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의 경이로움, 세렝게티 & 응고로응고로(Ngorongoro)
내가 살았던 곳은 남아공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시골이었다. 그 남아공 시골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순수하고 부끄러움이 많으면서도 유쾌한,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니 탄자니아 시골 사람, 그것도 마사이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지 설렘이 있었다. 다큐멘터리나 교과서에서만 들어본 그 사람들의 전통 마을이라니.. 기대감이 가득했다. 처음에 마을 앞에서 우리를 반겨 주었을 때까지만 해도 무척 즐거웠다.
환영을 받고 마을에 들어가니 남자 몇 명이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가이드를 해주기 시작했다. 이들은 족장의 아들이나 친척으로 마을 안에서는 힘깨나 있는 남자들이었다. 묘하게 허세 부리는 게 느껴졌다. 그중 한 녀석은 마을 입구에서부터 우리 일행인 여자분에게 결혼하자는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호의가 있었기에 웃고 넘어갔는데 네번 다섯번 반복되니 너무하다 싶었다. 결국 듣는 분의 표정이 굳어지자 그는 되려 우리에게
내가 흑인이라 그러는(기분 나빠하는) 거니?
라며 무슨 인종차별 피해자라도 된 듯 진지해지는 것이 아닌가. 문화의 차이로 받아들이기에는 우리 문화에 대한 차이를 그쪽에서 너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우리는 시작부터 불쾌했다.
마을에 들어서면 기념품을 늘어놓은 좌판을 지나칠 수밖에 없다. 기념품에 관심이 많았기에 둘러보려는데 한 녀석이 못 보게 저지하는 것이었다. 5명이던 우리를 3팀으로 나누고 3명의 남자(마을의 권력자로 보이는)가 나눠서 자기 구역만 구경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기념품을 사려면 자기 매대에서만 사라는 것.
응, 안 사~
다음으로 흙으로 지은 전통 집으로 안내받았다. 창문을 내지 않고 흙을 발라 지은 집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았고 매캐한 연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안에는 우리 담당인 녀석의 아내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인기척이 없었고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집이었기에 처음에는 있는지도 몰랐다. 이 밝은 대낮에 앞도 안 보이는 어두운 곳에 마치 갇히기라도 한 듯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빛을 비추어보니 어리고 예쁜 여인이었다. 우리가 말을 걸자 수줍게 웃어주었다. 그리고 '이런 부인을 두고 그딴 농담을 해?'라는 생각에 녀석(우리 일행에게 결혼하자고 드립 친 녀석)에게 너는 아내에게 잘해야 한다며 구박을 조금 해주었더니 녀석의 아내가 통쾌했는지 처음으로 미소를 보였다.
집 구경을 마치고... 매캐한 냄새를 털어내며 나오는데 족장 아들이 학교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우리를 데려갔다. 학교라고 데려간 곳에는 책상 하나와 깨끗한 공책 세 개 정도가 '세팅'되어 있고 아이들은 그 뒤로 빼곡히 서있었다. 부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큰 소리로 환영의 노래를 불러주기 시작하는데 표정과 눈빛이 귀엽지 않고 그저 '퍼포먼스'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선생님이 한 아이를 호명했다. 당당한 걸음으로 나온 그 아이는 칠판에 써진 숫자를 지휘봉으로 가리키며, 숫자 1부터 20까지를 영어로 크게 외쳤다. 그 퍼포먼스가 끝난 뒤 족장 아들 녀석이 기부금 얘기를 꺼냈다. 아이들의 옷과 책을 사는 데 사용한다며 또 진지한 얼굴을 해가지고는... 내 눈에는 그의 치렁치렁한 열쇠와 아이들의 허름한 옷이 대비되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손도 못 대는 공책과 의미 없는 책상.
기어이 돈 벌겠다고 아이들까지 훈련시켰구나...
하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이렇게 세팅된 학교 구경에는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얼마나 목적이 뚜렷한 노골적인 행사였단 말인가. 마사이 부족의 전통적인 마을을 구경한다는 기대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ㅂㄷㅂㄷ
마을 구경이 끝나고 다시 세렝게티로 가는 차 안에 올랐다. 우리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에 아이들을 동원한 퍼포먼스는 정말이지 너무 불쾌해서 가이드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그렇게 불쾌해진 기분은 한참을 가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이야기 예고 : 드디어 세렝게티 캠핑장에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