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반이 아니다
나마스떼.
오늘도 요가를 마치고 선생님과, 같이 수업을 들은 수강생들에게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아 인사를 건넨다. 아침 요가를 다니게 된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일단 시작을 하고 나면 잘하고 싶은 마음이 요가 시간마다 나를 괴롭힌다.
선생님을 따라 옆에서 다른 수강생들은 기인열전을 펼치고 있는데 나는 해내지 못하는 동작들을 마주할 때, 와중에 눈치 없이 두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파르르 떨릴 때, 중심을 잡다가 매트 위로 홀로 자빠질 때면 괜히 얼굴이 화끈해진다. 이 날씨에 이마에는 땀까지 송골송골 맺힌다.
하루는 옆 사람 동작을 커닝해가면서도 도저히 굽혀지지 않는 나의 다리를 부여잡고 연신 구부리려 낑낑대고 있을 때였다.
"무리해서 동작을 만들려고 하지 마세요. 내 몸에 시선을 맞추고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까지만 동작을 이어 가세요. 숨을 고르고 괜찮아지면 그다음에 한 동작 더 나아가면 됩니다."
마스크 사이로도 나의 애쓰는 표정이 숨겨지지 않았는지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
문득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에 속아, 단 며칠 만에 나보다도 몇 개월 혹은 몇 년 먼저 시작한 다른 이들의 실력만을 탐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시작이 반이라는 말에 나는 자주 괴로웠다.
칼이라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지의 마음으로 2n년을 살아오면서, 그놈의 '시작'이 주는 중압감에 짓눌려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한 일들이 많았다. 칼을 뽑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걸 뽑으면 뭐라도 제대로 이루어내야 할 텐데...' 라며 시작 앞에서 망설이던 날들.
자꾸 결과를 가늠하게 됐다. 이 정도면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만 시작했다. 나 스스로 나의 한계를 규정짓고 그 안에 나를 가두어버린 셈이다. 그렇게 스스로 만들어낸 틀 안에서, 내가 예측할 수 있는 성취만을 이뤄가며 별 탈 없어 보이는 삶을 살아왔던 건지도.
누구에게는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의욕을 도모하는 말이 되어준다는데, 나에게는 그 효능이 영 신통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까지 와 버렸다. 이 말을 들으면 숨이 갑자기 턱 막혀버리는 증상. 게다가 스스로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생각까지 들 때면 불안감은 배가 되어 나의 숨을 조여 왔다. 시작만 했을 뿐인데, 일의 절반을 벌써 망쳐버린 기분이랄까.
누군가를 만날 때에도 나는 '이 사람과는 잘 맞을 것 같다'라고 생각이 드는 사람들을 골라 사귀었다. 시간이 오래 지났기에 (부끄럽지만) 고백하건대, 스무 살 그 시절의 나는 소개팅이나 학교 과팅을 나갈 때도 무슨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러 나가는 자리인 것처럼 긴장하곤 했다.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고 부자연스러운 행동들을 일삼은 지난날의 내 모습이, 어쩌면 그때 좋은 친구로라도 남았을 수도 있었을 지나간 인연들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내게 너무 비장하다. 시작하는 마음을 먹는 과정에서부터 나의 체력과 감정을 갉아먹는다. 시작도 하기 전에 바닥이 드러난 체력에 나는 그다음 스텝을 내딛을 여유가 없어진다. 용케 시작을 하였다 할지라도 끝맺음에 늘 어려움을 겪었으니, 시작은 내게 언제나 어려운 것일 수밖에.
이제 나는 '시작'이라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마음을 의도적으로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시작은 시작일 뿐, 결코 '반'이 아니다. 시작의 첫걸음은 분명 대단한 것이지만, 나에게는 더 중요한 다음의 스텝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러기 위해서 잊지 말아야 할 또 한 가지. 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 것. 어찌 첫 술에 배 부르랴. 여전히 나는 요가를 정말 잘하고 싶지만, 오늘은 더 욕심내지 않고 딱 이 동작까지만 견뎌내고 숨을 고르기로 한다.
시작부터 지치지 않고 '잘하고 싶은' 이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서.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