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 작가
<연재 인터뷰를 기획하면서>
카셀 도큐멘타(dOCUMENTA Kassel) 및 비엔날레, 트리엔날레와 같은 세계 주요 예술 행사를 개최하면서 자타공인 국제 사회에서 주요 예술 흐름을 선도하고 있는 독일. 그중에서도 몇 년 전부터 예술가들 및 예술계 종사자들의 이목이 쏠려 집중되어 온 베를린. 독일 안에서도 수도라고는 믿기지 않는 저렴한 집세와 생활비 그리고 다양한 문화의 집합이라는 이유에서일까 베를린은 흔히 말하는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도시이다. 미술계의 핫 플레이스인 이곳에서 필자는 다양한 예술계 종사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각과 철학을 함께 나눌 기회를 연재 인터뷰를 통해서 마련해보고자 한다.
연재 인터뷰의 여섯 번째로 캐나다와 독일 베를린, 라이프치히에서 활동 중인 안재홍 작가를 만나보았다. 고립과 대립이라는 주제를 작품 속에 담고 있는 그는 현재 분단과 통일의 역사를 지닌 도시 베를린에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덧붙여, 이번 인터뷰의 현장 사진 기록을 도와주신 이소영 작가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정훈(이하 이): 안녕하세요. 2015년의 마지막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럽 안의 수많은 도시들 중에서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서 머무르시며 작업을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안재홍(이하 안): 베를린을 목적으로 독일에 온 것은 아녔습니다. 베를린으로부터 차로 2시간 거리의 라이프치히라는 도시에 있던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를 목적으로 처음 독일에 온 것 이였고요, 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시작하기로 되어있던 시점으로부터 3개월 정도의 여유를 두고 독일에 도착해 베를린에서의 삶을 짧게나마 미리 맛본 거죠.
이: 라이프치히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하시는데 베를린으로 먼저 오신 이유는 혹시 단순히 항공편으로 인해서 잠시 들리신 건가요?
안: 아니요, 적잖이 의도적이었습니다. 라이프치히에서의 레지던시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서 두, 세 가지 정도의 선택범위가 저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내다봤어요. 라이프치히 혹은 베를린을 기반으로 독일에서 계속 작업을 이어나가 볼 것인가, 아니면 북미 쪽으로 바로 귀국할 것인가를 결정을 하는 데에 있어서, 아무리 짧다 하더라도 베를린의 생활/작업 경험이 차후에 시간적 낭비 혹은 미련이 조금이라도 덜한 결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습니다.
이: 특별히 베를린으로 오신 이유가 있을까요?
안: 그건 제 작업 프로세스에 대한 오랜 고민 이야기가 대답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대개 대다수 작가들의 가장 보편적인 작업 방식은 메인이 되는 하나의 주제를 필두로 여러 개의 일관적인 시리즈 작업물들을 생산해내는 것이죠. 그런 데 반해 저는 특정 주제를 한 작품 이상의 수의 작품들로 "분산시켜" 담아내는 이 방식을 순순히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꼈어요.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 하나의 작품 속에 꽉 차게 담고자 하는 작업을 저는 했고, 그렇게 특정 작품이 마무리되고 나면 미련 없이 전부 다 비워낸 듯한 상태가 되고, 이후엔 동일 혹은 흡사한 주제나 구도, 채도 등 그 아무것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게 되어버리곤 했죠. 결국, 제 작품 각각의 개별성을 위해서 Series works로써 여느 작품들이 흔히 갖추게 되는 일체성/일관성이 의식적으로 희생되곤 한 거고요.
그렇게 작업을 계속해 오다가 2010년 즈음 우연히 지난 6, 7년간의 제 모든 작업을 연대순으로 혼자서 차분하게 하나하나 넘겨보며 관찰할 기회가 왔었어요. 무의식적으로 애써 부정하고 부정하다가 결국 인정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 모르고 있었던 것인지 저 자신도 명확하지는 않지만, 확실한 건 그때 제 작품들 속에 거의 한 점의 예외도 없이 심겨 있던 분리 혹은 고립에 대한 주제나 감정선에 대한 인식과 인정이 제 안에서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이에요. 당시가 그런 주제를 찾고 있던 시기였어요. 작업 시에 저 자신을 속이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밀접하면서도, 멀게는 사회적인 영역까지도 자유롭게 확장이 가능한 성질의 울림이 있는 주제를 갈망했었죠. 그런데 이것이 한번 보이기 시작하니까 몸이 근질근질해지더라고요. 이러한 주제들에 더 깊이 파고 들어가 보려 할 때 조금이라도 더 이상적인 환경은 어디일까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죠.
사회적으로 분단이라는 상황을 현재 겪고 있거나 혹은 분리/고립/대립의 과거가 보존 또는 잔재가 되어 있는 장소가 제 작업에 좋은 정신적 배경이 될 거로 생각했고,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으로 한국과 독일을 포함한 많은 나라 또는 지역들을 고려해 봤어요.
고려하다 보니 한국은 분명 범국가적 대립을 현재 70여 년째 겪고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분단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사회 속에서 교류되기보다는 특정 이데올로기로만 귀결돼버리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반면에, 독일은 2010년 통일 20여 주년을 기념하며 과거 분단 역사와 현재 통일사회 사이의 간극을 활발히 되짚어 보고 있었고 분단과 통일이라는 상황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경직되지 않은 채로 흥미로운 모양새를 띄면서 순환되고 있었어요. 그렇다 보니 독일이 제 작업환경에 이상적이라는 판단을 하게 됐고요. 그리고 독일 안에서도 분단의 경험을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인 베를린으로 오게 됐습니다.
이: 작업의 주제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 독일, 베를린으로 오시게 된 것이군요. 레지던시 프로그램 이후에 다시 베를린으로 오시게 되었는데요. 라이프치히라는 도시가 작업에 영향을 많이 주지 못했던 건가요?
안: 라이프치히라는 도시가 제 작업에 끼친 영향은 전혀 적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라이프치히와 베를린. 이 두 도시는 회화를 하는 저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환경이에요. 애초에 라이프치히를 목적으로 독일에 오게 된 것도 라이프치히라는 도시가 품은 분리와 고립에 관한 베를린과는 또 다른 스토리의 매력이 많이 작용했어요.
인물화 그리고 구상회화의 테두리 안에서 10년이 넘게 작업을 이어온 저로서는 제 작업에서 "구상 회화적인 요소들을 애써 배척하지 않으면서도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함께 유영하고 공존하는 것이 가능할 법하겠구나"라는 것을 처음 제시하고, 스스로 고민할 수 있게끔 해 준 곳이 라이프치히였거든요.
이: 라이프치히에 있는 레지던시에서 작업을 이어오시다가 베를린으로 오시게 됐는데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마치고 바로 베를린으로 넘어오신 건가요?
안: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마치자마자 베를린으로 바로 넘어온 건 아니에요. 제가 북미에서부터 꾀했던 작업 프로세스의 접근법이나 스타일을 변화할 수 있게 해 준 곳이어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어요. 여전히 구상회화가 지배적인 그곳 작가 진들의 "시대 초월적" 커뮤니티도 눈길을 잠시 돌린 사이 금세 사라지고 없을 것 같은…. 그래서 계속 주시하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미묘한 매력이 있거든요. 그러한 곳에서 제 작업에 일어난 변화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고착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9개월간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기간 이후에도 라이프치히에서 꼭 그만큼의 기간을 더 머물렀어요. 레지던시 측을 통해서 제공받은 같은 슈피너라이 단지 내의 다른 아틀리에 공간에서 작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죠. 결과적으로 라이프치히에서 1년 반 정도의 작업 생활을 했네요.
이: 라이프치히에서 계속 머무르시면서 충분히 작업을 이어나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이전에 잠시 머물렀던 베를린으로 작업 공간을 옮기셨단 말이죠. 작업 공간을 베를린으로 옮기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안: 라이프치히에는 라이프치히만의 특별한 음의 기운이 있어요. 화창한 여름날에도 뭔가 그늘지고 젖어있는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뜻밖에 이런 기운은 작가들에게 작업에 심취할 수 있는 물리적 그리고 심리적 여건을 마련해줍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대단히 큰 매력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이상적인 것이라고 한들, 극도로 단순화되고 좁혀진 선택권 안에서 갇혀서도 만족하며 산다는 것은 쉽지 않잖아요. 개인적으로도 한 가지 색깔만 존재하는 환경에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요. (웃음)
이런 점에서 라이프치히는 도시 전체적으로 굉장히 일괄적인 도시였어요. 어떤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 구역이 라이프치히 안에서는 더는 보이지 않더라고요. 이에 반해 제가 경험했었던 베를린은 정말 다양한 성격과 모습의 구역들이 공존해 있는 도시였었어요. 다양성의 존재라는 베를린의 매력이 저를 다시 이곳으로 오게 하였던 것 같아요.
이: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개인적으로 베를린에서 주로 지내와서 그런지, 라이프치히에서의 삶을 어떨지 새삼 궁금해집니다.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해서 현재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 작업하고 계시는데, 베를린과 라이프치히와 같은 독일 안의 도시들 이전에는 어느 곳에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안: 독일에 오기 전에는 주로 캐나다에서 작업 및 전시를 했었어요. 물론 지금도 캐나다와 독일을 오가며 활동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이: 그렇다면 유럽에서의 작업 생활을 처음 경험하신 건 언제인가요?
안: 대학교 4학년 때 이탈리아 피렌체에 가서 1년 동안 논문 쓰는 일과 졸업작품 활동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Off-Campus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학교에서 3, 4학년 신청자 중에서 매년 25명을 선별해 소수의 교수진과 함께 피렌체로 보내오고 있는 꽤 오래된 프로그램으로 알고 있습니다. 1년 동안 피렌체에 머무르면서 24시간 출입이 자유로운 학교 관리하의 스튜디오 건물을 드나들며 작업하고 또 생활했었어요.
이:피렌체에서는 어떤 작업을 주로 하셨었는지 말씀해주시자면?
안: 이탈리아 피렌체라는 장소의 특수성 때문에 르네상스풍의 작업을 하진 않았고요. 자유롭게 작업을 했었어요. 기술적인 면에서는 고전적인 붓놀림을 이용했지만, 인물이 방금 전에 퇴장한듯한, 알 수 없는 누군가의 기운으로 가득하면서도 고요한…. 그런 빈 공간들 속에 남겨진 인간 행위의 자취나 흔적들로 인물의 또 다른 이면을 표현하는, 일종의 '인물의 형상이 결여된 인물화' 작업들을 했었어요.
이: 위에서도 작가님이 구상회화를 10년 이상 작업하시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형식의 작업이 아닌 인물화 토대의 구상회화 작업을 지속해서 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안: 구상회화 이외의 여러 미디엄 작업도 언제든지 시도할 수 있겠지요. 선을 그어놓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러한 다각도의 예술적 접근과 소재적 시도는 욕구가 생겼을 때 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에요. 저는 아직 그런 확장 욕구가 강하지 않은 거죠. 단순히. 쌓아 올리는 데 집중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파고 안으로 들어가는 작업으로 감흥을 주는 작가도 있을 거고요, 또 이런 성향들은 납득할만한 이유 하나 제공되지 않고서도 언제든지 한순간에 뒤바뀔 수 있는 것이 예술 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2차원적 면 위에 저의 시그니처가 될만한 3차원적 세계관이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걸 목격하는 게 무척 흥미로운 상황이고, 이것이 어느 정도 안정세에 접어들면 그때 다시 그 안으로 다른 형식을 혹은 형상을 도입해 균형을 흐트러뜨릴 생각입니다. 그때 가서 어떤 특정한 미디엄이 적절해 보인다면 그걸 택하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죠.
이: 계속해서 작가님의 작업 이야기를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까 라이프치히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작업 방식의 변화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요. 어떤 과정으로 작업하시는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영향을 주는 요소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저뿐만이 아니라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도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안: 질서와 무질서의 반복 속에서 형상이 캔버스 위에 구현되는 구조입니다. 처음엔 여느 추상화처럼, 캔버스 위에 무작위적인 선들과 형태들이 놓이는 듯하다가, 선택적인 생략과 발전을 통해 마치 구상화와 같은 일루젼(illusion)을 일으키는 시점이 포착되죠. 그 시점을 시작으로 해서 그림은 질서를 구축하는 단계와 그 질서를 파괴하는 수많은 인위적 단계들을 격식으로 거쳐 가며 어느 순간 완성에 이르게 됩니다.
또한, 시청각매체를 통해서 직관적 영감을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구도나 형태, 색채가 실제로 완성까지 유지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불특정한 시각 매체를 관람하다가 "어, 저 프레임 괜찮은데… 저런 느낌으로 작업해볼까?"와 같은 외마디 생각으로 시작되는 작업도 흔합니다. 하지만 시초가 되었던 그 이미지의 자취는 질서와 혼돈의 수많은 덧씌우기 단계 속 어딘가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전체적인 작업의 방향은 구상인데 작업의 방식은 추상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입니다만, 작가님께서 주로 하시는 작업이 입체감 있는 인물화를 그리시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오늘날에 입체감을 잘 살릴 수 있는 다양한 재료들이 존재하고 이러한 재료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작업들이 동시대 미술에서는 더는 낯선 모습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말씀하신 입체감을 회화의 평면성을 가장 잘 수반하는 캔버스를 통해서 표현하는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안: 평면 위에 입체적인 세계를 구현하고 있는 수많은 화가가 과연 "좀 더 효과적인 소재가 있다"라는 말에 얼마나 반응할지 회의적입니다. 딱 잘라 "아니, 이것이 가장 효과적이다."라는 한마디 답으로 대화를 끝내버릴 작가들도 꽤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붓일까요. 그 어느 때보다도 실물을 구현해낼 수 있는 소재와 기술들로 넘쳐나는 지금 세상에서 왜 아직도 일루젼(illusion)인 걸까요. 이건 어쩌면 '화가'라는 것이 단순 유아적 유희 자체에 시초를 두는 흔치 않은 현대 직업군이라는 사실에도 답이 있을 수 있다고 저는 봐요. 이 유아기의 유희는 멀리(?) 나아가 삶의 수단이자 방식으로까지 발전되어 오면서도 이 "유희"라는 본질의 변형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서, 효과의 메커니즘이나 정당성, 타당성을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제 3자의 입장과 수많은 의식적 정신노동 속에서도 이 본능적 유희만은 동반시키려고 하는 화가들의 입장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흔히 작가들이 자신의 손을 거쳐서 나온 작품들을 두고 "자식과도 같다." 라 말하는 먼지 풀풀 나는 클리셰(Cliché)를 언급하지 않고는 설명이 힘들겠네요. 이러한 클리셰와 같이 작가에 따라서는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선을 그었다 지우기를 수 없이 반복합니다. 한 번의 붓질을 유지하느냐 마느냐로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을 두고 고민하는 경우도 흔하죠. 작가가 겪는 이러한 딜레마의 과정이 과연 작가 본인에게 '개선되어야 할 소재의 문제'로 다가올지 아니면 애증적 유희에 해당할지는 작가 본인만의 결정권이기도 함과 동시에 의무이기도 하겠죠. 모든 부모가 육아의 어려움을 토로합니다만, '버튼 하나로 눈 깜빡할 새에 십수 년을 건너뛰어 아이를 성인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제의에 생각보다 현저하게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버튼을 누를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성적인, 능률 위주의 사고와 맞닿을 수 없는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이율배반적인 유희라는 점에서 작업활동은 육아와 그렇게 닮아있는 것 같아요.
현대미술에서 제시하는 당위성보다는, 붓을 직접 화폭에 놀려 가면서 몸으로 직접 느끼고 내치고 또 품었을 때, 내가 구현하고자 의도했던, 또는 의도치도 못했던 무언가가 나왔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어떠한 희열 같은 걸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려울 것 같네요.
예술활동은 물질적으로 뭔가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듯한 모양새를 띄는 바람에 얼핏 생산활동이라고 보기 쉽지만, 본질의 중심엔 비물질적인 소비/소모에 대한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고 봅니다.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이성이나 능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죠.
이: 갑작스러운 질문이 작가님께 실례가 되지 않았길 바랍니다.
안: 아니요. 괜찮습니다. (웃음)
이: 작업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인터뷰 초반에 작가님께서 말씀하셨던 작품 속에 담긴 주제인 고립, 분리라는 개념들이 질서와 무질서의 반복과 조화라는 작업의 과정 속에도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안: 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이: 이번에는 작업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고립과 분리와 같은 작품의 주제들은 어떤 경험들을 통해서 작업에 담기게 된 건가요?
안: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주제들이라기보다는 저를 기준으로 존재하는 전체적인 주변 환경에서 제가 무엇보다도 능숙하게 감지해 낼 수 있었던 감정의 기류에서 온 거라고 저는 봅니다.
이: 그렇군요. 고립과 분리라는 작품 주제를 넘어서 작품들에 담긴 작가님의 세계관이 있으신가요?
안: 특별히 한 지점에 정착된 세계관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작품들도 지금은 굳이 제 협소한 세계관을 부여해서 영역을 제한하고 싶지 않고요. 저에게 이 분리/고립/대립 시리즈는 표출과 주장이 아닌 감상 또는 관찰의 행위입니다. 개념이 하나의 산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개념을 거리와 각도 그리고 감정의 시선을 모두 달리해서 수십 장을 촬영/기록하는 과정입니다. 이 개념들의 지형과 영역이 자신을 드러내어 가는 과정을 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제 작품에 스스로가 어떤 세계관을 부여했다면, 지금까지의 제 작업들은 이 고립과 분리라는 주제를 은연중에 라도 '어떻게든 극복해내야 하고 하나로 되돌아 가야 하는 불완전한 상태' 따위로 치부했을지도, 어쩌면 그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르죠.
이: 북미에 있는 캐나다와 유럽의 베를린을 오가며 활동을 이어가시고 계시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베를린의 장점은 어떤 걸까요?
안: 북미 쪽의 미술과 비교를 하자면, 북미의 미술은 아직도 팝아트와 키치 작업이 미술 시장에서 주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므로 그것에 가담하지 않는 작가들의 작업은 모험적인 작업인 듯 보이는 경향이 있죠. 이에 반해 베를린에서는 하나의 사조가 주를 이루고 있다기보다는 다양한 사조의 미술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양성이 자연스럽게 전승되고 있는 공간이라는 점 자체가 매우 큰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 이러한 베를린이 작업에도 영향을 많이 주는가요?
안: 베를린 안에서의 어떤 개별적인 요소가 영향을 준다기보다는, 사회 전반에 걸쳐 형성되어있는 분위기와 성향의 다양성이 영향을 많이 주죠. 이러한 분위기와 성향들이 단기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이어나가지는 모습들 자체로 작업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저의 작업들이 이러한 사회 속에서 혹은 대중들 속에서 확장되었을 때, 베를린은 받아들여지는 사회라는 무의식적인 믿음이 가장 큰 영향입니다.
이: 마지막으로 베를린에서의 앞으로의 계획들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해주신다면?
안: 앞으로 베를린에서 새로운 작업들로 전시를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이: 베를린에서 전시하시게 되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연말이라 바쁘신 와중에도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안: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