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서 한국어로 '생태마을'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평창에 있는 '성 필립보 생태마을'이 보입니다. 이곳은 천주교 신부님이 주도해서 만든 에코빌리지인데요.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의 세계는 도통 알 수 없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아님 말고'라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성 필립보 생태마을에 대해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알고 보니 이 마을을 만드신 황창연 신부님이 명망 있는 분이셨습니다. 국내외에서 '죽음 껴안기' 등 강의를 많이 하셨고 아침마당이란 TV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셨으며 가수 비와 배우 김태희 결혼식 주례도 하셨던 분입니다. 황 신부님은 어린 시절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몸이 아파 2년간 동네 성당에서 하루종일 기도하며 지내다 사제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인해 환경에 관심이 많아 대학원에서 환경공학 석사학위를 딴 황 신부님은 여러 기적의 손길을 통해 강원도 평창에 생태마을을 2000년 11월에 완공하셨는데요. 생태마을 공사 기금을 보태주신 고 김창린 신부님의 세례명을 따서 마을 이름을 '성 필립보 생태마을'로 지었다고 합니다.
성 필립보 생태마을은 강원도 삼방산과 평창강이 맞닿은, 해발 700미터 높이에 있는 생태마을로 '사람과 자연의 공존을 체험할 수 있는 장'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약 3만 평(10만㎡)에 세워진 생태마을에서 약 5천 평(16,500 ㎡)에 이르는 텃밭에서는 초중고 수련생을 대상으로 무농약 감자 캐기, 토마토 수확 체험 등 도시에서 경험할 수 없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가족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산책하기, 고추장, 된장 담그기, 별 보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또한 2006년 신재생에너지 전파를 위해 20kW 용량 태양광 발전 설비를 구축하고 30kW 용량의 풍력발전소를 운영함으로써 매달 50만 원씩 전기료를 절약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의 국산콩을 구매해 만든 청국장 가루로 2022년 기준 연매출 170억 원을 달성했는데요. 판매 수익금 일부는 아프리카 잠비아 땅에 나무 심기 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 마을에는 휴식, 피정, 환경교육과 체험학습 등을 위해 한 해 평균 5만 명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2020년부터 시작한 유튜브 온라인 장마당을 통해 20회 이상 온라인 판매 행사를 개최해 평창 산딸기 1,500 세트 완판을 포함해 8억 7천만 원어치의 지역 농특산물을 판매했습니다. 농번기에는 지역 주민들도 함께 와서 일하는 '사회적 기업'처럼 운영이 되고 있으며 매월 정기 회비를 내고 가을 무농약 배추 30 포기를 선물로 받는 '되살림 후원회' 회원도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모든 사업 및 프로그램 운영 지원을 위해 사제 포함 청년 직원을 60여 명 고용해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제한적인 정보로 인해 쉽게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성 필립보 생태마을은 성대골 에너지 자립마을이나 독일 보봉 탄소제로 마을처럼 마을주민들이 함께 모여 살며 친환경적인 삶을 추구하는 공동체 중심의 일반적인 생태마을 형태와는 조금 다르게 '에코 피정 프로그램 등 자연 공간을 중심으로 한 체험 제공과 청국장 가루와 같은 지역 원재료를 활용한 제품 생산 판매, 온라인 장마당, 디지털 성당 등 온라인 채널을 기반으로 생태 마을과 외부인, 지역 농민과 도시 소비자를 연결하는 브릿지 역할'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별로 니즈에 따라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구조인 거죠. 성 필립보 생태마을은 누군가에게는 쉼터가 되고 교육 체험장이 되기도 하며 직장이기도 하고 새로운 판로가 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무엇보다 존경을 받고 있는 신부님 주도로 구축된 비즈니스 모델 (친환경 식품 및 체험 교육 프로그램)이 명확한 점과 평창 소수력 발전소 개발 반대 등 지역의 환경 문제에도 적극 참여해 주민들과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 등 신부님의 선한 영향력과 리더십이 크게 작용하는 생태마을 구조가 특징인데요. 황 신부님은 은퇴 전까지 문경, 여주 등 이런 생태마을을 전국에 40개 더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셨습니다. 이런 형태의 생태마을은 앞으로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운영될지, 특히 생태마을 내부의 거버넌스와 커뮤니티는 어떻게 운영되고 소통하는지, 향 후 신부님 부재에 대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여러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우선 성 필립보 생태마을에는 부관장을 맡은 신부님이 계셔서 그 바통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되긴 합니다만 제가 국내외 생태마을 사례를 분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커뮤니티 측면, 거버넌스 측면은 확인이 어려운 점이 아쉬웠습니다. 저도 에코피정 프로그램에 참여해 미확인된 두 측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희망합니다.
<3줄 요약>
* 신부님 주도로 무농약 텃밭, 태양열, 풍력 발전소 운영 및 초중고 환경교육, 에코 피정 프로그램 운영
* 지역 콩을 구매해 청국장 가루 판매 및 온라인 장마당 운영으로 지역 농산물 판로 제공
* 60여 명 직원 채용으로 청년 일자리 창출
자료 출처
마음의 햇빛과 공기로 고통 발효시켜 희망을 담그다,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well_old/724865.html
'청국장 신부' 황창연 신부를 만나다 http://www.cpbc.co.kr/CMS/news/view_body.php?cid=840907&path=202302
신재생 에너지 희망 알리기 앞장 http://www.kwnews.co.kr/page/view/2008072400000000131
"그리스도인은 항상 죽음 묵상해야" 강원도 평창 성 필립보 생태마을 황창연 신부 인터뷰 https://news.koreadaily.com/2014/09/29/life/religion/2851359.html
이 마을의 시간은 '자연'스럽게 간다, '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6/21/20120621030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