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신의 문장술> (후미코 후미오, 2022)
01. 고민이나 망설임이 사라진다.
02. 하고 싶은 것을 찾게 된다.
03. 좋은 인간관계를 쌓을 수 있다.
04.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게 된다.
05. 글을 내가 원하는 대로 빠르게 쓸 수 있게 된다.
06. 자신만의 개성을 찾을 수 있다.
07.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앞서 나열된 것들을 이루는 데에 돈도 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믿을까? 길을 걷다 말을 거는 사이비 종교의 포교 정도로 취급할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들이 '글쓰기'로 이루어진다는 책의 도입부에서, 꽤 오랫동안 글을 써온 나는 혹 하는 마음이 들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일기나 독후감, 편지, 글짓기 대회부터 '지속적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으로 시작하게 된 현재의 에디터 활동까지. 글이 어떤 목적을 가졌든 지금까지 대략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글을 써온 셈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나에게 '글쓰기'란 여전히 힘들고, 두렵고 괴로운 존재다. 하얀 한글 창 안에서 홀로 반짝이는 커서를 바라볼 때면 머릿속마저 새하얗게 물들어버리고, 발등이 뜨끈해지다 못해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간이 될 때까지 글쓰기를 미루기 태반이다.
마감을 앞둔 오늘만큼은 내게도 글쓰기의 신이 내렸으면 하는 마음 반, 밑져야 본전의 마음 반으로 <신의 문장술>의 첫 장을 넘겼다.
총 7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내내 강조하는 건, 일단 쓰고 버리는 마음을 탑재하는 것이다. 일단 쓰고, 버린다라는 마음을 가진다면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 써서 무엇을 남기려는 생각 자체가 '잘 써야 한다'라는 의식을 만들어 글쓰기를 힘들게 만드는 주범이 된다는 거다.
잘 써야 한다, 라는 마음이 가지는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최근까지 글을 쓰는 학원에 다닌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학원에서의 수업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일주일 간 써 내려간 각자의 글을 수업시간에 대형 모니터에 띄워놓은 뒤 합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매주 주말마다, 약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학원에 다니면서도 당최 적응이 되지 않던 창피함이었다. 나의 글을 평가하는 날카로운 피드백들이 마치 나 자신을 향한 비수같이 느껴졌달까.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는 매번 정신을 잃은 채 잠에 빠졌다.
수업 과제물을 제출하기 전까지 나를 괴롭혔던 생각은, '이 정도의 퀄리티라면... 차라리 과제를 내지 않는 게 더 낫지 않을까?'였다. 내 눈앞에 놓인 (과제물보다는 쓰레기에 더 가깝게 느껴졌던) 이것을 과연 내는 것이 맞는 건지 매주 고민에 빠졌다. 더군다나 어느 순간부터 '과제물=나', 과제물과 나를 동일시하게 되니 못 쓴 글을 사람들 앞에 내보이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다' 쓰기보다는 '잘' 쓰려다 보니 글에 힘이 들어갔고, 완성되지 못한 과제물을 낼 때가 많아졌다. 그럴 때면 완성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었고, 다음에 꼭 잘 써야겠다는 마음을, 그 마음은 다음 주 과제를 할 때의 나를 괴롭히는 뫼비우스의 띠였다. 끝까지 쓰지 못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내 안의 '쓸 수 있다'는 자기 확신도 자연스레 줄어들었고.
지독한 자기 방어식 변명으로 미완으로 그치곤 했던 나의 과제물들은, 완성이 되지 않아 내가 원래 의도했던 바를 선생님과 수강생들에게 장황하게 설명하게끔 만들었다.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메시지가 아녔기에 선생님도 수강생도 작품에 대한 정확한 피드백을 줄 수 없으니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됐다.
쓰기에 관해 얘기하자면, 쓰고 싶은 것을 지금 실력으로 목표지점까지 다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 직접 가보지 않으면 실제로 부족한 부분을 알 수 없다. 다 써보지 않으면 뭐가 부족한지 알 수 없다.
(신의 문장술, p.45)
(...) 아무리 서툰 글이라더라도 쓰지 못한 글보다는 몇만 배 낫다. 끝까지 다 써보는 경험만이 쓸 수 있는 인간을 만든다.
(신의 문장술, p.149)
이런 나의 증상을 완화시켜준 건, 같이 수업을 듣던 동생이 무심하게 툭 던진 한 마디였다.
"욕먹었으면 다시 쓰면 되죠, 뭐."
작은 성공경험도 중요하지만, 매번 욕만 먹던 초급반 수강생이었던 나에게는 '아니면 말고'의 뻔뻔한 마음가짐으로 눈 딱 감고 제출 버튼을 누르는 것이 필요했던 거다.
당시 나는 현생을 갈아서 한 글자씩 써 내려간 나의 글이 너무 소중해, 단 하나도 버릴 수 없어 품에 안고만 있었다. '쓰고 버리기'가 아니라 쓰고 꼭 끌어안고 있었던 셈이다. 와중에 '사랑받는 글 쓰고 싶어 신드롬'에 단단히 빠져 있던 나는 이때를 기점으로 일단 완성하고 보자는 마음가짐을 다지게 되는 계기가 됐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듯이 써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면 그 어떤 피드백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던 그 순간을, 이 책을 통해 돌이켜 본다.
글쓰기에 있어 언제나 '달면 삼키고, 쓰면 그냥 버리면 된다'는 태도를 가지기. '당신에게 나의 글이 별로였다면 미안하게 됐습니다'라는 뻔뻔한 마음을 또 한 번 되새기며 오늘도 나는 이렇게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