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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 Sep 13. 2022

25개의 드라마가 들려주는 위로

도서, <위로의 미술관> (진병관, 2022)


남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내가 말하고 있는 이의 세상에 초대받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의 이야기에서 나는 나와는 또 다른 세계를 엿보기도 하고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살피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 있다.


도서 <위로의 미술관>은 이런 나에게 25명의 미술가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렇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모두 각자의 드라마 속 주인공 같다. 학창 시절, 시험공부를 위해 대표 작품으로만 외웠던 예술가들의 이름을 진병관이라는 저자의 시선을 더해 다시 한번 우리에게 그들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글은 크게 4가지의 카테고리로 유형화하여, 1장(너무 늦었다고 생각되는 날의 그림들), 2장(유난히 애쓴 날의 그림들), 3장(외로운 날의 그림들), 4장(휴식이 필요한 그림들)으로 이들의 삶을 펼쳐 보인다.


저자는 이들의 생애를 간략하지만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독자의 마음에 와닿게 서술한다. 성공한 미술가로서의 삶이 아니라 그들이 겪었던 삶의 굴곡들, 고통, 시련들을 함께 이야기한다.


책 속 목차 일부


특히나 내 마음을 오랫동안 저릿하게 만들었던 건, 25명의 미술가들의 삶을 압축시킨 듯한 각각의 부제였다. 부제에서 전하는 이 메시지가 나보다 먼저 이 삶을 살아낸 미술가들이 오랜 시간이 흘러 나에게 전하는 위로의 편지와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꿈이라는 말이 이제는 실현하기에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어도 언젠가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마음을 간직한다면 마치 디즈니 영화처럼 그 꿈이 현실이 되는 일은 여전히 많다.
(우리는 언제나 너무 빨리 이루길 바라요 – 모리스 허쉬필드/그랜마 모지스, p.33)
마티스는 기존의 미술처럼 여인을 정갈하고 아름답게 그려내는 방식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색채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그릴뿐이었다.
(즐거움을 담고 싶었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무도 모르게 – 앙리 마티스, p.61)


사실 고백하건대,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작동하는 나만의 길티 플레져(어떠한 일을 할 때에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끼지만, 동시에 엄청난 쾌락을 만끽하는 심리)가 있다. 누군가의 삶의 한 발자국 들어갈 때마다 그들의 삶에 나와 비슷한 구석이 없는지 살펴보는 이 행동은, 현재 불만족스러운 나의 삶에서 기인할 때가 많다.


꿈을 꾸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 모리스 허쉬필드와 그랜마 모지스의 모습에서 앞으로 어떠한 길을 걸어 나갈지 고민하는 나를 비추어 보게 되고, 기존의 미술과는 달리 오로지 자신의 감정 묘사에 집중했던 앙리 마티스의 모습에서 남들의 시선으로 새로운 도전에 있어 머뭇거리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인생에는 항상 굴곡이 있다. 원하는 것을 이뤄가며 오를 때가 있고, 실패를 맛보며 내려갈 때가 있다. 누군가의 오르막은 더 가팔라 보이기도 하고, 내 인생의 내리막은 더 급격하게 느껴진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위안 – 램브란트 팔레인, p.223)


가끔 하루가 버겁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책은 내게 이런 말을 건넨다. 인생에는 항상 굴곡이 있다며 책이 건네 오는 위로에, 최근 자주 들었던 노래 속 가사가 겹쳐졌다.  


하트 그려봤잖아 굴곡을 두 번은 거쳐야 돼*


비단 하트뿐만 일까? 별을 그리기 위해서도 우리는 늘 5개의 굴곡을 넘어야지만 별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다. 하얀 도화지 위에 반듯하게 그려진 단 하나의 직선만으로는 아무것도 그려낼 수도, 어떠한 그림도 될 수도 없다.


이처럼 삶에서 굴곡은 나를 또 다른 세상으로 이끌 드넓은 바다가 되어주기도, 울창한 숲을 품고 있는 산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 삶이 버겁다 느껴질 때마다 이 책의 25명의 미술가들의 삶을 자주 곱씹어야지. 나라는 드라마를 제작 지원해주는 든든한 조력자가 25명이나 생긴 기분이다.    



*It's You (Feat. ZICO), 샘김(Sam Kim) (2018)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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