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에서 잠시 거주하던 시절 친구들과 펜실베니아의 랭커스터에 있는 '아미쉬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네덜란드에 살다가 종교박해로 미국으로 건너온 이주민으로서 고유 신앙을 믿으며 전통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전자제품이나 전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실제 이들이 사는 집과 부엌, 올가닉 정원 그리고 마을 주민의 검소한 복장들을 둘러보면서 "어떻게 21세기에 이런 전통적인 삶을 고수할 수 있지? 참 신기하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미쉬 마을 처럼 신앙을 기반으로 모인 공동체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저와 함께 산책할 '브루더호프 공동체' 인데요. 이 공동체는 프랜차이즈처럼 미국, 영국, 독일, 호주, 파라과이 등 4대륙 23개 지역에 있습니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니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는 호주와 우리나라 강원도 영월이 있습니다. 이들은 성경의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공동체적인 삶'을 실천하는 기독교 공동체로서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는데요. 저는 에코빌리지 커뮤니티 기획자의 관점에서 환경적인 측면, 커뮤니티 측면, 거버넌스 측면에서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특징을 균형 있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형제를 위한 장소‘라는 뜻의 브루더호프는 1920년 독일인 에버하르트 아놀드가 삶의 단순성과 형제애, 비폭력을 추구하며 독일에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 미국, 호주, 파라과이로 옮겨가며 공동체가 형성됐고 공동체 별로 200-300명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구성원은 모든 사유 재산을 커뮤니티에 헌납하고 집과 음식, 헬스케어를 지원받으며 무소유로 노동 중심의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노동의 대가로 월급이나 용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이지요.
소박하고 검소한 삶 추구
우선 공동체 구성원 전체적으로 검소한 삶을 살면서 환경에 최소한의 피해를 주려고 노력합니다. 집에는 TV와 컴퓨터가 없고 스마트폰도 사용하지 않으며 침대와 책상 등 꼭 필요한 가구만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농사를 짓고 텃밭 정원을 가꾸어 신선한 식재료로 건강하고 소박한 식사를 합니다. 옷차림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여성은 머릿수건에 긴치마를 입고 남성은 체크무늬 셔츠에 청바지를 입습니다. 여성들은 화장을 하지 않고 민낯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공동체 주변에는 자연이 살아있어 가족들이 마을 근처 숲으로 산책을 하면서 길가의 야생 사과나 야생 베리를 따 먹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 모인 사람들
브루더호프 공동체 구성원은 아이부터 노인층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가족과 싱글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일상에서 예수님 닮은 삶을 실천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래서 노동을 중요시합니다. 공동체를 위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다 함께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기고 나무 장난감을 만들어 판매하거나(영국 비치 그로브 브루더호프) 나무 간판을 제작해서 판매(호주 인버렐 브루더호프)합니다. 이렇게 발생한 수익은 공동체가 경제적으로 자립하는데 큰 보탬이 되지요. 이들이 생산한 제품은 주변 지역이나 타도시, 해외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구성원들의 하루 일과는 심플한데요. 성인 어른은 개별 아침 식사 후 오전 8시부터 오전 공동작업장과 여러 분야에서 일을 합니다. 12시에 점심 공동식사 후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오후 작업을 하고 공동 저녁식사 후에 취침 전까지 가정 별로 자유 휴식을 누립니다. 그렇다고 개인이 월급이나 용돈을 받는 것은 아니고 신용카드도 소유하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돈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죠. 다만 돈이 필요한 경우가 발생하면 구성원들과 논의해서 회계책임자에게 필요한 돈을 지급받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커뮤니티 내에서는 빈부격차가 없습니다. 또한 이들은 공동체 내에서 신뢰와 사랑을 추구하며 내부 규칙을 준수합니다. 예를 들어 남에 대한 험담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싱글들은 혼전 순결에 서약을 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아이들 교육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생애주기에 맞춰 공동체 내에서 직접 운영하는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등학교를 다니고 어른들을 따라 텃밭정원, 수공예, 목공, 농사, 청소, 빨래 등을 통해 노동을 체험합니다. 가족과 대화하고 독서를 많이 하며 자연 속에서 뛰어다니면서 자라나는데 고등학생이 되면 공동체 밖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원하면 대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습니다. 영국 명문대에 진학한 사례도 있다고 하네요. 청년이 되면 1년 이상 바깥세상을 경험한 뒤에 브루더호프에 남을지 떠날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청년들이 사랑과 협력 중심의 신앙 공동체 생활을 하다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경쟁이 치열한 외지에 나가서 마주할 문화적인 충격이 어마어마할 텐데요. 그 과정을 경험하면서 힘을 키우고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달으면서 한층 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는 성장통의 시기인 거죠. 그런 과정을 잘 통과한 청년도 있을 테고 그렇지 못해 공동체를 떠난 청년도 있습니다. 이 공동체에 대한 데스크 리서치 중 BBC 아티클에서 청소년 시기에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사귄 경우 집단적으로 질책을 받고 그 트라우마로 인해 공동체를 떠났거나 공동체 밖에서 자립하기에 경제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으며 청년이 되어 공동체를 떠난다고 했을 때 배신자 취급을 당했다는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만장일치제와 사랑 안에서 솔직한 소통 방식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는 중요한 사항에 대한 의사결정을 만장일치제를 통해 진행하고 있는데 새로운 공동체 구성원을 맞이하는 일 혹은 약혼에 동의하는 일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회의를 하고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합니다. 이 때 사랑 안에서 직접 솔직하게 말하는 소통 방식(Straight Talking In Love)을 사용해 갈등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합니다. 필요시 스스로 잘못된 행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고백을 합니다. 이들은 순수한 신앙과 열정을 가지고 공동체의 본질, 방향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서슴없이 지적하면서 공동체를 이끌어나갑니다. 그래서 제3세계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단체 금식을 하거나 죄수와 마약 중독자들의 교화, 사형 폐지운동, 쿠바 어린이들과의 교류 등의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방문을 신청하면 호스트 가정에서 지내게 해주는 대신 무료 노동을 제공하게 하는 형태로 방문객을 받고 있습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 마을과 앞전에 살펴봤던 일본의 히가시카와 마을과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 볼 수 있는데요. 두 마을의 공통점은 공동체 내부 규정을 준수하고 마을 구성원들이 자연에서 노동을 기반으로 한 올가닉 라이프를 추구하며 아이들의 교육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죠. 차이점은 브루더호프 공동체가 신앙을 중심으로 한 공유재산제 방식을 추구하는 반면, 히가시카와 마을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외부에 개방적인 톤 앤 매너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브루더호프가 전 세계에 23개의 공동체가 있다는 점을 볼 때 분명히 이 공동체 마을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브루더호프 공동체 마을 사례를 통해 초대교회 공동체의 삶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고 육체적 노동의 땀방울이 가져다주는 겸손하고 감사한 수고의 가치를 간접적으로나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단체 금식과 봉사활동을 통해 더 어려운 사람을 돕고자 하는 이들의 선한 영향력도 느꼈습니다.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자유와 권한을 포기했지만 그럼에도 소박하고 검소한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 누구는 그들만의 세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공동체들이 생겨난 이유와 그들의 환경적, 사회적 임팩트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참고할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들고 싶은 작은 에코빌리지 커뮤니티에서 공동 노동을 통해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과 자본주의 사회에 휘둘리지 말고 꿋꿋하게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해야겠다고 다짐해보았습니다.
<3줄 요약>
* 다양한 연령대의 구성원이 공유재산제에 따라 무소유 및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추구
* 신앙 공동체로서 공동 노동과 아이들 교육을 중요시 여김.
* 만장일치제와 정기 회의를 통해 문제 논의 및 사랑 안에서 직접적인 소통방식 사용
자료 출처
<어떤 배움을 떠나야만 가능하다>, 김우인, 열매하나
브루더호프 공동체 사람들의 한국 사랑, 한겨레, 박성훈, 2022년 11월 24일https://www.hani.co.kr/arti/well/well_friend/1068826.html
Bruderhof: My dark past growing up in a rural English commune
https://www.bbc.com/news/uk-england-51310036
세계의 공동체(4) 브루더호프(Bruderhof) 공동체, 크리스천 라이프 & 에듀 라이프 오스트레일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