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쉼을 통해 나를 만나고 자연에서의 공존을 목격하다
마침내 뉴질랜드에서의 워케이션을 모두 마쳤다. 계산해보니 필리핀 출장 8일을 제외하고 7월 2일부터 9월 26일까지 78일의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을 뉴질랜드에서 보냈다. 우선 워케이션을 하면서 아프지 않고 큰 사고 없이 좋은 분들을 만나고 제대로 된 휴식 시간을 만끽하며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어서 감사했다. 더운 여름을 피해 시원한 겨울을 즐길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이번 워케이션에서 누린 수혜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빨리빨리, 효율성과 결과물을 우선순위로 여기던 내게 "느리면 어때?" "과정도 살펴보자"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조화로운 방법은 뭘까"와 같이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던 성찰 질문들이 훅 내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 워케이션에 대한 간단한 소회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았다.
만족도는 10점 만점의 10점, 목표 달성은 50%
이번 워케이션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의 10점이다. 역시나 뉴질랜드의 대자연은 번아웃이 와서 무기력해진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주듯 따뜻하면서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었다. 이로 인해 가뭄의 논바닥처럼 메말라 쫙쫙 갈라졌던 몸과 마음이 듬뿍 물기를 머금어 싱싱하게 활짝 핀 초록 서리 이끼처럼 재충전을 할 수 있었다.
이번 워케이션의 개인 목표는 사실 두 가지였는데 첫째, 자연에서의 휴식, 둘째, 커리어에 대한 방향성 찾기였다. 첫 번째 목표는 100% 달성했다. 간간이 일도 했고, 중간에 해외 출장도 다녀왔지만 그 나머지 시간에는 바다와 산, 호수, 폭포, 습지 등 자연의 품 속으로 냅다 뛰어들었다. 여기 오기 전에 번아웃이 있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상태였는데 이제는 내 페이스로 속도 조절을 하며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고 있다. 자연 속에서 휴식의 장점은 그 안에 머물면서 환경 생태계에 대해 관찰을 할 수 있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고요하고 평화롭고 경이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보잘것없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민낯 그대로의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정신 사납고 인공적이면서 상업적인, 속도 빠른 서울 도심 속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무슨 대화를 했냐면, 특정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그런 목표지향적이고 효율적인 대화는 결코 아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침묵의 대화였고, 여백의 대화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저 마음을 활짝 열어두고 그날 그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에 잠시 반응하거나 멍 때리거나 그마저도 지겨우면 참빗으로 가지런히 머리를 빗어 곱게 가르마를 타듯이 머릿속의 엉클어진 생각을 우선순위로 정리했다. 이렇게 했지만 두 번째 목표였던 커리어 방향성 찾기는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아직 진행 중이다. 번개처럼 어떤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내 머리를 탁 치는 그런 영화 같은 행운은 내게 찾아오지 않았다. 긴 시간 동안 여행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문화를 접했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신내림 받듯 급 변화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관심 있는 키워드를 하나 발견해서 11월 한 달 동안 태국 방콕에서 관련 키워드를 체험 및 학습, 실험을 해볼 계획이다. 그 정도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워케이션을 정리하니 내 경험을 조금이나마 더 나누기 위해서 (그리고 나도 기억하기 위해서 겸사겸사) 카테고리별 Top 3을 뽑아보았다. 지극히 개인 취향과 주관적인 느낌적인 느낌의 선택임을 참고하길 바란다. 한 때 국내 1위 식품 기업에서 마케팅을 했고 여전히 미식가들과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으로서 역시나 의식주 중에서 "식"의 비중이 컸다. "주"에 대한 다양한 경험도 뉴질랜드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주거 공간의 우선순위를 살펴보면서 앞으로 나는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내가 선택한 Top 3 초이스 in 뉴질랜드
음식: Viet Lane 베트남 레스토랑의 생선 요리 + 샐러드 롤, 카페 예루살렘의 후무스, Fish Face의 생선 요리 + 스팀 샐러드
디저트: 카페 예루살렘의 바클로바, 카피티 선데이 아이스크림, 휘태커 피넛 초콜릿
음료: 뉴포트의 핫 초콜릿, 호주산 진저비어, 플랫화이트
액티비티: 로토루아의 온천, 통가리로 내셔널 파크 등산, 로토루아의 카약킹
장소: 케리케리의 레인보우 워터폴 트레일, 타우랑가의 아라타키 해변, 케리케리의 카우리 숲 트레일
기억에 남는 사람들
이번 워케이션을 풍성하게 만들어주신 고마운 분들이 있다. 결국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과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분들 덕분에 자칫 외로울 수 있었던 워케이션에 트러플 오일같이 멋스러운 향을 더해주셨다. 특히 에어비앤비 슈퍼 호스트 아이바는 숙박비를 할인해줬을 뿐 아니라 직접 만든 수제 디저트를 여러 번 나눠주고 선물까지 주면서 친절함의 끝판왕을 보여주었다. 나라면 과연 낯선 여행객, 잠시 스쳐가는 한국인에게 이 정도로 따뜻한 호의를 베풀 수 있었을까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Pay forward!
에어비앤비 슈퍼 호스트인 아이바(Iva), 존(John)과 수(Su)
타우랑가 드림교회 목사님 부부
뉴포트 수제 초콜릿 가게의 아르헨티나 여사장님
기억에 남는 셀프 액티비티
타우랑가의 아라타키 해변에서 쓰레기 줍깅 셀프 캠페인
오븐으로 요리하기
밤하늘 별빛 아래서 노래 부르기
워케이션 기록
기간: 78일
경로: 오클랜드 -> 러셀 -> 케리케리 -> 오클랜드 홉슨빌 -> 타우랑가 -> 로토루아 -> 타우랑가(아라타키 비치) -> 베들레헴 -> 타우랑가 (아라타키 비치)-> 통가리로 국립공원 -> 타우포 -> 로토루아 -> 오클랜드
[비용]
항공 : 1,526,700 원 (대한항공 이코노미)
여행자 보험 : 260,910 원 (삼성화재 공항점)
숙박: 4,484,784 원 (호텔 5곳, 에어비앤비 7곳, 친구네 집 2곳 무료)
식비: 1,198,680 원
교통비: 103,295 원
로밍: 198,000 원
기타: 319,466 원(기념품, 면세점, 도서 구매 등)
합계 : 8,091,835 원 (Daily 103,741 원 사용)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마스크를 쓴 상태였지만 역시나 바깥공기가 나쁘다는 것을 금새 감지할 수 있었다. 익숙한 언어가 들리고 신속한 공항 수속부터 편리한 대중교통에 이르기까지. 잠시 달콤한 꿈을 꾼 뒤에 깨어난 착각마저 들었다. 돌아왔구나. 나는 원래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그 즉시 지난 여행의 감동은 눈 녹듯이 사라져 제로가 돼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 여운을 길게 가져가고 싶다. 78일간의 추억을 마음의 앨범에 잘 간직하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고 싶다. 아마도 짐 정리를 하는데 며칠 걸릴 것 같다. 그리고 아직 못다한 나머지 50%의 목표 달성을 위해 집중하려고 한다. 비록 뉴질랜드가 나에게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원래 정답을 찾기가 어려운 숙제였으므로 다시 한번 신발끈을 조이고 달려보려 한다. 다음 워케이션은 태국이다. 11월 한 달간 태국의 스타트업과 워케이션을 하면서 멈추지 않는 도전을 계속 시도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