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외로움의 경계에서] 01 무관심과 손절의 어디쯤
백수 아닌 자발적 은퇴자의 삶(누구는 같은 말이라 여길 것이다)을 산지 7개월이 되었다. 은퇴 전 물리적인 공간, 그 공간에서만 유효했던 인간관계, 그 공간에서만 의미가 있었던 시간들의 총합 즉 일이라고 불렀던 것들이 사라져 버린 진공을 결국 외로움과 고독 이 두 가지가 채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고독은 자발적인 것으로 의식의 고양, 영혼의 충만함을 가져다주는 옥시토신의 영역이지만 외로움을 통증/고통의 영역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되는 7개월이었다.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려 보기도 했고, 용기 내어서 전화를 했지만 우연을 가장한 의도적인 거절이 명확해 보이는 핑계들을 마주하면서 무게 중심이 내게 있지 않고 친구라고 불렀던 또 다른 타인들에게 있으면 바로 외로움의 심연에 빠져 익사하거나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다. 이제는 누구의 전화를 기다리지도 않고, 먼저 제안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하기로 했고 그렇게 하고 있다. 확연하게 누가 불러내어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튀어나가지 않게 되었다.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우선순위는 내가 되었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되었고, 내 스케줄이 되었다.
체념이 아니라 스스로 책을 통해 누군가를 만나고 음악을 통해 누군가를 듣고 적절한 운동과 악기 연주, 그림 그리기, 혼자 여행 가기와 여행 정보를 습득하기, 일본어 공부하기, 사진 찍기,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도 즐기고 단골들과 적절하게 어울리기, 다가올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 공부와 병행해서 소액으로 투자해 보기(정말 소액)등 자존감을 높이는 일에 더 집중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 가늘게 오래!
아 그렇다고 외톨이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밥 먹자고 먼저 전화해 주는 자동차 세일즈 하는 친구, 함께 기꺼이 공연을 보러 가주고 즐거워해주는 후배들이 있다.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20년째 모여서 웃고 떠들고 노는 친구들도 10여 명 있다. 가끔 함께 여행을 다녔던, 지금은 뜸해진 톡에서만 친한 친구들도 있다. 분명한 것은 7개월 은퇴자의 삶을 살고 보니 적당하게 무관심하거나 손절하는 것이 맞다고 확신(물증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나름의 촉으로, 나는 Highly Sensitive Person이다)이 드는 몇몇이 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모임 때문에 가끔은 만나야 하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무관심해져 버린 혹은 손절해 버린 친구(?)들과 웃으며 얼굴을 마주하고 농담도 주고받는 것이 쉽지가 않다. 나의 에너지를 훔쳐가는 에너지 도둑들과는 이제 정말 보고 싶지가 않다. 자신들이 필요한 일이 있을 때에만 전화하는 사람들, 먼저 그 어떤 것도 청하지 않는 사람들, 마지못해 모인 자리에서 더 이상 나에게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 만남을 청할 때 여러 가지 핑계를 대지만 절대로 다른 날짜로 만남을 제시하지 않는 사람들, 약속을 잡고도 무수히 많이 그 약속을 쉽게 깨버리는 사람들(나와의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 내가 마음 아파하는 부분을 알면서도 장시간 자랑질을 하는 사람들, 결국 내가 한 때는 가장 친하다고 여겼던 아니 속았던 사람들 그들이 바로 나의 에너지 도둑들이고 무관심과 손절의 경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이고 나를 외로움의 심연에 빠뜨릴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조용하게 기도하는 시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음악 에세이에 등장하는 곡들을 찾아서 들어보고 그가 느낀 것을 나의 느낌으로 체험해 볼 때의 만족감, 일본드라마에서 아는 단어와 문장들이 조금씩 들 릴 때의 기쁨들, 비틀스의 something을 연주할 수 있게 되는 순간들을 하나씩 나의 서랍에다가 저장해두는 만족감으로 나의 진공을 채워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2025 0731 am 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