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8할의 냉면
폐업신고를 했다. 부모님께서 꼬박 12년 동안 운영해오시던 음식점이었다.
내가 중학생 때 부모님은 냉면집을 시작하셨다. 가게를 시작하면서 아빠의 옷장에는 새하얀 와이셔츠 대신 활동하기 편한 옷들이 채워졌고, 아침마다 엄마는 아빠의 점심 도시락을 싸지 않고 아빠와 함께 가게로 향했다.
해가 다 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오신 부모님의 앓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거실에서 풍기는 파스 냄새가 싫었다. 나는 그때 그 파스 냄새가 너무 싫어서 숨을 자주 참았다. 내 방에서 이어폰으로 애써 귀를 막으며 잠을 청하기도 했다.
이걸 사면 냉면 몇 그릇을 더 팔아야 한다며 물건을 살 때마다 냉면의 단위로 가격을 셈하는 엄마의 이상한 계산법이 싫었다. 언제는 나 역시 그 계산법을 하다 방금까지 사려던 걸 내려놓았을 때, 나는 흠칫 놀라며 오기로 다시 그 물건을 집어 그것을 사 오던 때가 있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한 친구에게 '너는 대학에 떨어지면 너희 가게에서 일하면 되겠다'는 말을 들었다. 분명 우스갯소리로 던진 농담이었을 텐데 나는 어째 웃음이 나오지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으면서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힘들어 보이는 부모님처럼은 살고 싶지 않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날에는 가게에서 퇴근하시던 부모님이 야자를 마친 나를 데리러 학교 앞으로 오신 적이 있었다. 오래된 연식의 차로 딸을 데리러 온 것이 마음에 걸리셨는지 운전석 거울 너머로 아빠는 내가 부끄러울까 봐 걱정이었다며 머쓱하게 웃으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때 나는 무슨 대답을 했던가. 그때보다 더 어렸던 시절에 번듯한 양복이 아닌 옷을 입고 가게로 출근하시는 부모님을 잠시나마 부끄러워했던 지난 기억을 들킨 것만 같아 얼굴이 시뻘게졌다.
시간이 흘러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도 나는 매 주말마다, 방학마다 집으로 올라와 가게로 향해야 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도 창문 밖으로 날이 좋으면 손님이 많아서 행여 일손이 부족하지 않을까, 날이 좋지 않으면 가게에 손님이 없어 부모님이 속상해하시는 건 아닐까를 걱정하고 있는 내가 싫었다.
동기들과 밥을 먹으러 갔을 때 부모님 나이대의 사장님들을 뵐 때면, 무례하게 구는 손님들에게도 웃으며 대응하시던 엄마 아빠의 얼굴이 생각났다. 하나도 죄송할 거 없는 일에도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그 모습이 나는 정말 싫었다.
며칠 전에는 옷장을 정리하다가 소매 끝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 옷을 발견했다.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 몇 번이고 세탁을 해도 지워지지 않던 양념장 자국이었다. 이걸 보고 있자니 일손을 돕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코를 타고 고소하게 올라오던, 어느새 옷에 밴 참기름 냄새도 함께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도 싫었다.
오랜 동네 친구를 만났다. 우리 가게에도 자주 놀러 오던 친구였다. 이제 부모님이 가게를 그만두시게 되었다고 말하자 친구는 내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내가 그만두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냥 우리 집 냉면이 먹고 싶을 것 같다며 대충 말을 둘러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리창 너머로 안이 텅 비어있는 가게를 보는데 기분이 진짜 이상했다. 침대에 누워서 12년 동안 지금까지 엄마 아빠가 쌓아 올린 냉면 그릇의 높이는 어느 정도 일까 가늠해보려다가 금방 그만뒀다. 어차피 밤을 새도 다 못 셀 것 같았다.
그렇게 쌓아 올린 냉면 그릇은 어느 날의 우리 집 저녁 반찬이 되었고, 지금 내가 입은 옷이 되기도, 나의 한 학기 대학 등록금이 되기도 했다. 이제 보니 냉면이 나를 키웠다. 왜인지 마음 한 구석이 식초와 겨자를 너무 많이 넣어버린 냉면육수처럼 시큼해진다. 때를 놓쳐 팅팅 불어 터진, 서로 엉겨 붙은 면발처럼 어딘가 한쪽이 무거워진다.
그나저나 우리 집 냉면은 겨울에 먹어도 진짜 맛있었는데. 누가 나에게 그렇게 먹고도 질리지 않냐며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난 우리 집 냉면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가게를 하고 있을 때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어쩌면 나는 냉면을 되게 좋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동안은 이 시큼하고 무거운 기분에 내내 사로잡혀 있을 것만 같다. 그냥,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