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43세 여성 프리랜서의 목공 도전기

by 킨스데이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


“뭘 배운다고? (침묵) 그래……뭐라도 배우면 좋지……“


국비 전액 지원 가구제작 과정을 신청했다고 말씀드리자 엄마는 이렇게 말끝을 흐리셨습니다. 두 달 내내 집에서 백수로 지낸 둘째 딸내미가 안쓰러웠던지 그래도 크게 반대하진 않으시네요. 2년 전 ㅎㅇ대 경영대학 겸임교수 됐다고 말씀드렸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습니다. 하긴 딸이 목수가 되겠다는데 잘했다, 잘했어 기뻐할 한국의 엄마가 몇이나 될까요?


그도 그럴 것이 저는 30대 초반까지는 부모님들이 자식 자랑할 때 주로 사용하는 레퍼토리인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기업 다녀요"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몸이 아파오면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결심했고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우연한 기회에 미국 비영리 기관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영리 섹터에서 비영리 섹터로 커리어를 전환하게 됐지요. 이때 엄마의 반응은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거해”였습니다. 그 이후로 정규직이 전부인 줄 알았던 저에게 또다시 프리랜서로 전환하는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 기회를 통해 프로젝트 컨설턴트, PM, 선임연구원, 글로벌 매거진 부편집장, 겸임교수, 코치, 개인사업 대표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가지고 일을 했습니다. 이때도 엄마는 별말 없이 응원해 주셨어요. 저는 엄마랑 제 커리어에 대해서 논의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냥 스스로 알아서 하는 독립적인 타입이거든요. 그렇다고 지금까지 처음부터 미리 철저하게 계획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좋은 분들을 만나 새롭게 주어지는 기회를 큰 고민 없이 잡았고 물 흐르듯이 지금까지 흘러왔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는 것 같아요. 다행히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는데 두려움이 덜하기도 하거니와 도전을 통해서 성장하고 싶은 개인적 욕구가 강한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2023년 새해를 맞아 저는 넥스트 커리어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계속하던 일을 해도 크게 무리는 없었지만 무언가 부족했습니다. 제 안에서 컴포트 존을 벗어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영역으로 한 걸음 내딛고 싶다는 강한 신호를 감지했거든요. 18년 동안 책상머리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작업하던 무형의 일도 의미가 있긴 했지만 이제는 그 박스에서 벗어나 정직하게 두 손을 사용해서 사브작 사브작 직접 만들어낸 유형의 성과물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온전히 땀과 노력으로 나만의 브랜드를 갖고 싶었습니다. 헤르만 헤세가 말하는 껍질을 파괴하고 알에서 나와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죠.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3년 전 뉴질랜드 여행 때 참여했던 <코하우징 워크숍>과 그곳에서 처음 만난 (지금의) 건축가 남자친구 영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코액티브 코칭 과정을 통해 제가 궁극적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삶의 목적과 미션을 찾아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저는 궁극적으로 "작은 에코빌리지 커뮤니티 빌더"가 되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이 좋아진다고 하던데 숲도 있고 물도 흐르는 그런 자연 속에서 친환경적인 공법으로 4~5채의 집을 짓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솔라 에너지를 활용한 에너지 자립, 빗물을 활용한 물 소비 저감, 음식쓰레기 및 퇴비를 활용한 텃밭 정원 운영, 커뮤니티 멤버들과 식사도 함께하면서 가능한 선에서 에코프렌들리한 자급자족을 하고 싶거든요.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생태건축, 요리, 퍼마컬처, 가드닝 등 여러 스킬이 필요했지만 우선 그 시작을 친환경 라이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무'란 재료와 친해지고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자원절약과 재활용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에도 관심이 많기 때문에 가구 수리, 리폼, 업사이클링 가구 프로젝트 또한 진행해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엄마에게 이런 비전을 구구절절 말씀드린 적은 없습니다.


그러다 동네 도서관에 가서 발견한 책이 바로 <젊은 목수들: 우리 시대의 새로운 가구 제작 스튜디오를 찾아서>이었고 여기서 소개된 '유니크 마이스터 목공학교'를 알게 됐어요. 유니크 마이스터를 핸드폰으로 한 번 검색하고 나니 구글과 네이버 검색 알고리즘이 친절하게도 관련 정보를 노출시켜 준 덕분에 국비 전액 무료 지원으로 3월 7일부터 8월 25일까지 진행되는 "가구제작 산업기사 과정형 모집" 정보를 접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절차로 서둘러 수강신청을 했는데요.


[국비 전액 무료 지원 가구제작 산업기사 과정형]

(1) 유니크 마이스터 카페에서 정규반 모집 공고 확인 https://cafe.naver.com/uniquemeister/5935

(2) 유니크 마이스터 측에 전화로 수강생 모집 진행 여부 확인

(3) 직업훈련포털 HRD-net (www.hrd.go.kr)에서 회원가입 후 국민내일배움카드 발급 신청.

이때, 신분증과 국민내일배움카드 발급 확인서를 가지고 은행에서 직접 수령으로 선택해야 당일 수령 가능하며 우편으로 진행 시 2주 소요.

(4) 직업훈련포털에서 원하는 정규반 모집 과정 수강 신청 완료

(5) 유니크 마이스터 수강 신청서 작성 완료 (지원 동기와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한 신청서로 구성)

(6) 지역 고용 센터에서 전화가 오고 수강 신청 확인 및 국민내일배움카드 결제 관련 내용 안내해 주며 출석 의지 및 통학 여부 확인함.

(7) 유니크 마이스터에서 20분 정도 전화 인터뷰 진행 (평소에는 면접 인터뷰로 진행한다고 함)

(8) 최종 수강 합격 통보 및 카톡 단체방 초대받음


수강신청을 한다고 무조건 다 선발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개강 기간이 다음 주이기 때문에 전화 면접으로 진행됐으나 수강 지원 동기와 의지, 수강 후 진로 계획 등을 꼼꼼하게 확인하셨어요. 대략 6백 만 원에 달하는 과정을 전액 무료로 지원받는 거라 출석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셔서 올해 봄과 여름까지 제 시간을 이 과정에 올인해보려고 합니다. 비록 엄마의 적극적인 응원을 받지는 못했습니다만, 나무 숟가락을 만들다 포기했었던 경험이 전부인 43세의 여성 프리랜서가 목수가 되는 길, 이렇게 시작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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