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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Oct 06. 2022

워케이션 in 로토루아 Rotorua Again(9)

로토이티 호수에서 카약을 타다 죽음의 위협을 느끼다

 오클랜드로 올라가기 전 잠시 로토루아에서 2박을 하기로 했다. 카약 장비를 빌려주는 에어비앤비 예약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로토루아는 예전 브런치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천연 온천으로 유명한 관광도시이다. 얼마 전 EBS의 <걸어서 세계속으로> 뉴질랜드 편에도 소개됐다. 피로도 풀 겸 "Waikite Valley"에 잠시 들려 실외 private pool에서 몸을 푹 담갔다. 목과 어깨에 뭉친 근육이 40도의 온천물 마사지를 받으니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이 들었다. 10분 정도 몸을 담그고 2~3분 동안 나무 데크에 앉아 하늘과 바깥 풍경을 보며 몸을 식힌 뒤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하며 몸의 긴장을 완화시켰다. 내가 온천을 좋아하다니 신기했다. 한국에서는 찜질방이나 사우나에 절대 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수년 전 친구들과의 일본 여행 때 야외 온천을 즐겼던 순간이나 이번 7월에 러셀의 타피카 포인트에 머물렀던 에어비앤비에서 저녁 석양을 보며 자쿠지에 뜨끈한 물 마사지를 받았던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야외 프라이빗 공간에서 누리는 핫풀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숨겨진 취향을 발견하는 재미도 이번 워케이션이 내게 주는 작은 선물이리라. 

  

Waikite Valley의 프라이빗 핫풀 내부 전경 ⓒ 킨스데이 2022


뉴질랜드식 타이니 하우스 Tiny House를 경험하다

 이번에 머문 에어비앤비는 타이니 하우스였다. 글로벌 비즈에 따르면, 뉴질랜드는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수십억 달러의 정부 부양책과 역사상 가장 낮은 금리로 인해 집값이 40% 이상 급등했었고, 올해는 10% 정도, 내년에는 좀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럼에도 뉴질랜드 집값은 여전히 비싸다. 그래서 타이니 하우스가 한 때 유행했었다. 뉴질랜드에서는 소유한 땅의 표면적 30 km²(약 9평)인 건물은 별도의 법적 승인을 받지 않고 지을 수 있다. 그래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저렴한 소규모의 땅을 구매해 타이니 하우스를 지어 살거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땅에 타이니 하우스를 두어 장기 렌털을 하거나 에어비앤비로 운영하기도 한다. 내가 머문 곳 역시 호스트가 집 앞마당에 바퀴 달린 타이니 하우스를 고정시켜 에어비앤비로 활용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엌(오븐과 일반 냉장고까지 있는)을 중심으로 2인용 소파를 지나 오른쪽 끝에는 퀸 사이즈 베드가 있는 침실, 왼쪽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면 더블베드가 있으며 그 아래에는 샤워룸이 있는 화장실에 건조기가 설치되어있는 구조다. 최대 4인 가족이 주말을 보내기에 딱 적당한 크기의 공간이었다. 더 오래 머물면 비좁은 공간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누가 그러지 않았나.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내가 머물렀던 타이니 하우스 (Photo credit: Airbnb tiny hideaway)


 내가 타이니 하우스에 머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2.5년 전 뉴질랜드 여행을 했을 때, 키위나무 밭에 있는 타이니 하우스에서 2박을 한 기억이 있다. 그 당시 타우랑가에서 열리는 코하우징 워크숍을 참석하러 갔다가 이 워크숍을 기획하신 분이 자기 집에 며칠 공짜로 머물러도 좋다고 하셔서 따라갔더니 타이니 하우스인 것을 보고 살짝 당황(!) 했었다. 초등학생 자녀 2명, 개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 기간에 집을 비워 침대가 남는다고 나를 초대해주신 것이었다. 문 입구 양 옆에 화장실 공간이 있었는데 커튼 달린 샤워룸에서는 뜨거운 물이 나오긴 했지만 화장실은 그냥 싸고 뚜껑을 덮는 에코 프렌들리 스타일이라 최대한 사용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내 평생 대부분을 가족들과 함께 아파트에서 살아온 터라 뉴질랜드식 타이니 하우스의 장단점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결론은 돈을 많이 벌어서 뷰 좋은 넓은 땅을 구매해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집과 정원을 마련하야겠다는 것. 신문 기사를 보면 서울에 사는 신혼부부가 둘이 함께 10년 넘게 벌어도 내 집 장만은 어렵다는데, 이번 생에서 가능할까 싶기는 하다. ㅠ.ㅠ


죽음의 위협을 느낀 로토이티 호수 카약킹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자마자 동네 탐방을 시작했다. 특히 카약킹을 하기 위해 호수 어디즈음에 카약 보트를 띄우는 슬로프가 있는지 찾아야했다. 뉴질랜드에서는 호수나 해변가로 가는 길이 'Public access'와 'Private access'로 구분이 된다. 표지가 있어 쉽게 판별이 되기도 하지만 가끔 헷갈리기도 한다. 그래서 산책 나온 모녀에게 호수로 가는 길을 물어봤더니 Publich access가 있긴 한데 미니 선착장은 다 prviate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카약 장비를 가지고 가도 호수로 랜딩을 하기 어렵다는 얘긴데...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다시 물어보니 private jetty를 사용해도 되고 대신 보트 파킹만 하지 않으면 괜찮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래서 임시 바퀴가 달린 카약 보트와 구명조끼, 패들을 밀고 끌면서 호수로 내려갔다. 첫날은 동선 체크 정도의 느낌으로 카약을 탔다. 다행히 날씨가 온화하고 물결이 잔잔했다. 오랜만에 노를 저으며 청둥오리와 블랙 스완을 눈앞에서 목격하기도 하고 호수 뷰가 멋진 저편 너머의 집들도 구경하는 등 호수 위의 목가적인 풍경을 눈에 듬뿍 담았다. 두둥실 호수에 떠있자니 평화롭고 고요하기 그지 없었다. 이게 행복일까? 리퀴드 애드빌을 복용했을 때 순식간에 약기운이 온 몸에 퍼지듯 평안함이 내 몸을 감쌌다. 이 순간을 추억의 액자에 담아 기억하고 싶었다. 

 

 다음날 아침, 든든하게 식사를 한 뒤 카약 장비를 챙겨 호수로 향했다. 어제 카약킹 때는 생각보다 보트에 물이 들어와 하체가 젖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수영복을 속에 입고 겉에는 레깅스와 윈드브레이커를 착용했다. 간식은 에너지바와 물만 챙겨 짐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드디어 출동. 호수를 끼고 주변 숲 가까이 그늘을 따라 크게 한 바퀴 돌아오는 최대 두 시간 정도의 여정을 목표로 했다. 해가 떠 눈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 호수 또한 잔잔한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푸른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들이 물가로 늘어져 긴 처마를 드리운 그 사이로 노를 저어가는데 근처에 있던 새 둥지에서 가마우지(Cormorant)들이 차례차례 물로 뛰어내려 순서를 기다렸다가 수면 위를 총총총 빠르게 내달리더니 호수 위로 날아오르는 다큐멘터리에서나 볼법한 신비로운 광경을 연출했다. 와우! 신비한 조류의 세계! 게다가 어른 블랙 스완이 우아하게 두 마리씩 짝을 지어 가까이 다가오는데 새끼와 같이 있으면 난폭하다는 소문에 혹시 몰라 노를 멈추고 이들이 지나갈 때까지 호수 위에 떠있는 부표인냥 숨을 죽이고 조용히 기다리기도 했다. 나는 잠시 스쳐지나가는 객일 뿐이고 이 새들이 호수의 주인이니까 최대한 방해없이 공존하고 싶었다.   

로토이티 호수의 숲 근처 물가에 정박해서 바라본 호수 풍경 ⓒ 킨스데이 2022 

 그러다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바람이 역방향으로 불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날씨의 급변화로 안전하게 유턴을 해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바람이 불면서 물살이 거칠어지고 비가 오기 시작했다. 눈앞의 풍경이 총천연색에서 순식간에 무채색 하늘과 잿빛 파도로 변했다. 이로 인해 열심히 노를 저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가는 속도가 더뎌지고 설상가상으로 카약 보트 속으로 물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몇 주 전에 봤던 메릴 스트립 주연의 <시크릿 세탁소 The Laundromat > 영화의 한 장면이 갑자기 떠올랐다. 결혼 40주년으로 유람선을 타고 단체 관광을 즐기던 시니어들이 사고로 배가 뒤집혀 대부분 사망한 장면. 이러다 보트가 뒤집히거나 가라앉으면 어쩌지? 망망대해같은 호수 한가운데에 우리 밖에 없었다. 맨발과 젖은 옷 틈새로 냉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침착한 척했지만 내심 불안해졌다. 누구에게 어떻게 SOS를 해야할까? 나와 내 친구 모두 카약킹 경험이 있었지만 에어비앤비에서 빌린 카약 보트의 퀄리티가 썩 좋은 편이 아니었을 뿐더러 로토이티 호수 카약킹은 둘다 처음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없었다. 1차 목표로 삼은 노란색 케이블 부표가 너무나도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둘이 열심히 노를 저어댔지만 성난 파도를 타고 넘어 전진하기가 쉽지 않았다. 절반쯤 왔을 때 전략을 바꿔 비바람과 파도를 맞서기보다는 한발 물러나 가까운 호숫가 숲 근처에 정박해 보트의 물을 빼보기로 했다. 다행히 숲 주변 물가에는 바람이 닿지 않아 잠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보트를 뒤집어 물기를 제거하고 몸의 수분도 보충했다. 서로 다독이며 할 수 있다(살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핸드폰으로 위치를 확인한 후 다시 한번 힘차게 출발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오직 생존을 목표로 한참 열심히 노를 저었다. 보트 안으로 물이 차올라 다시 한번 근처 숲 주변으로 정박하고 물을 빼냈다. 그런 다음 위치를 확인하니 헉! 이럴 수가! 출발 장소였던 호수 슬로프를 이미 지나친 게 아닌가? 황당함도 잠시, 침착하게 출발 지점을 향해 다시 노를 저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비구름이 사라지고 햇빛이 찬란하게 호수를 비추면서 물결이 잔잔해졌다. 누군가 '잠잠하라'고 호수에게 명령이라도 한듯. 우리는 죽다 살아났는데 너무나도 얌전해진 총천연색 호수 풍경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억울하기도 했지만 살았으니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뉴질랜드의 날씨는 정말 한치의 예측도 할 수 없구나.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죽음의 위협을 느꼈던 카약킹을 무사히 마치고 장비를 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1시간 30분 동안 한 편의 재난 영화를 찍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몸은 이미 너덜너덜 지칠 대로 지쳤지만 위험한 고비를 잘 극복하고 해피엔딩 어드벤처로 마무리되었기에 감사함과 안도감이 밀려왔다.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며 이번 워케이션의 피날레를 장식할 오클랜드로 떠날 채비를 했다.      

비바람을 피해 숲 근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모습 ⓒ 킨스데이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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