위로 출렁거린다.
그럼에도 이번 연휴에 여행을 강행한 것은, 사지육신 멀쩡하고 아직 노인도 아닌데 고작 네 시간 거리도 못 가서 벌벌 떨고 있는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함이었다. 가족들과 승용차로 이동한다는 것, 건강상 문제가 없다는 것, 신경안정제와 멀미약 등의 안전장치를 갖춘 것이 큰 힘이 되었다. 가다가 힘들면 병원행이든, 여행 중단이든 나를 이해하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다. 무엇보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로 육 개월이 지났기에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었고, '이제는 먼 곳도 가 봐야지' 하는 자신감도 한몫했다. 그전에는 버스, 기차, 배, 비행기 등 어떤 탈것도 감히 이용하지 못할 만큼 증상이 심각했다.
만반의 준비란 병원에서 기본 혈액 검사를 받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멀미약과 신경안정제를 처방받는 일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복병이 나를 주저앉혔다. 여행 출발 하루 전날 아침, 온몸에 붉은 발진이 돋아나며 극심한 가려움이 시작되었다. 남편이 시골에서 가져온 참옻순을 먹고 두드러기가 난 것이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았다. 증상이 점점 심해진다는 의사의 말에 한편으로는 '옻두드러기로 여행을 못 간다'는 확실한 이유가 생겼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볍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증상이 심하지 않아 다음 날 여행을 출발했다. 멀미약을 먹고 신경안정제도 복용했다. 장장 다섯 시간이 걸려 도착했는데도 멀쩡했다.
아! 나도 이제 장거리 여행을 해냈다는 뿌듯함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돌아올 때는 피로가 누적되어 잠시 어지러운 증상이 있었지만, 나는 차에서 쉬고 가족들은 관광지를 둘러보았다. 옻두드러기로 계속 신경이 쓰였지만, 의사의 말과는 달리 증상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샤워 후 두드러기 난 곳에 식초를 바르고,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연고도 바르고, 저녁에는 해독 주스를 평소보다 두 배 마시는 노력을 한 것이 효과를 보았을 것이다.
2박 3일의 이번 여행으로 이제는 멀리 갈 수도 있겠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다. 이십오 년 전 첫 발병 이후 극심한 공황장애를 겪었고, 십 년 전쯤에는 거의 다 나아 해외여행도 다녔었다. 그런데 혹독한 코로나 시국을 겪으면서 다시 발병하여 서울조차 갈 수 없게 되었다. 체력 저하와 심리선의 붕괴로 몇 년 동안 멀리 가는 것을 포기하고 살았지만, 이번 여행으로 다시 회복의 발판을 마련한 기분이다. 운전 중 창밖으로 보이는 파릇파릇한 연초록빛 나무들, 탐스러운 하얀 이팝나무 꽃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지, 자연을 보면서 가슴 가득 환희가 차올랐다. 자연의 변화에 감동을 느낀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증거라고 한다. 어젯밤에는 아파트 뒷베란다 쪽으로 바라본 도심의 불빛들이 마치 거대한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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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가 대중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것은 연예인들의 투병 기사가 나오면서부터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 증상이 공황장애인지 인지조차 못했다. 실제로 '공황장애'로 병원을 찾는 환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환자가 갑자기 늘어난 것이 아니라,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자신의 증상을 공황장애로 인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결과로 보인다.
돌이켜보면 극심한 스트레스 뒤에 공황장애가 발병한 것 같았다. 내 가슴이 무엇을 원하는지 느낄 겨를도 없이, 오직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하게 살아왔던 것이다. 오랫동안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 때 공황장애가 발병했다. 증상이 나타난 이후부터는 아예 멀리 가는 버스를 탈 수 없었다. 경기도에 갔을 때 겪었던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 뒤 치료를 위해 정신과 치료나 약물 복용은 하지 않고, 최면치료, EFT 요법, 단전호흡, 취미 생활, 가톨릭 수도원 피정 등을 통해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물론 일과 역할들은 계속 잘 해냈지만, 가야 할 곳을 못 가는 경우가 불편했다. 특히 친정엄마 팔순 기념으로 자매들과 제주도에 갔을 때, 나만 비행기를 탈 수 없어 가지 못했는데 그것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기존 문헌에는 주로 20대에 공황장애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40~50대 중년층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공황장애의 원인은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것을 얼마나 해소하고 위로받느냐에 따라 병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스트레스로 지나가기도 한다.
나의 공황장애 치료는 약물이 아니었고, 문제 되는 상황을 피하다 보니 세월이 지나 안정이 된 케이스다. 물론 심한 경우에는 병원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재발을 막는 것인데, 스스로 지속적으로 심신의 피로도를 관리해야 한다. 그 방법은 자신에게 맞고 편안하며, 지속 가능하고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자신의 정서적 억압이나 억제가 되는 것은 없는지, 몸의 피로가 누적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야 한다. 심신의 조그만 신호에도 관심을 가지고 알아차리면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다.
자신의 이성적인 역할에만 충실하면 가슴이 무엇을 원하는지 놓치기 쉽다. 이웃을 사랑하고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가슴의 소리가 먼저다. 내가 살아야 남도 도울 수 있다. 공황장애는 내 가슴이 보내는 SOS다. 조난당하기 전에 세상의 소리보다는 내 가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