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에코빌리지를 산책하다 ⑥ 일본 히가시카와 마을

마을의 바람직한 미래상

by 킨스데이

"삿포로에서 스키를 한 번 타면 다른 데서 스키를 타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


예전 삿포로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장 동료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동의하시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아직 삿포로에서 스키를 타본 적은 없지만 그곳의 설질에 대한 드높은 명성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작년 10월부터 일본 무비자 자유 여행이 허용된 이후로 일본 방문객 1위가 한국인이라는 기사를 봤는데요. 일본은 가까우니까 언제나 마음먹으면 갈 수 있겠지 정도의 생각을 늘 품고 있던 저에게는 그동안 홋카이도 = 삿포로라고만 알고 있다가 우연히 홋카이도의 '히가시카와 마을'에 대한 정보를 접하면서 삿포로 여행에서 홋카이도 여행으로 여행 지역의 범위가 확장되고 일정마저 조금 더 앞당기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히가시카와 마을은 홋카이도의 한가운데인 가미카와 분지에 있어 여름은 무척 덥고 겨울은 긴 데다 최저 기온 영하 29도 이하로 극한의 날씨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인구 8천 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지난 20여 년 사이 일본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14% 증가한 보기 드문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의 시대가 도래한 우리나라에서 분명히 배울만한 포인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천공항에서 직항으로 치토세 공항에 도착해 차로 3시간가량 이동하는 방법과 김포공항에서 하네다 공항을 경유해 아사히카와 공항에 도착해 차로 15분가량 이동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전에 살펴본 주민 중심의 에너지 자립을 추구하는 성대골이나 친환경적이면서 외롭지 않게 다 함께 사는 공동체를 원해서 시작된 어스송 에코빌리지, 스프링힐 코하우징 커뮤니티, 지벤린덴 생태마을, 타메라 생태마을, 토리 수페리오레 에코빌리지와는 히가시카와 마을의 차별화된 세 가지 스타일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럼 저와 함께 히가시카와 마을을 천천히 산책해 볼까요?


히가시카와 겨울 풍경(사진=www.makemytrip.com/hotels-international/en-sg/japan/higashikawa-hotels)


첫째,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전하는 그린빌리지를 조성하다

히가시카와 마을은 일본 최대의 산악국립공원인 다이세쓰잔 국립공원(226,761 헥타르, 6억 8천6백 평)이 인근에 있고 동절기 강설량 2.3m를 포함해 사계절의 변화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전원 풍경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온 마을 주민은 상수도가 아닌 깨끗한 지하수를 이용해 생활하고 있죠. 2006년 히가시카와 마을에서는 히가시와초 토지개발 공사가 분양주택지 그린빌리지라는 주거 환경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도심과 비교해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택을 지을 때 사용할 건축 자재, 지붕 형태와 색상 등 외관에 대한 지침, 경관을 위해 담장이나 울타리 제한, 어디에 어떤 나무를 몇 그루 이상 심어야 하는지 등 세심하고 까다로운 '마을 만들기' 가이드라인을 랜드스케이프 전문가와 건축가와 함께 만들어서 예비 거주자에게 배포하고 최소 세 차례씩 미팅을 통해 예비 이주자들을 자연스럽게 걸러내고 이에 동의하는 협정을 맺어 이주와 정착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아이부터 시니어까지 75세대가 함께 살고 있고 주민들이 직접 경관을 관리하며 지역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히가시카와 베이커리 및 카페 외관 (사진 : en.visit-hokkaido.jp/destinations/higasikawa-showroom)


둘째, 외지인이 동화된 슬로우 라이프를 지향하는 지역경제를 구축하다

히가시카와 마을에는 '이익과 효율'의 빠른 성장보다는 쾌적한 공간과 자기다움을 표현하는 슬로우 라이프를 지향하는 작은 상점들이 외부 관광객을 끌어들여 작은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원래 쌀과 공예, 관광이 주력 사업이었던 이 마을에 2012년 일본 아웃도어 브랜드인 몽벨 다이세쓰 히가시카와점을 오픈을 시작으로 카페와 베이커리, 레스토랑, 편집샵, 공방 등 소형 상점들이 들어섰고 단골 고객을 유치하면서 '히가시카와다움'을 추구하며 Work(일)을 Life(삶)의 일부로 여기고 큰 욕심 없이 여력에 맞춰 지속가능한 라이프 스타일을 이끌고 있습니다. 마을의 창업 지원 제도 덕분에 주민들은 교육을 받기에도 창업을 하기에도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파머스 카페 푸도(Fudo)는 양계 농가를 운영하던 가족이 자녀 건강 문제와 유기벼농사를 목적으로 2007년 이 마을로 이주해서 자유 방목 및 호르몬과 항생물질 먹지 않은 달걀 판매와 건강식 카페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식재료는 이력을 알 수 있는 식재료만 사용합니다. 지역 토마토와 직접 키운 달걀로 만든 오므라이스가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1인 셰프 운영 체제인 카페에는 11개의 좌석이 있고 요리 속도에 맞춰 4명 이상은 받지 않으며 재료가 소진되면 문을 닫습니다. 처음 이주했을 때 지역 사람들의 관용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었고 히가시카와 마을의 다양성 역할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부부가 오늘도 타협 없이 성실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빵과 구운 과자를 만드는 데메테르 역시 2008년 오픈한 베이커리입니다. 도쿄와 삿포로 같은 도시에 살다가 수돗물 샤워로 습진이 나는 등 더 이상 도시 생활이 맡지 않다고 판단, 외가가 있는 이 마을에 정착해 1인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밭에서 나는 채소와 허브, 베리 등을 직접 가공 처리해 빵의 재료로 사용해 정성스럽게 시간을 들여 만든 안전한 빵을 만들려면 규모가 작아야 하기 때문에 별다른 외부 홍보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말린 토마토 포카치아와 블루베리 베이글과 같은 하드 베이커리 전문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렇게 자기다움이 아주 뚜렷한 상점들 덕분에 이웃 동네뿐 아니라 삿포로 등 먼 지역에서도 일부러 차를 몰고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늘어나 이 마을의 작은 경제를 탄탄하게 지탱해주고 있습니다.


'너의 의자'를 받은 히가시카와 아이들 (사진: https://town.higashikawa.hokkaido.jp/intl/en/special/chair/)


셋째, 마을 주민센터의 공감 능력을 기반으로 공동 창조 실험을 도전하다

히가시카와 마을을 설명할 때 마을 주민센터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20년을 내다보고 마을의 행정을 꾸려온 직원들은 지금의 히가시카와 마을을 만든 일등공신 중 하나입니다. 우선 이 주민센터에는 3가지가 없는데요. '예산이 없다, 선례가 없다, 다른 지역에서는 하지 않는다'와 같은 관공서 특유의 뻔한 변명은 일체 허락되지 않는 업무 분위기와 함께 개척정신과 비즈니스 마인드셋으로 무장해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실험을 마을 주민과 함께 실행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습니다. 1985년 "사진의 마을"로 선언한 이후로 국제 사진 페스티벌을 개최해 본선에 진출한 전국의 고등학생들을 일주일간 초대해 사진 콘테스트를 열고 이들이 마을의 풍경을 감상하고 주민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서 관계 인구(체류시간에 관계없이 지역의 팬으로, 상품 구매자로, 투자자로, 아이디어 제공자로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꾸준히 지역에 참여하는 사람)로 지역과 연결하는데 기여하고 있으며 수상작을 마을 갤러리에 전시하고 페스티벌 한 달 동안 국내외 사진 전문가들과 갤러리스트, 관광객 포함 연간 3만 5천 명 이상의 방문객이 페스티벌을 즐깁니다. 사진을 통해 국제적으로 문화 교류도 하고 있는데 강원도 영월군이 문화교류도시로 이름이 올라가 있더라고요.

생애주기 맞춤형 교육과 지원 또한 히가시카와 마을의 큰 자랑입니다. 특히 주민센터는 주민과의 공감을 중심으로 출산과 자녀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불임 치료 비용을 마을이 부담하고 15세까지 입원비 및 통원비를 전액 부담합니다. 자녀가 태어나면 마을 공방에서 만든 '너의 의자'를 주민센터장이 가가호호 방문해서 선물합니다. 출산 후 6개월 후부터 유아센터에 보낼 수 있고 이 역시 무료입니다. 수시로 등록이 가능하고 대기 아동은 없으며 부모의 근무 형태 등에 따라 유치원과 보육원을 중도에 바꿀 수 있어 편리합니다. "마을의 미래"인 초등학생을 위해 홋카이도 대학 공학 연구원 도시디자인학 연구실과 협력해 설계된 초등학교는 48,400 평의 넓은 대지를 십분 활용, 야구장, 축구장, 체험 농원, 과수원 등이 있고 지역 커뮤니티 센터가 있습니다. 오픈된 넓은 공간에서 350명의 전교생은 지역 식재료로 교내 주방에서 직접 만든 식사를 함께 하고 마을 가구 장인이 만든 책상과 의자에서 공부를 합니다. 특히 쌀로 유명한 마을답게 마을 농가와 협력해 모내기와 벼 베기 체험이 있는 향토 교육 프로그램이 돋보입니다. 학년 별로 두 반씩 나눠지며 특별 지원 인원을 배치해 뒤쳐지는 학생이 없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히가시카와마을은 인구 규모는 작지만 외국인들이 많은 글로벌 마을입니다. 일본에서 최초로 공인된 일본어학교를 운영하고 다양한 연수 프로그램을 진정성을 가지고 제공합니다. 지난달 일본에서 10년간 근무한 BBC 영국 특파원이 일본인들의 '외국인 배척'에 대해 혹평을 한 것과 달리 이 마을 주민들은 외국인과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개방성으로 인해 1백 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정착하기도 하고 특정 기간 머물며 관계인구로 연결되어 히가시카와 마을의 앰배세더 역할을 합니다.

히가시카와 풍경 (사진: https://journalistontherun.com/2019/02/25/higashikawa-japan-photograhy)


이런 이상적인 마을이 존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히가시카와 마을은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을 모두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자연환경, 슬로우 라이프를 지향하는 지역 경제, 마을을 사랑하는 주민, 마을 주민을 위한, 마을 주민에 의한, 마을 주민의 주민센터, 외지인도 외국인도 환영하는 열린 마음과 태도, 아이들이 마을의 미래로 케어하는 교육과 제도 및 프로그램, 마을과 연결된 국내외 관계인구들. 이런저런 형태로 마을 사업을 후원하고 지원하는 정부와 기업들. 한 아이를 마을에서 키우듯, 이렇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협력해서 한 마을을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지속가능하게 성장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지인들과 하동군을 방문했을 때 지역 소멸을 걱정하는 젊은 리더들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솔루션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20년-3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지자체와 고령화된 지역 주민이 '누가와도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에 한 마음 한뜻으로 힘을 합쳐야 할 것입니다. 점진적으로 관계 인구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행정안전부에서 2023년 1월 1일에 실시한 '고향사랑기부제'가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주목됩니다. 다만 정권이 바뀌고 지자체장이 새롭게 선발되더라도 히가시카와 사진 페스티벌이 38년의 명맥을 이어왔듯 (중간에 폐지될 위기가 있었으나 마을 주민의 반발로 극복) 일관성 있게 꾸준히 진행되어야 합니다. 10년이 됐다고 사업을 중단시켜서는 안됩니다. 이런 점에서 히가시카와 마을의 행보가 앞으로 더욱 주목됩니다.


<3줄 요약>

*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전하는 그린빌리지를 조성해 웰빙 라이프 추구

* 외지인이 동화된 슬로우 라이프를 지향하는 지역경제 구축

* 마을 주민센터의 공감 능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공동 창조 실험 도전


자료 출처

<히가시카와 스타일>, 다마무라 마사토시, 고지마 도시아키, 소화http://www.yes24.com/Product/Goods/96651234

히카시카와 홈페이지 https://town.higashikawa.hokkaido.jp/intl/en/

“일본은 과거에 갇혀있다”10년 BBC 특파원의 냉혹한 평가, 왜, 박선민 기자, 조선일보, 20230125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3/01/25/MMX64UFPGRHYZIVUDQQDIWJDVI/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에코빌리지를 산책하다 ⑤이탈리아 토리 수페리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