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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엄마의 요양병원 입원 둘째 날, 내 손으로

친정엄마의 요양병원이야기 (2018년에 돌아가심)

by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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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요양병원 입원 둘째 날, 엄마는 이미 나흘째 변을 못 보고 계셨다. 부산의 뇌경색 전문병원에 있을 때부터 곧 요양병원으로 간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퇴원 사흘 전부터 변비가 생겼다. 쓰러진 후 응급실, 중환자실을 거치고, 부산의 병원까지 한 달 넘게 거의 누워만 있었던 탓에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급격한 변화로 인해 장이 정상적인 작동을 못 했을 수도 있다. 또한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불안과 좌절이 장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입맛도 조금 잃어서 식사량도 줄었다.


언니와 나는 요양병원 간병인이 있었지만 기저귀를 갈려고 풀어보니, 변이 항문에 걸려 있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언니가 일회용 장갑을 끼고 손가락으로 변을 파냈다. 분변색전인데 대변이 통로를 막아버린 상황이었다. 오랜 병상생활을 하면 복근이 허약해진 만성질환자에게 잘 나타나는 거라고 했다. 변을 파내고 나니 엄마는 조금 시원하다고 했다. 나도 스프레이로 씻기고 뒷정리를 했다. 그때만 해도 변이 더럽다거나 변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다. 오직 엄마의 불편을 덜어드리는 것에 골몰했다. 뒷 정리까지 다하고 나니 엄마는 편안해졌다고 했다.


요양병원 입원 이틀째라 살 것도 많았고, 간호병동에 왔다 갔다 하고, 엄마의 뒷정리까지 다 하고 나니, 겨울임에도 내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어쩌다 보니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저녁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기진맥진해진 몸으로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는데, 엄마의 항문에 걸려있던 변이 그제서야 생각나서 쉽게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내 자식이 아닌 어른의 ㅡ비록 엄마지만ㅡ변을 항문에서 파 낸 것이 그제야 비위가 상했나 보다. 배는 고팠지만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물 한 잔이 그날 점심과 저녁 식사였다. 나는 한 끼를 굶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사람인데, 두 끼를 굶었지만 간식조차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엄마 변이 뒤늦게야 더럽게 느껴진 것 같았다.

엄마는 젊은 시절, 우리 형제 일곱 명뿐 아니라 삼촌의 아이들, 손자까지 10명이 넘는 아이들의 변을 맨손으로 치웠을 거다. 세탁기도 없고, 온수도 없는 그 시절을 어떻게 키웠을까? 싶다. 힘들다는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던 시간이었다. 이제는 팔순이 넘어 자신의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딸 앞에서 아기가 되어버렸다. 내가 아기였을 때 엄마는 나의 변을 치웠을테다.


조금 자란 후의 일인데 지금도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다. 피를 닦아주고, 내 몸에 난 종기를 빨아주었던 기억도 난다. 어린 마음에 그 더러운 종기를 입으로 빠는 모습을 봤을 때도 엄마의 헌신보다는 그 더러운 걸 어떻게 입으로 빠는지 더럽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손으로 짜는 것보다는 더 깨끗하게 종기를 짤 수 있다고 했다. 온몸에 주먹만 한 두드러기가 났을 때, 귀에서 고름이 흘러내렸을 때에도 엄마가 민간요법으로 처치를 했던 것 같다. 그때에는 남해에 병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웬만큼 문제가 생겨도 병원에 갔던 기억은 없다. 나는 내게 해 준 것만 기억하지만, 우리 남매들과 손자, 심지어 시동생 자녀들까지 온갖 병치레도 다 돌봤으리라. 엄마는 온몸과 영혼을 다 바쳐 어린아이들을 키웠던 것 같다. 그러면 젊어서 고생을 했으니 노년에는 편안하게 대접받으며 살아야 공평한 게 아닐까?


나도 딸들을 키우며 기저귀를 갈았다. 연년생이라 둘이 한꺼번에 천 기저귀를 차고 있어서 늘 큰 대야에다 대소변 기저귀를 구별하여 애벌빨래하고, 다시 기저귀를 삶아서 세탁기에 돌렸다. 그렇게 몇 년간을 대소변 처리를 해도 더럽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아이들이 장염에 걸려서 설사를 한 뒤, 정상적인 변이 나오면 변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내 자식의 변은 예뻐 보였지만, 엄마 변은 더럽게 느껴졌나 보다.


자식 사랑은 본능인 것 같다. 인류가 지금까지 번성한 것은 자식사랑이라는 본성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부모에 대한 공경은 인간으로서 첫째로 지켜야 할 도리인데, - 기독교의 10 계명 중, 4번째가 부모에게 효도하라.이다. 1번~3번까지는 하느님과 관련된 내용이다. - 딸들을 지극정성으로 키웠는데, 과연 엄마에게도 그렇게 정성을 들였느냐고 자문한다면 그렇지 못했다. 엄마가 건강할 때는 그냥 잘 계시는가보다하며 무심코 지냈다. 쓰러지고 나서야 엄마를 돌보고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서 받았던 사랑을 내가 성인이 된 후 30년이 지나서야, 2년 정도 엄마에게 정성을 다했다. 참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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