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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Mar 18. 2024

뉴질랜드라 가능한 맨발 여행

 

  

  뉴질랜드를 여행하다 보면 "맨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바닷가나 잔디 공원이면 그럴 수 있다 치는데 슈퍼마켓이나 레스토랑, 바, 도서관, 일반 아스팔트 도로에서도 그냥 맨발로 걸어 다닌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맨발인 학생들이 있다. 그래서 궁금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왜 맨발로 걸어다닐까?


맨발로 뛰어노는 아이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인터넷 서칭을 해보고 현지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여러 가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The Real World의 케이티 버틀스 씨가 정리한 "Laidback lifestyle tips everyone can take from New Zealand"가 그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이유 두 가지와 내 생각을 추가해서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어릴 때부터 자연 속에서 뛰놀던 라이프 스타일이 어른이 되어서도 지속된다는 것이다. 뉴질랜드는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다. 기후 위기 시대에도 맑은 공기는 기본이고 산과 바다, 호수와 강, 언덕 등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내가 보기엔 완전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자연에서 맨발로 뛰어놀며 자라왔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습관이 남아있어 맨발로 느긋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다. 둘째, 마오리 문화의 영향이다. 뉴질랜드 관광청에 따르면 마오리족은 뉴질랜드 땅에서 천 년 동안 살아온 원주민으로 뉴질랜드의 역사, 언어, 요리, 문화 등 뉴질랜드의 정체성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마오리족에게 있어서 맨발은 자연과 연결됨을 상징한다. 마오리족은 신성한 미팅 장소와 같은 실내에서도 신발을 벗는다. 뉴질랜드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마오리족 인구는 17.3%를 차지한다. 셋째, 히피스런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태도다. 1960년대와 70년대 전 세계적으로 히피 무브먼트가 뉴질랜드에도 영향을 끼쳤다. 뉴질랜드 남섬의 넬슨이 히피의 성지라고 하는데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북섬의 현지인들을 봐도 남을 의식하지 않고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 보인다. 어쩌면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교육 및 경제 상황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여기는 빨리빨리가 없고 느긋하다. 그래서 인종차별도 덜한 게 아닌가 싶다. 헐렁한 티셔츠에 반바지, 신경 쓰지 않는 외모. 해외에 나갔을 때 말하지 않아도 키위들(뉴질랜드인을 부르는 호칭)은 키위를 서로 알아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일까.


  

맨발로 해변가를 걷고 있는 여성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이렇게 원인을 찾아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한 편으로는 그런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의 성장배경과 원주민 문화에 대한 존중, 자유로운 삶의 태도가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키위들을 따라 해 보기로 했다.  한국인 기준에서는 나도 나름 자유로운 영혼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우선 풀메이크업과 브라에서 벗어났다. 과감하게 티셔츠에 레깅스만 입고 다니기도 했다. 거울을 보지 않고 외출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도 이들처럼 맨발로 걸었다. 도심은 위생상 아직 부담스럽고 먼저 동네 해변가에서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해운대에서도 신발을 고집하는 나였지만 이번에는 용기를 내보았다. 발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따뜻한 모래알과 스르륵 와서 나를 적셨다가 스르륵 사라지는 시원한 바닷물의 감촉. 이게 바로 마오리족이 말한 자연과의 교감인가? 해변가의 갈매기들과 하나가 된 듯한 신선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는가. 맨발이었을 때의 부작용을 말이다. 나는 그날 밤 발바닥이 가려워서 잠을 설치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발바닥을 살펴보니 뭔가 누런빛을 띠며 부어있었다. 인터넷에서 서칭을 해보니 해변가에도 보이지 않는 세균과 박테리아로 인해 피부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정보를 발견했다. 키위들과 달리 도심에서 자라서 나에겐 바닷가 환경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로 뉴질랜드에서 어딜 가든 맨발로 걷지 않기로 다짐했다. 뱁새가 황새 따라 하다 가랑이가 찢어진 격이다.   


  한국에서도 작년부터 '맨발 걷기' 열풍이 전국적으로 불고 있다고 들었다.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김범수 인하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맨발로 걸으면 발과 발가락의 반사·감각 신경이 살아나고 근육이 강화된다”면서도 “전체적 건강에 도움 될 수 있지만 맨발이 필수라곤 할 순 없다”라고 말했다. 결국 각자의 선택인 것 같다. 이제는 맨발인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신발이 없나?"라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대신 "저 사람은 피부 면역력이 높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과 여전히 "발을 얼마나 자주 씻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40년 넘게 한국의 위생 문화 속에서 자라온 나이기에 어쩔 수 없다. 결벽증은 아니지만 그냥 내 방식대로 깨끗하게 뉴질랜드 여행을 해야겠다.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는 하루하루가 흥미진진한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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