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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 Mar 04. 2023

매일을 숙제같이 사는 삶

하고 싶은 일을 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나요?

올해 1년 계약직으로 일을 다시 시작했다. 내가 오래도록 꿈꿔왔던 일이었다.


누군가 내게 꿈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말할 수 있던 꿈이었다. 나의 학창 시절은 그 꿈을 향해 아주 착실하게 굴러갔으며 (운이 좋게도) 모두 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그랬던 내 인생에서 딱 하나의 예상치 못한 순간을 뽑자면, 그건 아마 대학교 졸업 직후일 거다.


연습 삼아 내본 이력서였다. 정말 그랬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첫 출근날이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첫 회사를 2년 가까이 다녔다. 마침 코로나19로 고용불안이 사회 전체에 깔려있던 때였던 지라 '어디라도 다니고 있어야 한다!'라는 막연한 마음이 매일 아침, 나를 '뽑아준' 회사로 떠밀었다.


조금 두려웠던 것 같다. 오래도록 꿈꿔왔던 일인데, 혹시 내가 '재능 없음'으로 이 업계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 거절당할 바에야 그냥 지금 하는 일이나 잘하자는 마음. 그때 나는 차라리 미완의 꿈으로 남겨두는 게 나를 지킬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라며 더 이상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가뜩이나 고민이나 걱정도 많은데!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 몸을 맡기다 보면 어디에 닿아있지 않겠냐는 손쉬운 외면의 마음을 품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 뒤로는 계획하지 않은, 정말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예상치 못하게 굴러간 공이 다시 멈춘 곳은, 예전의 꿈 앞이었다.


진작에 접었다고 생각한 꿈이었는데, 일을 잠시 쉬고 있을 때 우연히 보게 된 공고 앞에서 나는 이력서를 쓰고 있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일한 지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 나는... 행복하지가 않다.  



더 잘하고 싶어서 자꾸만 힘이 들어간다. 힘 빼기 기술은 도대체 어디서 배우는 건지, 모든 일을 잘하려고 애쓰다 보니 쉽게 지쳐버리기 일쑤다


일을 하면서 싫어하게 된 신조어 하나가 더 늘었다. 바로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를 줄여서 표현한 말).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가장 자주,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다. 눈치껏,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명확한 지시 없이 모호하고도 불친절한 형태 없는 이 말이 정말 싫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 낯선 용어들과 아직도 새로운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 마음은 조급해진다. 요구사항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그것이 내 잘못이 되어버리는 기분이 자책으로 이어진다.


하루하루가 내게 주어진 숙제 같다. 미션 클리어로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면 좋으련만, 매번 미진한 마음으로 버스에 오르는 일. 내 선에서 100%만큼을 준비해 놓았다고 할지라도 당일마다 꼭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이곳에서, '원래 이쪽 업계가 다 그렇잖아'라며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동료들. 그 사이에서 발만 동동 굴리는 내 모습이 퍽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다이어리를 펼쳤는데,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하나 고민이 됐다. 개학 전날 방학 동안 밀린 일기장을 마주한 아이처럼 난처하고 막막한 기분이다.


"그래도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잖아."


얼마 전 친구와 나눈 대화 중 받았던 메시지. 글쎄,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나도 언젠가 이들 사이에서 오늘 문제쯤은 아무렇지 않게 넘길 줄 아는 사람이 될까?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하지 않다는 마음을 가질 때도 죄책감이 드는 요즘이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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