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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Mar 15. 2024

기후위기 시대에 뉴질랜드 와이너리의 생존법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미션 이스테이트 와이너리 방문기

  홍수, 가뭄, 산불 등 자연재해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식량 생산 및 공급에 빨간 불이 켜졌다. 와이너리도 예외가 아니다. 국제와인기구 OIV는 2023년 11월에 발표한 <세계와인산업전망보고서>에서 프랑스와 함께 프리미엄 와인의 쌍두마차인 이탈리아의 와인 생산량이 12%나 줄었다고 발표했다. 이상 기후의 영향으로 신대륙 와인의 대표 주자인 호주와 칠레 역시 와인생산량이 22%, 18%로 각각 줄어든 반면 영국의 와인 생산량이 1억 리터를 넘었다고 하니 앞으로 세계 와인 생산국의 지형이 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과거의 영광은 뒤로 하고 와이너리들이 기후위기 시대에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이다.


  누군가 내 주량을 물어본다면 와인 한두 잔이라고 대답한다. 그렇다고 와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와인 관련된 책은 몇 권 샀지만 공부해야 될 게 많아 보여 부끄럽지만 아직 정독 및 완독을 하지는 못했다. 그저 마셔보고 맛있으면 충분하다고 만족하는 수준이다. 그래도 해외에 나가면 와인 한 두 병씩 구매를 하고 가능하면 와이너리도 방문하려고 노력한다. 최근 들어 기후 위기 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와인 농가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해 신경이 쓰인다. 어쩌면 앞으로 와인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플렉스를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이 들면 기분이 가라앉고 불안해진다. 마침 현지 친구와 뉴질랜드 혹스베이 지역을 여행하게 됐다. 이 지역의 대표 와이너리인 "미션 이스테이트 와이너리"를 방문해 그들의 생존 전략을 살펴봤다.


건축상을 수상한 미션 이스테이트 와이너리 메인 건물 전경 © 2024 킨스데이


  뉴질랜드 북섬 동쪽 혹스베이 지역의 네이피어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미션 이스테이트 와이너리"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1838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혹스베이의 네이피어와 헤이스팅스 사이에 있는 Ngaruroro 강 근처에 처음 정착해 1851년 최초로 성찬용 와인을 생산했고 1870년에 본격적으로 상업용 와인을 양조하기 시작했다. 1909년 홍수와 1931년 대지진 등 자연재해에도 굴하지 않고 건물의 위치를 이동하고 포도밭을 확장했다. 1979년 선교사들에게 트레이닝을 받은 폴 무니(Paul Mooney)가 와인 메이커로 임명되면서 1983년에 뉴질랜드 최초로 샤도네이를 탄생시켰다. 1993년에는 "미션 콘서트"에서 뉴질랜드 최고의 오페라 가수인 키리 테 카나와(Kiri Te Kanawa)가 첫 번째 '미션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쳤다. 1994년에는 Sustainable Winegrowing New Zealand (SWNZ) 창립 멤버가 되었고 1998년에는 뉴질랜드 최초로 ISO14001 인증(환경경영시스템)을 획득했다. 2002년에는 메인 건물이 건축상을 수상했고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그 이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성공적으로 빈티지를 생산하고 레스토랑을 재단장하면서 버텨냈고 2021년에는 170주년을 맞아 라벨 디자인을 새롭게 선보였다.   


상업용 와인 양조를 위해 포도를 수확하고 있는 사람들 (이미지 출처: 미션 이스테이트 와이너리 홈페이지)  


와이너리 입구에서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을 따라 펼쳐지는 100년 넘은 영국 플라타너스 나무 풍경 © 2024 킨스데이  


  미션 이스테이트 와이너리는 입구부터 그 존재감이 심상치 않았다. 레스토랑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양 옆으로 100년 넘은 플라타너스 나무들의 향연에 펼쳐졌다. 예상치 못한 감동의 싸대기를 맞은 기분이었다. 역사 깊은 메인 건물과 지하 창고 갤러리도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런 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메인 건물 앞 널찍한 야외 정원에 있는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에는 요리와 어울리는 와인을 함께 추천하고 있었고 나는 양갈비 요리와 말벡 한 잔을 주문했다. 우리 주변에는 가족들과 연인, 단체 그룹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식사는 훌륭했고 와인의 페어링도 완벽했다. 쾌적한 날씨에 안구정화가 되는 초록초록한 와이너리의 풍경 그리고 친절한 서비스. 이곳에 머물고 있는 자체 만으로도 그저 기분이 좋았다. 가능한 오래 머무르며 이 바이브를 즐기기 위해 친구와 나는 디저트를 주문했다.


내가 주문한 구운 양갈비 요리와 말벡 와인 © 2024 킨스데이


  더 머물고 싶다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후위기 시대에 미션 이스테이트 와이너리의 생존 전략을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퀄리티, 품질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뻔한 것이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 당연한 것을 놓치는 비즈니스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자주 목격해 왔다. 여기 와이너리에서는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와인메이커가 미션 와인의 생산 유지 관리를 전담하고 있다. 과거에 홍수와 지진이란 자연재해에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포도밭을 확장하고 와인 연구 개발에 집중함으로써 다양한 빈티지를 생산, 위기를 기회로 삼은 회복탄력성이 강한 곳이다. 지속가능한 와이너리 경영을 위해 SWNZ를 창립했고 환경경영인증도 획득했다. 결국 본질에 집중했을 때 고객이 반응을 한다.     


  둘째, 스토리 텔링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 구축이다. 나는 가족이 경영하는 부티끄 와이너리를 선호하는 편인데 이들이 가진 스토리에 관심이 가기 때문이다. 미션 이스테이트 와이너리는 어마어마한 스토리를 고객이 잘 흡수할 수 있도록 차분히 하지만 생생하게 전달하는 매력을 가졌다. 홈페이지에도 역사 순으로 자신들이 가진 헤리티지를 잘 정리해 두었고 와이너리에서도 지하 창고 갤러리에서 고객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관리를 잘하고 있다. 도서 <픽사 스토리텔링>에 따르면 "스토리는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법 같은 힘"이라고 표현했다. 170주년 라벨을 새롭게 선보이는 등 미션 이스테이트 와이너리는 스토리 텔링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일관되게 잘 관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럴 때 고객은 단순 소비자에서 팬이 된다.    


  셋째, 미션 콘서트 등 체험 콘텐츠 개발로 고객에게 스페셜한 경험을 제공한다. 미션 이스테이트 와이너리는 최고의 호텔,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평가받으면서 한 해 13만 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스팅, 엘튼 존, 에릭 클립튼, 마이클 부블레, 로빈 윌리엄스 등 매년 전 세계에서 유명한 뮤지션들이 참가한 미션 콘서트도 한몫을 하고 있다. 와인 테이스팅 클래스뿐 아니라 매년 뉴질랜드의 유명 셰프들이 모여 파인 다이닝을 제공하는 이벤트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팬이 된 고객들이 재방문할 수 있도록 특별한 체험 콘텐츠를 제공한다면 팬은 팬덤이 될 것이다.  


미션 이스테이트 와이너리의 히스토리를 보여주는 지하창고 갤러리 © 2024 킨스데이


  기후위기 시대에 와인농가들이 큰 도전을 마주하고 있다. 생존의 위기가 될지 도약의 기회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미션 이스테이트 와이너리의 생존 전략이 이들에게도 작은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창밖을 보니 비가 추적 내리고 있다. 이따가 동네 슈퍼마켓에 가서 뉴질랜드산 화이트 와인을 한 병 구매해야겠다. 현지 와인 비즈니스를 조금이라도 서포트하겠다는 마음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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