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았죠' 금지
우연히 보게 된 심리학 영상 속에서 강연자가 이런 말을 했다.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성취에 대한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들일 때에는 자기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원인 분석에 그렇게 공을 들이는 반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결과 앞에서는 '왜 이런 결과를 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굳이 멀리서 예시를 찾을 필요가 없다. 나만해도 빨간펜으로 죽죽 그어진 문제들을 바라볼 때면 가슴에 비수가 꽂힌 것처럼 속상해하고 '왜 틀렸는지' 열심히 들여다보는 척이라도 했던 것 같은데, 동그라미 친 문제들은 잘 쳐다보지 않았다. 틀린 문제가 너무 많아서 맞은 문제까지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비슷하게 오답노트를 쓰라는 얘기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지만, 정답노트를 써보라는 말은 잘 들어보지 못했다.
이런 기억들 때문일까, 강연자의 말처럼 우리는 잘한 걸 분석하는 시간을 잘 가지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겸손이 미덕'이라는 한국사회에서 행여 본인의 언행이 '잘난 척'이 되어버릴까 걱정이라도 되는 건지, 성취의 원인을 '운'에게 자주 돌리는 경향이 있다.
물론 결과에 있어 운이라는 녀석이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순 없다. 같은 양의 노력을 들였다고 할지라도 A는 대박을, B는 쪽박을 칠 수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나는 A와 B의 결과보다는 그 속에서 변치 않았던 나의 노력의 시간들에 더 집중하고 싶다. 수많은 노력의 시간을 '운'이라는 단어 하나로 퉁쳐버린다니, 너무 아깝지 않나?
꽤 오래전에 보았던 드라마 속 대사 하나를 아직까지도 좋아한다. 운은 모으는 것이라며, 좋은 일을 하면 운이 쌓이고 나쁜 일을 하면 운이 줄어든다는 말. 몇 년 전 나는, 이 대사를 들으면서 인생에 순도 100%의 운은 없겠구나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운이라고 생각했던 결과의 농도 속에는 '과거의 내가 쌓아온 노력과 선행 등'이 아주 짙게 녹여져 있음을. 그래서 나는 운이란 짧은 단어만으로는 결코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 가지는 힘을 믿는다.
어느 날 만약 나에게 정말 행운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이게 진짜 내가 이룬 게 맞을까?', '운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닐까?'라는 생각은 잠시 지워두려 한다. 성취의 공을 '운'에게만 돌린다면 오늘의 나를 만든 수많은 어제의 나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러지 않더라도, 내가 쌓아 올린 성취를 '운'이라는 이름으로 축소시키려는 사람들에게 자진해서 먹잇감을 줄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니, 당분간은 나에게 '운이 좋았죠'라는 말은 금지다. 당신의 성취는 운이나 기적, 행운이 아니다. 당신이 열심히 피워낸 결과다.
그래서 앞으로는 나도 조금 뻔뻔해지기로 했다. 아직 입 밖으로 내뱉기는 조금 힘들겠지만, 마음속으로 열심히 연습해본다.
이거 다, 제가 열심히 해서 그런 거예요.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