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say

좋아하는 일로 불행해지지 말자

물러버린 마음도 잘 뭉쳐주기만 한다면

by 모래


좋아하는 일로 불행해지지 말자고, 근 몇 달 동안 주문처럼 되뇌었다. 좋아하는 마음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예찬해 온 나였지만, 정작 최근의 나는 그 ‘좋아함’ 때문에 불행해지고 있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고 그래서 잘하고 싶었을 뿐인데, 잘하고 싶은 마음이 어느새 기대로 변해버렸다. 기대라는 불순물이 마음속에 들어선 탓일까. 나는 좋아하는 일 때문에 가장 쉽게 흔들리고, 가장 크게 무너졌다.


어떤 날에는 마치 근력이 붙기라도 한 듯, ‘이 일을 계속해도 되겠다’라는 작은 자신감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런 마음을 먹은 바로 다음 날이면 보란 듯이 단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날이 찾아오곤 했으니까. 잠시나마 내 안에서 타오르던 희열은 모래를 뿌린 듯 금세 사그라졌다.


기대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늘 ‘이번만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기대를 놓지 못했다. 그 가느다란 가능성이 나를 버티게 하면서도 동시에 흔들리게 했다.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는 날이면 하루 종일 무력하게 침대에 누워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다음은 핸드폰 화면 속 타인과 나를 비교할 차례다. 좋아하는 일 앞에서 내 마음은 한없이 작아지고 바스러졌다.


이쯤 되면 굳은살이 배길 법도 한데, 실패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실패에 당최 익숙해지지 않는 마음이었다. 매번 처음 겪는 일처럼 속이 상했다. 머리로는 ‘실패는 과정의 일부’라는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현실의 간극 앞에서 자주 지쳤다.


‘그만할까?’ 이 말은 혼자 있는 방 안에서 내가 자주 내뱉던 독백 중 하나였다. 애써 붙잡고 있는 게 진정한 열정인지, 아니면 좋아한다는 마음의 탈을 쓴 집착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열정과 집착 사이에서 자괴감이 커질 때면, 나는 힘겨운 날마다 토해내듯 써 내려간 일기장을 들춰보곤 했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가 필요했다. 그 이유를 확인해야만 했다.



들춰본 일기장 속 나는 오늘의 나와 같이 똑같이 실패하고 실망하고 있었다. 어떤 날에는 ‘죽어도 안 써지는 날에 쓰는 일기’라며 졸다가 침을 흘리더라도 다시 작업을 이어가던 내가 있었고, 어떤 페이지에는 동료를 향한 질투 어린 마음이, 행여 닳을까 아껴둔 꿈이 이루어지지 않고 현실의 나로 깨어난 슬픔에 대해서 적혀 있었다.


그 모든 좌절과 슬픔, 분노와 절망 속에서도 일기는 계속됐다. 수백수천 번의 마음속 진폭을 지나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무력함 또한 결국은 지나갈 파도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듯했다.


잘 써진 날보다 잘 써지지 않은 날이 훨씬 많았음을, 그럼에도 이 일을 지속해 온 날의 기록이 모여 이제는 제법 두터워진 일기장이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일기를 쭉 읽어 나가다 보니, 이 일을 계속하는 이상 내 마음이 단단해지긴 그른 것 같다. 앞으로의 나는 오늘의 나처럼 몇 번이고 마음이 지치고 짓물러버리겠지. 그렇다면 물러버린 마음을 다시 조물조물 만져가면서 뭉쳐보는 수밖에 없다. 물러버린 마음도 잘 뭉쳐주기만 한다면, 마음이 꼭 단단하지 않더라도, 내가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지금의 흔들림과 좌절도 또 다른 내일에게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다행히도 나의 일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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