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에코빌리지를 산책하다 ⑭미국 뉴욕 이타카 에코빌리지

by 킨스데이

<노 임팩트 맨>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사는 저자가 잡지사에 다니는 와이프, 두 살짜리 딸아이와 함께 1년 동안 환경에 최소한의 영향을 끼치는 삶을 살아본 경험을 담은 책입니다. 이후에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8층 라운지에서 멤버들과 '노 임팩트 맨' 영화를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눈 기억도 납니다. 그때 내린 결론은 "일상의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 하지만 도시에서 이렇게까지 해야 될...?"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서울토박이로서 환경에 대한 관심도 크지 않았고 에코빌리지에 대한 개념 자체가 뇌 속에 1도 존재하지 않았던 때라 'Call to action'까지 일어나지는 않았던거죠. 다만 이번에 미국의 대표적 생태마을 중 하나이기도 한 미국 뉴욕 주에 있는 이타카 에코빌리지에 대해 살펴보면서 <노 임팩트 맨>이 떠오른 건 우연이었을까요? 숲과 동물을 사랑한 아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동물을 살리고 사람이 멸종하면 좋겠어요"라는 말에 싱글맘 리즈 워커는 무려 13년이나 걸린 이타카 에코빌리지 프로젝트를 주도하게 됩니다. 그녀의 추진력과 실행력 그리고 끈기와 인내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오늘은 저와 함께 이타카 에코빌리지를 산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타카 에코빌리지는 뉴욕에서 차로 3시간을 달리면 코넬대학교와 이타카 대학이 있는 동네 근처에 있습니다. 예전에 미국 동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코넬 대학교는 시골에 있어서 "자살률이 높다"란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요. 그만큼 이 지역에 자연이 살아있고(그만큼 외부와 단절되어 있어서 외롭고) 그런 자연환경을 잘 보전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되겠죠. 이타카 에코빌리지가 있는 웨스트 힐은 아름다운 주변 경치와 비옥한 토양에 집짓기 수월한 완만한 평야지대였으며 나무를 베어내지 않아도 될 친환경 지역이었습니다. 장소를 확정한 뒤 리즈는 미국의 2백 여 곳의 에코빌리지를 돌아다니며 연구하고 학습하며 다수의 전문가들과 함께 이타카 에코빌리지를 조성했습니다. 1991년부터 지금까지 이타카 에코빌리지는 Live, Learn and Grow를 지향합니다. 이 생태마을의 미션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구와 모든 거주자의 장기적인 건강과 삶에 적합한 쉼터, 음식, 에너지, 생계 및 사회적 연결을 위해 인간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에 대해 경험적 학습을 촉진함으로써 다 같이 성장합니다."


이타카 에코빌리지의 175 에이커(21만 평)의 넓은 대지는 녹지 지대 80%와 주거 단지 20%로 구분되는데 2백 명 이상의 주민들이 Frog, Song, Tree란 세 개의 커뮤니티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처음 지어진 Frog는 오밀조밀하게 주택이 모여있고 Song은 좀 더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주택별 거리를 두었으며 Tree는 공동주택 형태로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생태공동체에 거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타카 에코빌리지 전경 (사진: 이타카 에코빌리지 홈페이지 전경)


환경적인 측면에서 이타카 에코빌리지의 주거단지는 '그린 디자인'을 원칙으로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친환경 방식을 지향합니다. 친환경적인 건축 재료와 마감재를 사용하고 남향으로 지어 최대한 일조량을 확보했으며 지붕에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하고 단열을 강화해 난방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또한 퍼마컬처 방식으로 공동 텃밭을 운영하는데 포도, 키위, 콩 등 각종 채소와 과일들을 키우고 지렁이를 활용해 토양을 비옥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타카 에코빌리지의 커뮤니티는 영유아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주민들이 가족, 싱글, 커플 형태로 거주하고 있습니다. 농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간호사, 교사, 작가, 시인, 건축업자, 음악가, 변호사, 금융 전문가, 대학교수, 교사, 사진가, 예술가 등 직업도 다양하고 인도, 브라질, 푸에르토리코, 일본, 이탈리아, 러시아, 중국, 필리핀 등 출신 국가도 서로 다릅니다. 마을 주민들은 요리, 설거지, 야외 활동, 유지 관리, 공동주택, 재무, 프로세스/조율, 커뮤니티 생활 등을 위한 팀에 소속되어 일주일에 2-3시간 정도 자원봉사를 통해 커뮤니티 운영을 뒷받침 합니다. 누군가 집을 지으면 외부 인력을 쓰지 않고 마을 자체 인력으로 가능할 정도입니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씩 다 함께 모여 식사를 합니다. 이 마을에서는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Announce List'란 단체 이메일을 통해 주민들과 소통하고 있는데요. 얼굴을 보면서 대화하거나 전화로 했을 때 갈등이 발생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최대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조심할 수 있도록 비대면 이메일 소통을 선호합니다.


거버넌스 측면에서 마을 주민들은 합의 과정을 통해 의사결정을 합니다. 우선 Frog, Song, Tree 커뮤니티별로 의사 결정 절차를 따르고, 이 세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마을 연합(Village Association)이 최종 결정을 합니다. 마을 연합원의 선발 방법이나 임기, 역할과 책임, 권한과 관련된 정보는 아쉽게도 확인이 불가했습니다.


이타카 에코빌리지에 사는 가족들 (사진: 이타카 에코빌리지 홈페이지)


제가 예전에 살던 곳에서 그렇게 멀지 않아서 이타카 에코빌리지에 대해 알았더라면 한 번쯤 방문해 봤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토요일마다 외부 방문객이 투어를 할 수 있도록 오픈하는 개방성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여기는 호주의 크리스탈 워터스나 독일의 브루더호프 에코빌리지처럼 공동체 차원의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다기보다는 개별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면서 커뮤니티를 추구하는 모델이었습니다. 다만 뉴질랜드의 어스송 에코빌리지처럼 환경 교육이나 퍼마컬처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해당 수익은 커뮤니티로 돌아가게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추가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잠시 경험했던 미국 동부는 바빠서 말도 엄청 빠르게 하고 인간관계 형성도 기브 앤 테이크 중심으로 하는 전형적인 미국 도시였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미국 백인 중산층들의 마음속에는 Charity 정신이 깔려있어 그나마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은 편이긴 하지만요. 그런 도시인의 삶 속에서 '자연'과 '커뮤니티'란 비어있는 퍼즐을 채운 것이 바로 이타카 에코빌리지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제 인생의 95%를 서울 어느 아파트에서 거주해 온 제가 느끼는 바로 그런 목마름을 작은 에코빌리지를 만들어서 해소해보고 싶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런 목마름을 채울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조만간, 곧 해야 한다는 마음의 속삭임이 오늘도 이타카 에코빌리지를 통해 메아리치듯 귓가에 울려 퍼지네요.


<3줄 요약>

* 싱글맘의 주도로 13년에 걸쳐 뉴욕주에 건설된 계획 생태 공동체

* '그린 디자인' 원칙을 기반으로 주택 건설 및 퍼마컬처를 활용한 텃밭과 정원 운영

* 이메일 소통과 재능기부를 통한 커뮤니티 운영


자료 출처


이타카 에코빌리지 홈페이지 https://ecovillageithaca.org/

'노 임팩트 맨'이 사는 세상, 행복이 가득한 집 https://happy.designhouse.co.kr/magazine/magazine_view/00010006/2645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에코빌리지를 산책하다 ⑬평창 성  필립보 생태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