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이제 뉴질랜드에서의 워케이션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7월 2일에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9월 26일 오클랜드 공항을 출국하는 약 3개월의 워케이션, 이제 그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할 시간이다. 한 편으로는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른다는 생각이 들어 야속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이 기간 동안 만들어낸 여러 가지 소중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오클랜드에서 보내는 마지막 하루는 내가 좋아하는 'M Social Auckland' 호텔에서 여유롭고 느슨하게 '멈춤(Pause)과 재충전(Recharge)'의 휴식 시간을 가져 다음날 12시간에 가까운 장거리 비행을 대비하기로 했다. 이 호텔은 주말이면 금방 솔드아웃이 돼서 원하는 날짜에 예약이 만만치 않은 오클랜드에서 인기 많은 호텔 중 하나이다. 워터프런트 워프에 가까운 위치도 좋긴 하지만 부티끄 호텔처럼 조잡하지 않고 깔끔하며 모던하면서 위트 있는 디자인의 룸 인테리어와 편안한 킹사이즈 침대, 그리고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가 마음에 든다. 게다가 나는 호텔스 닷컴의 골드멤버라 25 NZD (약 20,750 원)만큼 푸드 쿠폰이 발행돼 룸서비스 이용 시 둘 중의 한 명은 무료라 유익하다. 여기에 머물 때마다 기록이 남아서 그런지 점점 높은 층으로 방 배정을 받는데(지난번에는 5층) 이번에는 8층이었다. 침대에 누우면 의도하지 않더라도 가로가 긴 직사각형의 창밖으로 워터 프런트 뷰와 하늘 뷰를 편하게 즐길 수 있다. 또한 UX 관점에서 본 화장실 내부의 구성, 샤워시설의 위치와 수력, 그리고 어메니티를 따져볼 때도 나름 합격점을 주고 싶다. 호텔 건너편에 있는 COMVITA Wellness Center에 가서 엄마의 심부름 (프로폴리스 제품 구입)을 마치고 디너용 디저트를 사기 위해 고어 스트리트 Gore Street로 향했다.
아이스크림의 천국 그리고 GIAPO
오클랜드에 오면 항상 들리는 장소가 몇 군데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핸드메이드 아이스크림 가게 'Giapo'이다. 2.5년 전에 우연히 발견한 곳인데 그 이후로 오클랜드에 갈 때마다 방문하게 됐다. Giapo는 'Normal icecreme is boring' 이란 슬로건 아래 초콜릿 및 커피류의 아이스크림 메뉴로 구성되어 있는데 콘 뒤에 요란한 토핑을 얹어 먹을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금/토/일요일에만 운영되는 터라 평일에는 먹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이 날은 일요일이라 다행히 가게는 오픈했지만 이미 줄이 길었다. "It's worth waiting, "이라고 눈빛을 교환한 뒤 친구와 나도 긴 줄에 합류했다. 한 때 식품 마케터였고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나로서는 '왜 줄이 금방 줄어들지 않는지' 자연스럽게 관찰 및 분석을 하게 됐는데, 주문하는 직원의 더없이 친절한 맞춤형 스타일 서비스로 인해 맛 샘플도 한 숟가락씩 제공하는 등 주문하는데만 5분~10분 이상 시간을 썼고, 주문이 완료되어도 가게 내부 직원들이 한 스쿱 한 스쿱 정성스럽게(!) 작업을 하고 포장해주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어쩌면 이게 뉴질랜드 스타일의 차별화된 고객 중심 마케팅일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레스토랑도 아니고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이렇게까지 기다려야 돼?' 라며 효율성을 앞세운 한국인 근성이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하지만 한동안 이 맛을 못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가능한 신속하게 주문을 마치고 차분히 인내심을 발휘하며 주문한 아이스크림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화려하고 실험적인 토핑보다는 아이스크림 본질에 집중하는 편이라 커피맛 두 스쿱을 테이크 아웃하기로 했다.
뉴질랜드는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의 천국이다. 푸른 목장에서 자유로이 방목된 행복한 소들이 만드는 우유를 사용해서 그런지 신선한 유제품의 고퀄리티는 뉴질랜드를 전 세계에서 대표 낙농국가로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무런 저항 없이 무릎을 꿇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특히 'Kapiti'의 선데이 아이스크림을 사랑하는데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의 황금비율로 이뤄진 이 작은 컵 안의 '달콤한 불꽃놀이 축제'가 입 안에서 팡팡 터지면 나도 모르게 눈을 지그시 감고 이 행복한 축제를 온몸으로 음미한다. 한국에서는 절대 누릴 수 없는 맛의 향연이다. 심지어 '내가 빙그레에게 속고 있었구나, ' 라며 배신감마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찰나의 강력하고도 스위트 한 축제가 끝나고 나면 빈자리에 쓰레기만 나뒹굴듯 금세 허무해진다. 그래서 또 한 숟갈 입에 넣는다. 그리고 또 한 숟갈. 그러다 보니 어느새 둥그렇게 살이 오른 내 모습을 발견한다. 어쩔 수 없다. 후회는 없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바로 다이어트 돌입이다! 테이크아웃을 한 Giapo의 커피맛 아이스크림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깔끔하면서도 깊이 있는 차갑고도 달콤한 에스프레소 커피의 향연을 입안 가득 살살 녹여 먹었다.
뉴질랜드에 퍼지는 K-Culture 파워
저녁 식사는 룸서비스로 청경채 생강 간장소스 볶음과 코리안 양념치킨을 주문했다. 그렇다. 이 호텔 레스토랑에서는 Korean 양념치킨이 메인 메뉴에 포함됐다. 실제로 룸으로 배달된 한국식 양념치킨은 닭강정에 가까운 맛이었다. 한국의 양념치킨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3개월 만에 처음 먹기 때문에 깨끗하게 접시를 비웠다.
오클랜드에는 아시아 인구가 20% 정도 되기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 문화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메인도로인 K street에만 가도 한국 식당을 쉽게 찾을 수 있고, 특히 Korean BBQ나 한국식 치킨, 김치로 만든 음식은 오클랜드 외에 다른 지역에서도 파인 다이닝이나 일반 식당의 메뉴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심지어 일반 슈퍼마켓 체인인 Countdown에서도 김치와 김, 라면을 구입할 수 있으며 한국 식품을 중심으로 구성된 왕마트도 큰 도시를 중심으로 오픈해서 비비고 등 한국 식품 구매가 한결 수월해졌다. 또한 오클랜드의 뮤직 샵 'Real Groovy'에 가보니 누가 살까 싶기는 하지만 BTS를 필두로 블랙핑크, 아이유, NCT, 그리고 이름도 낯선 K-POP 뮤지션들이 모던하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음반 패키지 디자인을 뽐내며 가게 왼쪽 벽면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드라마와 영화 또한 인기몰이 중이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의 국산 브랜드 제품도 길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해외여행을 갈 때 인천공항에서 환승하는 분들이 인천이나 서울에서 며칠 머물며 쉬었는데 "참 편하고 좋았습니다. 또 가고 싶어요, "라고 말씀해주신 분들도 여럿 계셨다. 22년 전 미국에 여행 갔을 때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집에 TV가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아 당황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 사이 우리나라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에 뿌듯하기도 한 편으로는 오지랖으로 인한 염려가 앞서기도 한다. 뉴질랜드에서 3개월을 지내보니 가성비, 효율성만 무조건 내세우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으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한 웰빙 라이프가 가능한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경제적인 여유와 함께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주어져 커리어 및 부의 성장을 이뤄 노후는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 준다는 믿음과 신뢰가 있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잠시 심각한 생각을 하다 문득 오클랜드에서 보는 마지막 석양이 눈에 들어왔다. 창가 너머로 오렌지 빛, 핑크 빛, 보랏빛, 쪽빛, 회색빛이 어우러져 하늘이란 캔버스에 자유롭게 붓칠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