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인테리어 디자이너
<연재 인터뷰를 기획하면서>
카셀 도큐멘타(dOCUMENTA Kassel) 및 비엔날레, 트리엔날레와 같은 세계 주요 예술 행사를 개최하면서 자타공인 국제 사회에서 주요 예술 흐름을 선도하고 있는 독일. 그중에서도 몇 년 전부터 예술가들 및 예술계 종사자들의 이목이 쏠려 집중되어 온 베를린. 독일 안에서도 수도라고는 믿기지 않는 저렴한 집세와 생활비 그리고 다양한 문화의 집합이라는 이유에서일까 베를린은 흔히 말하는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도시이다. 미술계의 핫 플레이스인 이곳에서 필자는 다양한 예술계 종사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각과 철학을 함께 나눌 기회를 연재 인터뷰를 통해서 마련해보고자 한다.
연재 인터뷰의 네 번째로 베를린에서 복합적 문화공간을 지향하는 Cafe Everyday is Sunday 운영하고 계시는 김현정 씨를 만나보았다. 그녀는 베를린 예술대학교(Universität der Künste)를 졸업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공간 디자인 관련 일을 한국과 독일에서 지속해서 이어왔다. 그간의 경험들이 함축적으로 담긴 Everyday is Sunday 공간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그녀는 자신이 운영하는 복합 문화공간에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는 의지도 함께 밝혔다. 문화공간에 대한 열정이 많은 그녀를 만나보자.
이정훈(이하 이): 안녕하세요. 바쁘신 와중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하게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은 독일을 처음에 어떻게 접하게 되셨는지에 대해서 궁금한데요. 특별히 독일을 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김현정 (이하 김) 93년에 미술 공부하기 위해서 처음으로 독일로 유학을 왔습니다. 당시 독일에 친척분이 계셨던 점이 다른 나라가 아닌 독일로 오게 된 것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독일에 와서 1년간 대학 청강 수업을 들으면서 어학 공부를 했습니다. 이후 학교 진학을 준비했고 베를린 예술대학교에 합격하게 돼서 학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의 학업은 어떠셨나요?
김: 학교에 들어가서 1년 동안 여러 국적의 학생들이 진행하는 다양한 작업들을 접하면서, 당시 제가 어린 시절부터 해오던 회화 작업에 회의와 한계를 느꼈습니다. 회화를 벗어나서 다른 방향으로 작업하고 싶은 열망이 생겼죠. 그러던 중에 당시 학교에 새로 오신 교수님 중에 미술과 공간을 연계해서 작품으로 다루시는 로타 바움가르텐(Lothar Baumgarten) 교수님의 작업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의 작업들은 제가 생각해오던 미술의 관념을 통째로 혼란스럽게 할 정도로 저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긍정적인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이 분 밑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강력하게 사로잡혔죠.
학교의 학기 제도상 1학년 2학기가 끝나면 자기와 작업 성향이 맞는 교수님을 직접 찾아가 그 아래에서 학업을 이어나가야 했습니다. 저는 기존에 해오던 작업이 회화이어서 작업 성향이나 방향성이 맞지 않는데도, 로타 바움가르텐 교수님 아래에서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어서 그분을 찾아갔었죠. 하지만 교수님이 제 작업이 자신과는 방향도 맞지 않고, 작업이 형편없다고 하면서 혹평을 하시고는 클래스에 들어오는 걸 처음에 단호하게 거절하셨어요. 교수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교수님을 또 찾아갔었어요. 혹시나 교수님이 저를 알아보시고 또 바로 거절하실까 봐 걱정돼서 가발을 쓰고 갔었어요. 제 기대와는 다르게 교수님이 바로 저를 알아보시더라고요. 그렇지만 그 날, 교수님과 장장 5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어요. 교수님이 저의 작품은 아직 부족하지만, 저의 크레이티브 한 가발 퍼포먼스는 높이 사신다면서 칭찬을 해주셨죠.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의지에 마음이 움직이셔서 클래스에 받아주신 거 같아요.
이: 로타 바움가르텐 교수님 클래스에 들어가셔서 계속 작업을 이어나가신 거네요?
김: 네, 우여곡절 끝에 교수님 클래스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리고 교수님의 영향을 받아서 제 작업도 회화가 아닌 공간, 건축과 밀접한 작업으로 성향이 많이 바뀌게 됐죠. 그때의 방향과 작업 과정이 오늘날에 제가 하는 건축일에도 영향을 많이 준 거 같아요. 그리고 운이 좋게도 당시 교수님이 베를린 대통령 청사 (Bundes Präsidialamt) 신축 건물 안에 Kunst in Archietektur (건축안의 예술)이란 맥락의 작업을 하시는데 어시스트를 하게 됐어요. 1년간 어시스트를 하면서 교수님 옆에서 직접 배우고 이야기 나누면서 작업이 한 단계 더 성숙해졌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건축과 예술이 각각의 존재로서 결합하는 형태가 아니라 ‘건축안의 예술’ 혹은 ‘예술 안의 건축’이라는 형태를 추구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이: 말씀하신 건축안의 예술 혹은 예술 안의 건축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이어오시다가 인테리어 분야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무엇인가요?
김: 졸업 전시를 준비던 중에, 한 레스토랑에서 제 사진 작업을 인테리어에 쓰고 싶다는 의뢰를 받게 됐어요. 그래서 의뢰받은 사진 작업 설치를 위해 공간을 살펴보다가 몇 가지의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제안했는데, 그 레스토랑 오너가 제안을 잘 받아들여 주셨고 덕분에 작품이 공간에 더 잘 녹아들었던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이 사소한 제안이 저의 인테리어 일의 첫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에 그 레스토랑 오너가 자신이 새로 계획하는 다른 레스토랑의 전체 공간 인테리어를 부탁하셨고, 그 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인테리어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저는 인테리어와 작업을 따로 구분 지어 생각하지 않고, 공간의 전체적인 콘셉트로 시작해서 작은 부분적 요소들까지 제가 만들어가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순수 예술 행위와 디자인 행위의 차이가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모든 공간에 저의 작업들을 접목하면서 최종적으로 나온 공간 인테리어 결과물이 사람들의 라이프 생활과 접목이 되고 실제로 그들의 생활 일부분이 되는 걸 경험하면서 공간 인테리어 일에 큰 만족감과 흥미를 느꼈어요.
이: 이후 독일에서 계속 인테리어 작업을 해오신 건가요?
김: 이후 개인적인 삶이나 작업을 위해 환경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독일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렇게 한국에서 지내다가, 좋은 기회가 주어져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회사를 내서 인테리어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이처럼 한국에서 일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독일과 알제리 등 해외 프로젝트들도 병행하면서 인테리어 작업들을 함께 이어나갔어요.
이: 두 나라에서 일을 맡아서 진행하는 게 마냥 쉽게 만은 들리진 않는데요. 힘든 점은 없으셨는지?
김: 한국에서 일을 진행하면서 저의 경험 부족과 모자람으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었죠. 지금 와서 제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20대에는 독일에서 작업을 또는 디자인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던 것 같고, 한국에서의 10년은 나를 비우면서도 또 지키고 어떻게 협상하고 타협하는지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기였던 것 같아요. 아직도 부족함을 많이 느끼며 배우는 있는 것은 현재 진행형이고요.
이: 한국에서 주로 거주하시며 일을 이어오시다가 베를린에 다시 돌아오시게 되었는데, 어떤 계기로 다시 베를린이라는 도시로 오시게 된 건가요?
김: 주 거주지를 작년에 다시 독일로 옮겼는데요. 한국에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도 있어서 사실 이전에 한국에서 일하면서 독일 프로젝트를 할 때와 비교해서 현재 일하는 형태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독일로 주 거주지를 옮기게 된 이유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에서 나만의 또 다른 사업을 새로 시작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해오던 예술, 디자인, 건축 및 인테리어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사업적인 면까지 포괄해서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런 생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준비하던 중에 절친한 작가 친구가 함께 재미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제의를 했어요. 그렇게 해서 저의 사업적 경험들과 디자인적인 감각이 함께 들어간 Cafe Everyday is Sunday를 오픈하게 됐습니다.
이: 카페 이름 Everyday is Sunday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내포되어있을까요?
김: 특별한 의미가 내포된 건 아니에요. 매일 일요일처럼 여유롭게 보냈으면… 하는 생각에 Everyday is Sunday라고 붙였어요.
이: Everyday is Sunday 카페라는 공간이 어떤 방향을 지향하는지 궁금합니다.
김: 앞서 말씀드렸듯이, 친구랑 함께 디자인 작업도 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하고 열었어요. 그렇다 보니 우선은 사업적인 면이 강조되는 공간보다는 문화적인 공간의 역할을 지향하고 있어요. 그리고 또한 한국문화를 알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면 바람도 있고요. 그래서 저희 공간에서 한국분들의 다양한 전시, 예술 프로젝트 및 여러 가지 문화 행사와 모임들이 진행되는 것에 대해서 항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요.
이: 앞으로 많은 문화적 일이 발생하길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먼저 하신 선배로서 지금 독일로 오는 학생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김: 사실 어디에 살던 장소는 중요하지 않죠. 독일로 오게 된 본인의 선택이 중요하고 그것을 최대한으로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면서 후회 없는 유학 생활이 되길 바랍니다.
이: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Cafe Everyday is Sunday의 여러 가지 모습들 기대합니다. 오늘 인터뷰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