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 빅토리아폴스
빅폴에서 묵었던 숙소는 크레스타스프레이뷰 호텔. 타운에서 1.5km 가량 떨어져 있었다. 타운에서 밥을 먹기로 하고 택시를 탈까 걸을까 고민하다가 날씨도 좋고 해서 걷기로 했다. 호텔 직원도 빅폴은 안전한 곳이라며 걷기를 추천해주었다. 목적지를 Pizza Inn으로 정하고 출발했다.
빅폴 타운으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길이 단순해서 큰 도로를 따라 쭈욱 가면 나온다. 가는 길은 의외로 휑했다. 아직까지는 타운에만 모든게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풍부한 관광 자원 덕분인지 곳곳에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몇 년 뒤면 이 길에도 여러 상점이 들어설 것 같았다.
빅폴 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갑자기 다가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돈다발을 꺼내 보여주는 사람들을 맞닥뜨린다.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유명했던 바로 그 짐바브웨 고액권들이다. 경제학도였던 나는 세계 경제사에 길이 남을 이 화폐들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라는 핑계로 결국 아내의 시큰둥함을 무릅쓰고 두 장을 구입했다. 사실 만나자마자 산 것은 아니고 하루 있다가 샀다.
화폐 상인들에게 한번 관심을 보였다가는 끈질기게 쫓아오기 때문에, 평소 흥미가 없었다면 아예 무시하는 것이 가장 좋다. 나는 사려는 마음 안 사려는 마음 반반으로 흥미를 보였다가 오랫동안 붙잡히고 말았다. 처음에는 지폐 상태도 좀 지저분하고 더욱이 최고액권이 100억 짐바브웨달러 지폐까지 밖에 없어 진짜로 살 마음이 없었다. 케이프타운 워터프론트에서 약 4달러를 주고 산 50억 짐바브웨 달러 신권이 집에 있었기 때문이다.
100조 달러 짜리 있으면 살게.
100조 달러짜리는 여기서도 못 구해. 대신 10조 달러는 구해올 수 있어.
따라오는 그분을 떼어내려고 공약을 내걸었는데 그는 구해오겠다며 사라져버렸다. 찾아오면 어떡하지..? 가버린 그를 뒤로하고 피자인(Pizza Inn)에 들어와 피자를 먹고 있었는데 그가 기어이 다시 나타났다. 약속한 말이 있어 뿌리치지 못하고 또 말려들어갔다.
나 : 얼마야?
그 : 10달러.
나 : 오 너무 비싸다. 미안해. 안녕바이. 그리고 이 돈은 너무 더럽잖아.
그 : 하... 얼마에 살래?
나 : 7달러.
그 : 하... 알겠어.
나 : 그런데 내가 지금 현금이 없어서 오늘은 못 사. 내일 또 올 건데 그때 사도 돼?
그 : 하... 언제 올 거야?
나 : 11시쯤?(진짜 기다리려나..?)
이렇게 헤어지고 돌아와 보니 계속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원래 이런거는 집에가서 계속 생각나면 사는 거랬다. 그래서 내일 다시 한번 Pizza Inn에 가기로 하고 가는 길에 기다리고 있으면 사고 없으면 안 사기로 정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약속한 7달러를 내려하는 순간 아내가 100억 달러 짜리도 같이 주지 않으면 안 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길거리에서 100억을 주네 못 주네 좀 멋진 대화였다. 아무튼 그래서 두 개 다 생기게 된 것이다.
위조지폐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짐바브웨 경제가 막장에 치달으면서 지폐 제조비를 아끼기 위해 홀로그램 같은 위조지폐 방지 장치를 싹 빼버렸다고 한다. 왠지 A4용지에 프린트한 것 같아 걱정되지만 햇볕에 비춰보면 뭐가 보이긴 보이는 것 같기는 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ㅠㅠ 그리고 저기 왼쪽 아래 금색 도자기 같은 형체는 햇빛의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한다. 진짜일 것이야!
피자를 맛있게 먹고 근처에 즐비한 기념품 가게로 향했다. 여행 기념품으로 모으는 마그네틱을 찾기 위해서였다. 관광 도시답게 타운 곳곳에 기념품 가게가 굉장히 많은데, 달러를 사용하는 탓인지 가격은 다른 아프리카에 비해서 비싼 편이다.
그리고 고심 끝에 고른 3개의 자석 기념품이다. 동그란 녀석은 병뚜껑을 펴서 그 위에 그림을 그린 것(1달러)이다. 그리고 구하지 못했던 100조 달러짜리 기념품과 원주민 부족 나무 인형 자석이다. 나중에 보니 원주민 자석은 남아공에서도 팔고 있었다.
이렇게 타운에서의 만족스런 기념품 쇼핑을 마치고 다시 걸어서 호텔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