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연 (Kelly Jang) 작가
<연재 인터뷰를 기획하면서>
카셀 도큐멘타(dOCUMENTA Kassel) 및 비엔날레, 트리엔날레와 같은 세계 주요 예술 행사를 개최하면서 자타공인 국제 사회에서 주요 예술 흐름을 선도하고 있는 독일. 그중에서도 몇 년 전부터 예술가들 및 예술계 종사자들의 이목이 쏠려 집중되어 온 베를린. 독일 안에서도 수도라고는 믿기지 않는 저렴한 집세와 생활비 그리고 다양한 문화의 집합이라는 이유에서일까 베를린은 흔히 말하는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도시이다. 미술계의 핫 플레이스인 이곳에서 필자는 다양한 예술계 종사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각과 철학을 함께 나눌 기회를 연재 인터뷰를 통해서 마련해보고자 한다.
연재 인터뷰의 다섯 번째로 베를린과 네덜란드를 오가며 활동 중인 장경연(Kelly Jang) 작가를 만나보았다. 그녀는 홍익대학교 동양화 박사과정을 마치고, 유럽으로 건너왔다. 그녀는 네덜란드와 베를린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하였고 한국과 유럽에서 다수의 개인전 및 그룹전을 가졌다. `죽음 ´을 주제로 작업하는 그녀는 주제와는 너무나도 다르게 밝은 얼굴로 필자를 맞이해주었다.
이정훈 (이하 이): 안녕하세요. 우선 바쁜 일정 속에서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분위기로 이야기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진행하는 <예술의 도시 베를린에서 만난 사람들> 연재 인터뷰에 참여해주시는 분들께 공통으로 드리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을 시작으로 이야기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날 예술계의 주목을 받는 곳인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오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장경연 (이하 장): 현재 베를린에서 지내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하자면 2년 전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네요. 제가 유럽에는 늘는 짧은 여행 일정으로 방문하곤 했는데, 2013년에 한국에서의 박사과정을 마치고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학교의 박사과정 프로그램을 지원하면서부터 유럽에 머무르게 됐어요.
이: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이미 다 하셨는데, 다시 네덜란드에서 박사과정 프로그램에 지원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장: 제가 한국에서는 계속 동양화를 전공으로 박사과정까지 마치다 보니, 새로운 시각을 통한 리서치 기반의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에 네덜란드 헤이그의 박사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됐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박사 프로그램에는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고, 비자도 만기가 되어 다시 한국에 오게 되었죠. 한국에서 네덜란드에 있는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입주 약속을 받았고, 그 이후 독일에 계시던 지인분의 추천으로 처음 베를린을 접했어요. 이번엔 오랜 기간 머무는 데 필요한 서류들을 꼼꼼히 준비한 이후에 네덜란드를 거쳐서 베를린으로 오게 되었어요.
이: 베를린으로 오시기까지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겪으셨네요. 베를린에서의 활동을 이야기 나누기 이전에, 한국에서 해오셨던 작업활동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장: 2004년에 개인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전시활동을 했어요. 저는 작업할 때 문학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도연명의 '무릉도원' 이야기, 노발리스의 <푸른 꽃>, 김훈의 <공무도하> 그리고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같은 문학작품들에서 아이디어를 얻곤 했어요. 최근에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있고요. 이렇게 문학 작품을 통해서 제 작업의 주제나 세부적인 사항들이 정해지다 보니 개인전 및 제가 참여한 전시 대부분은 문학과 관련된 전시였어요. 그 배경에는 언제나 '죽음'이후의 시간에 대한 집착이 있었어요.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닌 '변화'라면 그 경계의 시간을 낙원(무릉도원)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는 작가 개인의 슬픈 기억을 치유하는 작업의 일환이기도 하죠.
이렇게 작업활동을 이어오면서 박사 논문을 썼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신났던 일 중의 하나였어요. 예술가에게 논문이 필요한가에 대해 비판적 견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제겐 관심 있는 분야를 연구하고 내 작업과의 고리를 찾는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이: 한국에서 위와 같이 작업과 박사 논문을 이어오시다가 베를린으로 오셨는데요. 베를린에서는 어떤 활동(예: 전시, 프로젝트 등.)들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장: 베를린 GlogauAIR 레지던시에서 있으면서, 레지던시의 오픈 스튜디오 (OPEN STUDIO)에 참여했고 연계 프로그램으로 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도 가졌었고요. 그리고 참여했던 전시로는 올해 10월 독일 Auguststraße에 위치한 GALLERY2에서 그룹전을 가졌고 이후에 KUNST [말] - Artist Talk Program에서 제 작업에 대해서 프로그램에 오신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었어요.
이: 우선 GALLERY2에서 진행되었던 전시가 궁금한데요. 독일 갤러리에서 진행된 전시에는 어떤 작품으로 참여하신 건가요?
장: GALLERY2에서의 전시는 독일 통일 25주년을 맞이하여 기획된 전시였어요. 이 전시에서 저는 변화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참여했어요. 서독과 동독으로 나누어져 있던 독일이 25년 전에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것처럼 둘에서 하나가 되는 변화, 포괄적으로는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변화 그리고 이러한 변화들에 저항하며 멈춰있기를 바라지만, 결국에는 이러한 변화들을 받아들이는 저 자신의 모습을 참여 작품을 통해서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 전시 참여 작품에 관해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작가님이 처음에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시게 되셨는지가 문득 궁금해집니다.
장: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가면, 초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을 잘 만난 것(?) 제게 늘 자신감을 주셨던 선생님이셨어요. 그리고 책을 좋아했었던 것이 제가 작업을 시작하게 된 또 다른 계기예요. 어릴 적에 읽었던 이국적인 풍경의 동화였었던 것 같아요. 그 책에는 그림보다는 텍스트가 더 많았었어요. 그러다 보니 스스로 이미지를 상상해야 했고, 상상 속의 장면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성인이 된 후엔 죽음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과 상처가 작업의 원동력이 되었네요.
이: 작가님의 작품에서 중요한 주제나 요소가 있다면 어떤 걸까요?
장: 어떤 시간 속에서 어떤 장소와 마주치는 일이 제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예요. 예전에는 종종 산에 가서 주변 풍경과 사물들을 붓으로 스케치했어요. 이후에 큰 그림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제가 했던 스케치를 보면 사실적인 풍경이 아닌, 그 순간에 내가 느꼈던 감정과 시공간이 담겨 있어요. 지금은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핫(hot)'한 문화를 반영하는 유럽의 여러 모습이 제 작업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문학작품에서 작업의 방향성 및 주제에 대한 영감을 많이 받아요. 이때도 마찬가지로 작품 안의 문장들과 저만 그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할 때가 있거든요. 어떤 시간과 장소를 대면하면서 그 순간에 느끼는 감정들이 작품의 분위기와 주제와 연결이 돼요.
이러한 요소들은 지금의 스틸 라이프(Still-Life)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많이 줬어요. 저는 정물이 가진 멈춘 시간(still)과 그 무한한 공간(life) 안에서 모든 스틸 라이프 작업이 `결국에는 변화할 것이다 ´라고 메시지를 준다는 점에 주목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이러한 메시지는 저의 또 다른 작업인 ''그곳에 머무르기를 (Stay in it)'' 시리즈로 이어져요. 이 시리즈에서 보이는 오브제는 연약한 거미줄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자연이에요. 또한, 시간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슬픈 욕망에 대한 시선이기도 해요. 시간을 그대로 잡아두고 싶지만, 끊임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 속에서 변화를 받아들이는, 그리고 다시 한 번 삶의 희망을 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이: 이러한 작품에 대한 설명들이 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을 통해서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과 나눌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KUNST [말] - Artist Talk Program의 9월 참여작가셨는데, 어떤 계기로 참여하시게 된 건가요?
장: 사실 이 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은 베를린에서 활동 중이신 큐레이터 분과 함께 기획한 프로그램이에요. 제가 참여했던 GALLERY2에서의 그룹전과 함께 맞물려 진행되었어요. 갤러리 측에서 감사하게도 프로그램을 위한 장소를 제공해주셨고 저 외에 다른 아티스트 한 분과 함께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예전에 베를린 GlogauAIR 레지던시에 있을 때, 아티스트 토크를 한 번 참여한 적이 있어요. 토크 프로그램에 참여를 해보니까, 찾아주신 분들과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을 통해서 작업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도 있었고, 다양한 시각을 통해서 제 작업에 관해서 이야기 들을 수 있어서 굉장히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토크 프로그램 제의를 받았을 때 스스럼없이 참여하겠다고 했죠.
이: KUNST [말] - Artist Talk Program에서의 내용을 간략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장: 저의 주요 작업이 한 사람의 부재, 죽음과 동양의 낙원 이야기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스틸 라이프 프로젝트로 연결되어 확장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최근 시도한 꽃상여 작업도 소개했어요.
이: 작가님이 참여하셨던 GALLERY2에서의 전시와 KUNST [말] - Artist Talk Program 모두 베를린에서 진행되었는데요. 작가님에게 베를린이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요?
장: 베를린은 여전히 곳곳에서 전쟁을, 부끄러운 역사를 상기시키고 있죠. 자신이 가진 커다란 상처를 그대로 보여줄 때, 자유로운 마인드가 전제되어 있어야 멋있잖아요. 베를린은 그런 곳이죠. 자유롭지만 아프고. 아프면 아픈 대로. 괜찮은 '척' 하지 않는 곳. 그런 예술가들이 많은 곳.
저는 베를린에서 아티스트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굉장히 강하게 받았어요. 그리고 많은 아티스트들이 베를린에 있지만,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서로의 작품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작품에 대한 평가가 다른 편견들(예를 들자면, 국적/성별/나이 등.)로 흐려지지 않고, 작품에 대해서만 직접 이루어지는 것이 좋았어요. 또한, 예술의 기술적인 면보다는 독창적인 개념과 아티스트의 철학을 존중하는 곳이라고 느껴집니다.
이: 독자분들이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베를린에 대한 글을 보고 더욱이 베를린에서의 예술을 더욱이 궁금해하실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들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장: 네덜란드와 베를린을 오가면서 내년에 있을 개인전과 그룹전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활동 중이신 큐레이터 분과 함께 지속해서 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 있어요.
이: 내년에 있을 전시 잘 진행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시고자 하는 프로그램들도 잘 진행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