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넘어지면 재도전 절대 안합니다.
2019년 11월. 호텔 안에서 이틀 내내 진행된 아시아 임팩트 투자 컨퍼런스가 모두 끝나고 드디어 제주도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아웃도어 아침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화창한 날씨. 기온 20도. 그냥 편하게 자전거 타고 호텔 주변을 한 바퀴 휘리릭 도는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는데 MTB 자전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 흠 그래도 페달 몇 번 밝아보면 예전 자전거 탔던 감각이 살아나겠지? 막연한 낙관주의로 과감히 헬멧을 쓰고 MTB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오잉. 생각보다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 앞으로 흔들 흔들거리며 나아가자 살짝 당황했다. 브레이크와 기어가 있다는 사실에 살짝 멘붕. 오르막길에서는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고 호텔 정문에서 길을 건너 이제 출발~하는데 나는 다리가 후들후들 자신이 좀 없었지만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뒤에서 봐주시는 분들이 있었고 기어와 브레이크 사용법을 열심히 설명해주려는 동료도 옆에 있어서 용기를 내었다. 그러다 결국 내리막길에서 어어어어 하다가 왼쪽으로 반원을 크게 그리며 옆으로 쭈욱 그대로 넘어졌다. 이 모든 장면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슬로우 모션으로 눈 앞에 펼쳐졌다. 교통 사고는 이렇게 나는 것일까? 순간 아찔했다. 그러나, 다행히 건너편에서 오는 차량이 없었고 헬멧이 머리를 보호해주었으며 파타고니아 후리스 재킷을 입은 상태에서 왼팔이 먼저 땅에 닿으면서 얼굴을 미리 받쳐주었기에 외형적으로는 무릎이 까져 피가 좀 난 것 외에는 크게 이상은 없었다. 아끼는 검정 기모 바지에 구멍이 뚫렸고, 끼고 있던 찰스앤키스 선글라스 다리가 늘어난 정도? 왼쪽 앞니가 살짝 땅에 부딫혀서 얼얼하고 잇몸이 살짝 긁힌 정도? 물론 부끄러움은 온전히 나의 몫이고. 여행사 직원의 도움으로 바로 소독약을 바르고 일회용 반창고를 붙였다. 초등학생 때 이후로 무릎까진 적이 없었는데 나이 사십에 허허허. 헛웃음만 나왔다. MTB 자전거 타기는 결국 무리였던가? 예전에 자전거 좀 탔었는데. 흠냐. 그럼에도 크게 다치지 않아 감사하고 담담했다. 자전거 탈 때 헬멧은 필수! 큰 맘 먹고 질렀던 파타고니아 플리스 재킷 고마워!
자전거는 포기하고 여행사 직원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타 자전거 행렬 뒤를 따랐다. 날씨가 가을날처럼 화창해서 자전거 타기에는 딱이었는데 그 무리에 끼어 충분히 풍경을 누리질 못해 내심 아쉬웠다. 빠릿빠릿하게 밸런스를 잘 잡지 못한 내 자신을 살짝 원망하면서도 이만하길 다행이지 스스로 토닥였다.
이번 자전거 투어에서는 ‘Bike Clean’ 액티비티가 기억에 남는다. Bike Clean 이란 자전거를 타고 가다 쓰레기를 줍는 액티비티를 지칭한다. 바닷가 근처에 도착했을 때 모두 장갑을 끼고 비닐봉지를 하나씩 받아서 주변의 해양 쓰레기를 주웠다. 바닷물에 잠겼던 쓰레기는 염분 때문에 이미 재활용이 불가능해서 일반쓰레기로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해변가 주변에 쓰레기를 줍는데 녹색 소주병 바닥의 동그란 부분이 오랜 세월 바닷물에 깎여 작은 조각이 된채 버려져있었고, 엄청난 분량의 폐그물도 있었다. 쓰레기는 정말 끈질기게 오래 살아남아 흔적을 암겼다. 쓰레기를 버린 인간보다 더 오래 장수한다. 7살, 4살짜리 두 조카들에게도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아름다운 제주도를 그대로 물려줄 수 있을까? 생각하니 지금이라도 우리는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개인 한 명 한 명이 즉각적인 행동을 취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컨퍼런스가 특히 환경 문제를 다루었고 환경 분야 쪽으로 투자를 하는 임팩트 투자자와 액셀러레이터, 창업가들을 만날 수 있었던 기회였는데 업무를 통해 환경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에 마음 깊이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아무튼 2020년 2월 24일 새벽 1시 12분 지금 이 시간에도 아직 왼쪽 무릎에 난 상처 자국 두 개가 그 때의 상황을 실감나게 각인 시켜준다. 이런 사고를 당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행동패턴은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악바리같이 7전 8기로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 마침내 성취해내는 사람. 후자는 그냥 바로 포기하는 사람. 나는...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후자다. 약점을 강화하기 보단 장점에 집중하는 성향이 있는 나는 포기도 빠르다. 그 이후로 MTB 자전거는 커녕 일반 자전거도 겁나서 못타고 있다. 대신 열심히 걸어다닌다. 그랬더니 왼쪽 발목 인대가 부어서 재활치료를 몇 번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태로 지금 뉴질랜드에서 3주째 빨빨거리며 친환경, 지속가능한 사례들을 학습하고 체험하며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다. 그래도 감사하다. 절뚝거리면서라도 내 힘으로, 내 발로 이번생 마지막 여행을 계속할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