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Grateful, Commitment

뉴욕에서 마주한 다양한 삶의 형태

by hyojinrgb

AI라는 대격변의 시대에 회사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어떻게 나로써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고 여행을 하며 계속 생각해보려 했다.


- 이번에 이직을 준비하면서 헤드헌터에게 나는 1)자율성(DRI)가 보장된 환경 2)높은 동료수준 3)성장하는 산업 3가지 기준을 얘기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보장되는 기업임을 알고 있음에도 아직 시리즈 A 단계인, track record가 약한 회사는 거절했다.

- 몇년 전 창업을 하러 나갔다가 암에 걸렸고, 회복을 하며 다시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여전히 Bold한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회사라는 안전한 요새에서 있다가는 세상의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창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아직 나로써 살아남을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회사라는 타이틀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시장에 나가서 나는 어떤 경쟁력으로 벌이를 할 수 있을까? 회고해보는 여행이었다.


뉴욕은 겉과 속이 다르다. 화려한 외관이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사람들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거주를 결정한다.

그러나 내가 본 우버 드라이버, 지하철에서의 삶, 다운타운 거리에서의 삶은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업타운으로 가는 지하철엔 백인이 많고, 다운타운으로 가는 지하철엔 노숙자가 많다. 노숙자가 머무는 거리는 겨울엔 야생이다. 추위, 차별, 폭력에 벌거벗은 몸으로 노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하철에 많이 모이는데 그 마저도 국가의 보호는 단 하나도 없다. 이 국가는 돈이 없으면, 이민자이면, 국민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뉴욕엔 Crazy People이 많다고들 한다. 그리고 실제로 많다. 그러나 이런 대우를 반복적으로 받다 보면,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국가가, 사람들이, 나의 존재를 계속 지운다면 말이다. 심지어 유럽보다 더 살기 어려운 것은 이런 동네는 식재료마저 신선하지 않고, 물도 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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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아주 상반되게 업타운은 온통 하얀색이다. 갤러리의 외관, 사람들의 피부색 대부분 다 하얗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 유색 인종을 보기 어려웠다. 아시안 식당에도 백인, 센트럴 파크에도 백인. 골목 사이 사이에 흑인, 관광지 근처에서 할랄 푸드나 물건을 파는 유색인종을 볼 수 있었다. 블루노트 재즈클럽, 시카고 공연을 봤다. 음악에서는 여러 피부색의 인종이 어우러진 결과를 볼 수 있었다.


Rashid Johnson의 A Poem for deep thinkers 라는 전시를 봤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가 경험, 역사, 정체성, 사회적 불안에 대한 사색을 하며 '검은 비누'와 '서아프리카 허브', '책' 등을 본인의 정체성의 도구로 사용한다. 이민의 역사,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 등을 피부로 체감하는 이 사람이 지식인으로써의 혼란을 느낌과 동시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연에서 명상하고, 뿌리에 대해 탐구하는 기록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이다. 왜냐하면 입장료 3만원을 낼 돈이 거리에서 물건과 마약을 파는 사람들에겐 없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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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고 있는 나는 다양한 형태의 불만이 있었다. 이 나라는 여성으로 살기 안전하지 않다, 이 나라는 너무 정형화되어 있다 등등. 그래서 해외살이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해외에 가면 다양한 의견을 토론하고, 더 성장하는 내가 될 수 있을거야. 아예 다른 차원의 나를 발견할 수 있을거야.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첫째, 해외에 가면 우선 나의 껍데기가 다 벗겨진다. 나의 인종과 능력이 나라는 사람의 경쟁력을 결정한다. 이때 학력, 회사의 타이틀은 무의미해진다. 한국에서 유명한 게 밖에서 통하지는 않는다. 나는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벌거벗기며 생존하는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다.

둘째, 첫째의 대가로 나는 안전을 포기해야 한다. 한국에서의 나는 상당히 보장받은 삶을 누리고 있었다. 이 도시는 화려하지만 불안하고,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깨끗한 물 한 잔을 마시려고 해도 1.4만원 정도를 내야한다는 사실이 어떤 디아스포라처럼 느껴졌다.


여행 첫째, 둘째 날에 이런 생각들에 사로잡히다보니 나에게 뉴욕의 유색인종은 불행할 것이라는 어떤 관념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날에 숙소의 지하에서 우연히 스페인 출신 유러피안, 가나 출신 캐나다인을 만나 대화를 했는데 여러 편견을 깨게 해줬다.

Agnes는 힙합 아티스트의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번아웃이 왔다. 번아웃은 마약, 술, 담배에 찌든 삶을 살게 했다. 삶을 버티면서 살다가 신을 믿은 이후 평화를 찾았다. 그녀는 지금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마치 인생의 나침반을 주듯이 신의 sign이 시키는 대로 현재를 살아보고 있다고 한다.

Jerry는 어릴 때 심하게 가난했다. 16살에 생계를 위해서 험난한 바다를 매일 항해해야 했다. 그 또한 약과 술에 의존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신을 만나고 나서 그 어떤 것에도 본인이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신과의 Commitment, Truth, Faith가 본인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와 자본을 주었다고 한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신을 과하게 믿던 중세시대를 믿지 않았고, 우리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이므로 인간의 가능성과 삶을 탐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여유와 평화를 가지고 위기를 이겨낸 이들을 보면서, 이로운 믿음이라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보통 전도하는 사람들을 의심하는데, 이 둘은 나에게 그 어떤 강요도 하지 않았다. 본인의 경험을 그냥 들려주었고, step by step으로 시작해보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 갑자기 본인이 읽던 성경책을 나에게 주었다. 그들은 나에게 어떤 것도 딱히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몇 가지 인생의 교훈을 주었다.

[1] Commitment. 모든 관계엔 commitment가 필요하다. 연인이든, 친구이든, 직장이든, 종교이든 믿기로 했으면 commitment를 가지고 대해야 한다. 관계가 모두 Rosy Rosy 하지는 않다.

[2] Life를 감사함으로 가득 채우는 건 도움이 된다. God은 Showman이기 때문에 여러 방식으로 (노랫말, 간판, 꿈 등) 도움만을 주려고 할 것이다. 일상에서 감사함을 가지고 사물과 현상들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마음은 고요하고 화가 나는 일은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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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결정하고 나니 주위에서 여러 말들을 한다. "네가 너무 어려서 그렇다" "밖에 나가서 백수의 삶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들을 봤다". 나도 모르게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뉴욕 여행은 오히려 나의 코어를 다듬는 것이 얼마나 더 중요한지를 느끼게 해줬다.

최근 Ray Dalio의 Principle을 읽고 있다. 사람들은 객관화가 어렵다. 그래서 타인의 조언을 통해 나를 제 3자의 시선으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이때 누구의 조언을 들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내가 요청한 대상의 조언을 들으면 된다. 내가 요청한 만큼 존경하거나 나와 소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만약 누구에게 요청할지 판단하기 어렵다면, 이 질문을 해보면 된다. "내가 위기에 있을 때 외면할 사람인가, 도와줄 사람인가?" 내 주위 관계들의 유의미함과 인간성을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가끔 사람들은 "본인(또는 본인의 감정)을 위해" 포장한 조언을 한다. 그러나 나를 위해 하는 진심어린 조언만이 나를 성장시킨다.


나는 정치로 인해 함께 퇴사하는 내 리더의 조언 (Leaders are right, a lot)을 진심어리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한 단계 성장했다고 느낀다. 2026년도는 Commitment로 채우는 관계를 실행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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