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킨스데이 Feb 27. 2020

[이번생 마지막여행] 그래, 결심했어. 쿠바!

날이 너무 추워서

2019년 12월 어느 날. 눈이 저절로 떠졌다. 이불 틈 사이를 비집고 수면 잠옷과 내의가 벌어져 노출된 옆구리에 새벽 한기가 슬며시 노크하듯 나를 깨웠기 때문이다. 그것도 알람보다 2시간이나 일찍. 이렇게 당할 순 없지. 몸을 한껏 웅크려 이불을 온몸으로 돌돌 감싼 뒤 다시 눈을 감았다. 알람이 울렸다. 두 번 정도 5분씩 연장하다 마지못해 날씨 앱을 확인했다. 영하 10도. 어쩐지 춥더라. 이불속에서 한참을 꾸물대다 가까스로 용기 내 일어났다. 오늘은 인턴이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이라 함께 근무를 해야 하기에. 이렇게 내게 또 하루를 버텨내야 할 의무가 주어졌다.


퇴근 후 따뜻한 집 거실 바닥에 등을 지지며 부지런히 여러 국가 날씨를 확인한다.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고 싶어서 머리를 굴려본다. 유난히 추위에 약한 나는 이번 겨울도 변함없이 롱 패딩 재킷과 패딩 부츠, 장갑과 마스크로 무장해봤지만 여전히 춥고 시리다. 하와이나 뉴질랜드가 영상 17도 정도로 생각보다 따뜻하지 않았다. 그럼 태국이나 스리랑카? 크게 땡기지 않는다. 좀 더 멀리, 새로운 곳으로 가고 싶다. ㅇㅇ끈 여행사 사이트에 들어가 투어 패키지를 훑어내 린다. 쿠바가 눈에 들어왔다. 현지에서 외국인 여행자들과 조인하는 소그룹 영어 투어 프로그램이었다. 마지막 한 자리가 남았다고 해서 당장 계약금을 보내고 확정을 기다렸다. 며칠 뒤 최종 컨펌을 받았다. 연말이라 저렴한 항공권이 다 팔려 경제적 출혈이 컸지만 그래도 브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을 직접 가 볼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하지만 누가 여행의 시작은 짐 싸기라고 하던가? 설렘은커녕 여행의 끝자락 마냥 짐 싸기를 미루고 미루다가 떠나기 하루 전날 오후부터 거실에 여행가방을 펼쳐두고 이리저리 꼼지락거렸다. 수없이 출장과 여행을 다닌 경험이 있음에도 여전히 내게 짐 싸기란 비닐봉지 가득 찬 냄새나는 음식 쓰레기 마냥 어쩔 수 없이 슬리퍼를 찍찍 끌면서 밖에 나가 버리는 마지못해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해지니 어쩔 수 없이 번개같이 리스트를 작성하고 미드를 보면서 여행 가방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은 호텔이 아닌 홈스테이 형태로 숙박 예정이라 슬리퍼와 얼굴 닦을 타월을 우선 챙겼다. 슬리퍼는 기내에서 갈아 신어 발을 편하게 해주기도 하고 숙박 시설 내에서 샤워실에 갈 때 혹은 바닷가에서 등 요긴하게 쓰인다. 안대로도 사용이 가능하면서 2019년 출장이나 여행 때 공항 등 에어컨이 강한 곳이나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유용하게 사용했던 검정 마스크, 선물용 마스크팩 (K 뷰티의 파워!), 고마움을 전할 때 쓸 땡큐 카드 등을 챙겼다. 쿠바는 전압이 110v로 멀티 전환기도 추가했다.

다음날, 주거래 은행에서 미리 환전한 유로와 여권을 챙겼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힘차게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추위야 안녕! 



지루한 비행과 공항 대기 시간에 대처하는 자세 


쿠바로 떠나는 여정은 생각보다 멀고 지친다. 그래서 하루라도 젊고 건강할 때 쿠바 여행을 다녀올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아에로멕시코 항공을 이용해 서울에서 멕시코 시티를 경유해서 가는 항로인데 서울에서 멕시코 시티까지 13시간 25분, 멕시코 시티에서 쿠바까지 4시간. 그런데 문제는 멕시코 시티 공항에서 대기 시간이 8시간 10분이라는 함정. 아에로멕시코 항공은 스카이팀 소속이라 대한항공 마일리지 적립이 되는 반면 기내식은 엄청 구려서 공항에서 미리 식사를 하거나 테이크 아웃해서 기내에서 먹었다. 기내식보다 인기가 많았던 야식으로 제공된 신라면은 직접 서빙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뒤쪽 어딘가에 쌓아두고 냄새를 맡은 승객들이 하나둘씩 좀비처럼 모여들어 직접 뜨거운 물 받아서 챙겨 와서 먹게 하는 셀프서비스를 진행해 해당 항공사의 운영 노하우에 속으로 웃었다. MSG와 나트륨 과다 섭취를 예방하고자 먹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눈을 붙였다. 멕시코 시티 공항에 드디어 도착했다. 앞으로 8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막막했다. 친구라도 있으면 수다라도 떨면서 시간을 보낼 텐데. 혼자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 차라리 하루나 이틀 스탑오버를 해서 좀 쉬고 나서 쿠바로 이동할 걸 그랬다. 게이트 근처에 팔걸이가 없는 대기석을 잘 찾아서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장기 비행에서 고단했던 몸을 쭉 펴서 등 대고 길게 드러누워 롱 패딩을 이불 삼아 한참을 잤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킬링 타임용으로 가져온 <제인 에어> 원서를 읽다가 스르륵 잠들었다가 깨곤 했는데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게이트 이편 끝에서 저편 끝까지 걸어다녔다. 그렇게 길고 긴 시간을 보냈다. 대기 시간 중간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필요한 쿠바 입국 비자(25 USD)도 구매했다(현금, 카드 가능). 마침내 보딩 타임에 맞춰 쿠바행 비행기에 올라탔고 4시간 후, 드디어 EBS <세계 테마 기행>의 제목이었던 카리브해의 보석, 열정의 나라, 쿠바 아바나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