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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 Jan 24. 2023

미워하는 마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라


나는 첫 회사에서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미워할 수도 있구나를 처음 알게 됐다.


주기적으로 사람이 좋아지기도, 싫어지기도 하는 나의 뫼비우스의 띠가 유독 그 사람한테는 통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싫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살까. 내 마음속에서 그에 대한 모든 문장은, 그를 이해해 보려는 물음표보다는 한숨의 온점으로 더 자주 찍혔다.


그가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은 그의 의자에 몰래 압정을 깔고 싶다고 생각했으며 그가 매일 아침 문지방에 새끼발가락을 찧기를, 온갖 재수 없음이 그에게 달라붙기를 기도했다. 회사에서 속까지 느글거리는 그의 미소를 마주할 때면 지금이 코로나 시국이라 다행이라 여기면서 나의 마스크 가면을 연신 고쳐 쓰곤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다. 일이 한창 몰릴 때도 아프지 않았던 몸이 슬슬 아파왔다.


당시 다이어리에 썼던 메모


우선 입맛이 없어졌다. 웬만해서는 입맛을 잃지 않았던 나였기에, 당시에 써 놓았던 다이어리 한구석에는 이런 나를 보고 '병에 걸린 것이 아닐까'라며 웃지 못할 메모까지 적어놓았을 정도였다. (꼬부랑거리는 글씨처럼 당시에는 정말 심각했다)  


그다음으로는 속에 뭐가 얹힌 듯 가슴 한쪽 구석이 답답했다. 의식적으로 숨을 크게 쉬어봐도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이었다. 책상에 앉아 주먹으로 가슴을 퍽퍽 두드리는 날이 많아졌다. 속도 메슥거렸다. 점심을 먹고 나서 근처 약국에서 소화제를 자주 찾았고, 쉽게 무력해졌다.


억울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에도 이렇게 많은 품이 들다니. 어째서 내가 미워하는 그가 아니라 내가 아파지는 건데!


소설 <브로콜리 펀치>에서는 어느 날 손이 브로콜리로 변해버린 원준을 바라보며 그의 연인인 '나'가 이런 말을 한다.


(...) 그런데 원준은 너무 많은 괴로움을 자꾸만 억지로 삼키다 보니 그 기관이 고장 난 게 아닐까. 그래서 괴로움을 그대로, 그대로 받아들이다 결국 어느 날 아침 별안간 브로콜리가,

(브로콜리 펀치, p.101)


첫 회사에서 나는 어땠나. 지하철 안에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쓰고 있는 마스크가 흠뻑 젖어버릴 만큼 눈물을 쏟기도 했고, 새벽까지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이름 모를 대교를 쳐다보다 괜히 마음이 울적해 두 눈을 감아버리기도 했다.  


그때 나에게는 미워할 대상이 필요했다. 이 원망을 쏟아낼 누군가가 절실했다. 하지만 내가 미워하는 그는 나의 상사였고, 원활한 회사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그를 미워하는 마음을 내 안으로 꾹 삼킨 채, 그저 참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아프면 어딘가로 꼭 표출되기 마련이다. 그때 내 몸은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너의 미움이 너 자신을 소진시키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퇴사와 동시에 씻은 듯이 나았던 이 병은, 작년 말에 다시 발병했다. 증상은 유사했으나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두드러기 형태로 먼저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이점은 내가 그때와는 다르게 아무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백수 상태라는 것. 딱히 내가 미워할 만한 상대가 곁에 없었다는 점이었다.


허벅지와 팔을 중심으로 번지던 붉은 두드러기가 얼굴까지 올라와 눈을 뜨기 힘들 정도가 되자, 그제야 나는 심각성을 깨닫고 여러 병원을 찾았다. 피부과도 내과에도 가봤지만, 모두가 짜고 친 듯이 같은 말들만 내뱉었다. 스트레스가 주원인이라고. 그 말을 들으면서 '과연 이 세상에 스트레스 없는 현대인이 존재하기는 할까'라는 생각을 또 속으로만 꿀꺽 삼켰다.  


마지막으로 들렸던 한의원에서 여러 검사를 했다. 결과지를 보면서 한의사 선생님은 내가 교감신경이 높은 편이라며 외부 자극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했다. 진찰을 천천히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곰곰이 생각해 봤다.


어쩌면 이번에는 내 마음속의 미움의 화살이 나를 향해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


다른 동기들에 비해 일찍 일을 시작했던 지난날과 달리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어 친구들은 하나둘 본인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데, 정작 나는 백수가 되어버린 하루하루가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나 보다. 게다가 밤낮이 바뀐 불규칙한 삶 속에서 끼니를 자주 걸러 최근 몇 달 사이 5kg 가까이 살이 빠졌으니 아프지 않았던 것이 이상할 정도긴 했다.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꽤나 큰돈을 주고서 한의원에서 한약을 조제해 왔다. 아침과 저녁에 한 포씩, 따뜻하게 데워 먹으란다.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간다. 이게 한 포에 얼마짜리야... 계산을 마친 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결론이 내려진다. 절대 빼먹어서는 안 된다!


빈속에 한약을 먹을 순 없으니, 한약 덕분에 요즘에는 아침과 저녁을 꼭 챙겨 먹게 됐다. 자연스레 삶에 작은 루틴이 생겼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매일 밖에 나가진 않아도 하루에 한 번은 베란다에 나가서 광합성을 하려고 노력한다.  


올해는 누군가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야지. 특히 미움의 화살이 나를 향하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그동안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미안해서 혼자서 미움이라는 마음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이 정도면 미워해도 돼, 라면서 말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썩지도 않고 내 마음에 고인다. 그렇게 고인 마음은 나를 자꾸만 아프게 한다. 매번 그 마음이 스스로를 갉아먹고 나서야 나는 깨닫고 만다.


커튼 사이로 햇빛이 비친다. 그동안 가려워서 벅벅 긁느라 빨갛게 부어올랐던 두드러기 자국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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