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REview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래 Oct 10. 2022

어른이 되어가는 통과의례

연극,  <옥상 위 카우보이>

친구들과 가끔 이런 농담을 나누곤 한다. 우리는 여전히 애 같은데, 시간이 우리의 멱살을 잡고 어른이라는 바운더리 안으로 집어넣은 것 같다는 이야기. 시간이 지나 저절로, 살다 보니 얼떨결에 어른이 되어버린 기분에 자주 사로잡히곤 한다.

출처 : 에브리타임

유명한 인터넷 밈 중에서도, 그냥 살다 보니 대학교 4학년이 되었고 전공 지식은커녕 본인을 '말하는 감자'라고 비유했던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주변에서 소비되는 걸 보면 이건 나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라는 고민을 담았다는, 공연 <옥상 위 카우보이>의 소개글에 관심이 갔다.


연극 <옥상 위 카우보이> 포스터

  <시놉시스>

"아줌마 남편이랑 우리 엄마랑 바람났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는 지금 임신 중이에요!!" 

나의 아빠가 저 아이의 엄마와 바람이 나서 꼬여버린 두 여고생이 있다. 둘은 환풍기도 멈춰버린 학교 옥상 위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싸우다, 놀다, 결국 함께 운다. 

연극 <옥상 위 카우보이>는 어른들의 문제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누군가의 자식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되어 성장하는 이야기다.




극을 보는 내내 '통과의례'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통과의례란 대학시절 얕게나마 공부한 인류학에서 배웠던 단어로, 일정한 지위나 상태에서 다른 지위나 상태로 넘어갈 때에 행해지는 과정을 말한다. 프랑스 인류학자 방주네프에 따르면 인간은 세 단계의 의례를 거친다고 한다. 


첫 번째 단계인 분리는 상대로부터의 결별을, 전이는 분리의 단계 이후 혹독한 고난을 거치는 단계, 그리고 분리와 전이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지위에 오르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통합의 단계까지. 


나는 극 속 주리와 윤아에게 이 사건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겪게 되는 일종의 통과의례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기억에 남는 '아빠에게서 졸업하겠다'라고 선언하던 주리와, 이미 집을 나와 옥상에 텐트를 치며 생활하고 있던 윤아의 모습에서 분리의 단계를 엿보았기 때문이다. 


분리의 단계 이후 겪게 되는 전이의 과정은 혹독하기 그지없다. (극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이들 가족을 둘러싼 이 갈등은, 주리와 윤아가 겪고 있는 전이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본인들에게 주어진 환경을 원망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도 하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 곁에 있는 상대와 괜히 치고받고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이 단계를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법을 조금씩 익혀나갈 것이다.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고서 어른이 '되어버린' 어른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연극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옥상 위 카우보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극의 첫 장면이 옥상 위에서 만나는 주리와 윤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는 점에서 '옥상 위'는 이해가 갔지만, 뒤에 붙은 '카우보이'라는 단어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극의 장면들을 오랫동안 곱씹고 난 뒤, 내가 내린 나름대로의 정의는 이렇다. 로데오 거리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카우보이의 이미지. 흙먼지가 날리는 길 앞에서 순탄치만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앞으로 달려갈 아이들의 모습을 카우보이로 칭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 


어른이 되는 과정은 이다지도 쉽지 않은 길인가 보다. 그렇지만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겠지. 극 중반, 딸 주리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던 아빠가 청소년 상담센터로 전화를 걸어 '전 어른인데요,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묻던 장면처럼 어른이 되어도 풀지 못한 물음표를 매일 던져가면서 말이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5개의 드라마가 들려주는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