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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그린 집'을 산책하다 ① 미국 텍사스 블랑코

'나는 자연인이다' 글로벌 버전?

by 킨스데이

올해 4월부터 EBS에서 "숲이 그린 집"이라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있는데요.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에코 빌리지 커뮤니티와 달리 한 가족 혹은 한 커플이 숲 속에서 자연친화적인 삶을 사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한국의 '나는 자연인이다'의 글로벌 버전이라고 하시던데요. 저는 '나는 자연인이다'의 경우, 대부분의 출연진이 중년 남성분이 산속에서 극단적으로 고독하게(!) 혼자 사는, 일반 도시인이 시도하기에는 난이도가 높은 삶을 (일부러 강조해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제가 지향하는 라이프 스타일과는 좀 거리가 있기에 해당 프로그램의 팬은 아닙니다. 하지만 '숲이 그린 집'은 초보자도 한 번쯤은 꿈꿔볼 만한 난이도가 좀 더 낮게 편안하게 접근해서 그런지 에코빌리지 커뮤니티를 준비하는 저에게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틈틈이 소개되는 사례를 한 편씩 저의 관점에서 포스팅을 해보려고 합니다.


텍사스 블랑코 어느 숲 속의 나무집 (EBS 화면 '숲이 그린 집')


첫 번째 사례는 미국 텍사스 블랑코 마을에서 14km 떨어진 숲 속에 사는 젊은 부부의 집이었습니다. 리먼 브라더스와 같은 대기업에서 부품처럼 일하던 남편은 9/11 테러 이후 뉴욕을 떠나 숲으로 들어갑니다. 통제할 수 없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직접 자기 방식대로 만들어서 새로운 삶을 추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혼자 텐트를 치고 지내다 교사였던 와이프와 함께 숲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보통 이렇게 사는 분들의 특징이 직접 집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경량 주택 집짓기 과정>에 20대의 젊은 청년들도 참여한다는 소식이 들릴 정도로 내 집 짓기에 관심이 많은데요. 물론 이렇게 지은 집들은 건축가에게 의뢰해서 짓는 멋들어진 모던한 하우스는 아니어서 뭔가 어설프고 너저분하지만 나무와 같은 자연 친화적인 소재로 오랜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내 손으로 직접 지은 집은 터라 뭔가 더 정겹고 편안한 아날로그적이면서 아마추어스럽죠. 향나무와 삼나무의 군락지 사이에 남편이 직접 혼자 8~9개월에 걸쳐 지은 집을 포함 총 3채(본채, 스튜디오,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집들은 드론을 날려 멀리서 봐도 눈에 잘 띄지 않는 "내추럴톤"이라는 점이 먼저 제 시선을 끌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뉴질랜드의 경우, 이렇게 산이나 바다 등 자연 속에 집을 지을 때는 눈에 튀는 색을 쓰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집을 짓는 소재도 남들에게는 쓰레기이지만 수거해 와서 창의적으로 재활용을 하면서 수명을 더 길게 연장시켜 사용했다는 점도 흥미로웠는데요. 예를 들면 남들이 버린 울타리를 분해해 건물 벽으로 재사용하거나 어린이 체육관의 바닥을 뜯어와 거실 바닥재로 사용했습니다. 가구 또한 할머니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거나 선물 받아 소중한 추억이 담긴 오래된 가구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이로 인해 집에 대한 스토리가 더욱더 풍성해지는 것이죠. 또 다른 특징은 집에 창문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침실에서도 거실에서도 집 안에 있지만 햇살을 즐기면서 숲 속의 풍경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이와 더불어 이렇게 사는 분들은 뷰, 전망을 중요하게 생각하더라고요. 루프탑에서 일몰과 일출, 숲을 감상할 수 있도록 집의 높이와 위치를 정하는데 반영했습니다.


오래된 가구와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침실 (EBS '숲이 그린 집' 화면)


에너지 측면에서는 중고 빗물 저장 탱크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텍사스의 극심한 가뭄을 견뎌냈고 전기도 충분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급자족을 위해서 빵은 직접 오븐에다 굽고 21마리를 길러 달걀을 얻으며 아직 초보 농사꾼이라 허브를 키워 요리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고기는 사냥 시즌에 얻은 사슴고기로 요리를 하기도 하는데요. 차를 타고 숲 언저리에 가서 만난 이웃과 물물 교환을 하는데 직접 기른 당근을 얻고 직접 만든 빵을 나누었습니다. 이웃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을 부부는 선호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마도 자녀가 없어서 이런 거리 두기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부부는 가능하면 마을의 슈퍼마켓에서 식료품 구매하기를 줄이기 위해 정원에 허브 외에도 다양한 채소를 심으려고 계획도 하고 있네요.


이른 봄이 되자 허브를 가꾸고 씨를 뿌려 자급자족이 가능하도록 정원을 가꾸는 부부 (EBS '숲이 그린 집' 화면)


자연 속에 살기 때문에 부부가 느끼는 기후 위기 체감도는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텍사스에 얼음 폭풍이 불어 숲의 나무들이 타격을 많이 입었는데요. 부부는 가지치기 작업을 통해 나무를 솎아줍니다. 그래야 살아남은 나무들이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른 가지들은 겨울에 땔감용으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숲을 바라보는 부부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네요.


불멍 (EBS '숲이 그린 집' 화면)

아침이면 남편은 작업실에서 나무 조명 회사에서 얻어온 조각 쓰레기로 예술 작품을 만들고 와이프는 그 옆에 앉아 희망에 대해 작사, 작곡해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릅니다. 친구들이나 이웃이 놀러 오면 나무 땔감을 모아 불멍을 하고요. "자연에 대한 감사, 서로에 대한 감사"가 넘치는 부부의 소박한 일상을 보며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100% 자신의 삶을 스스로 컨트롤하고 있는 모습이었거든요. 분명히 도시에서 살 때 보다 지금이 행복과 삶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아 보였습니다. 그동안 에코빌리지 커뮤니티가 가장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부부는 새로운 영감과 자극을 주면서 또 하나의 선택지를 저에게 제안해 줬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다큐멘터리가 45분 분량이라 경제적으로 어떻게 삶을 영위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인데요. 내 땅과 내 집이 있고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면 이 또한 부부에게 큰 이슈가 되지 않겠다 싶기도 합니다. 또한 커뮤니티 측면에서도 이웃과의 물물교환 외에 어떤 활동과 교류를 하는 지도 알 수는 없었습니다. 둘이어서 외로움과 고독감을 느끼지는 않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극복하는지 등등.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는 눈빛에 사랑이 그렁그렁해보이긴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 다큐멘터리는 16년간 숲과 공존하는 부부, 즉 "사람의 얘기"이고 숲을 그린 집은 거들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부부의 생애주기에 따라 어떤 이야기가 진행될지 궁금해지네요. 그래서 "숲이 그린 집" 다음 편의 주인공 이야기가 더 기대가 됩니다.


루프탑에서 일몰을 감상하는 부부 (EBS '숲이 그린 집' 화면)


<3줄 요약>

- 창문이 많고 햇살이 잘 들어오도록 자연 친화적 소재로 재사용해 직접 지은 나무집

- 빗물 저장 탱크와 태양광 패널로 오프그리드 시스템으로 기후위기 극복

- 닭, 허브, 베이킹 등 자급자족을 통해 스스로 컨트롤하는 소박한 삶 영위


* 숲이 그린 집 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VyLcU-lHPv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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