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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Apr 16. 2024

뉴질랜드에서 로또 복권을 샀다

  얼마 전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안재현이 로또 복권을 구매해 한 주의 액땜을 때우는 장면이 나왔다. 그 장면을 함께 본 무지개 회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우리에게 로또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직장인에게는 한 주를 버텨낼 희망일 것이고, 시니어에게는 노후 자금이 될 것이다. 나에게는 꿈을 이루기 위한 시드 머니 또는 파이어족이나 건물주가 되는 지름길이겠지. 영 앤 리치. 주변에 비트코인으로 파이어족이 된 케이스는 봤어도 로또로 인생 역전한 분은 아직 없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내돈내산으로 로또 복권을 구매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내 인생에서 횡재는 없다"라고 으레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저 근로소득으로 소같이 일해서 돈 버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던 순박한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를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살면서 금융소득과 기타 소득의 중요성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나마 매일 토스 앱에서 재물운, 성공운, 애정운 중 하나를 선택해서 최대 몇 십원(!) 받는 연습을 꾸준히 하는 정도랄까.

 

내 인생 첫 구매한 로또 복권 © 2024 킨스데이

 

  친구가 내일 뉴질랜드 로또 발표날이라며 구글맵을 열심히 들여다보더니 오클랜드 도심 근처의 작은 슈퍼에 들러 트리플 딥 16달러짜리 로또 자동 복권을 한 장 구매했다. 트리플 딥이란 로또와 파워볼, 스트라이크 이 세 가지 당첨의 기회를 한 번에 도전할 수 있는 티켓을 뜻한다. 로또는 숫자 1부터 40 중에서 6개를 나란히 맞춰야 하고, 파워볼은 로또 숫자에다가 1부터 10에서 숫자 한 개를 추가한 것이고, 스트라이크는 로또 번호 네 개를 순서대로 맞추는 것이다. 당첨금은 당첨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데 로또는 최대 100만 달러라고 들었다. 원화로 하면 8억 2천 만 원 정도다. 물론 당첨자가 여러 명 나오면 나눠가져야 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매회 당첨금은 달라질 수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로또에 당첨되면 세금이 없고 외국인도 도전할 수 있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두 번 추첨을 한다. 


   "로또? 그래? 그럼 나도 한 번 해볼까?" 나도 이참에 한 장 구매해 보기로 했다. 뉴질랜드에서는 한국과 달리 로또 복권 금액이 동일하지 않고 16 달러, 18 달러, 20 달러, 25 달러, 30 달러 이런 식으로 가격이 달랐다.  높은 가격이 좀 더 당첨될 확률이 높은 지는 잘 모르겠지만 20달러짜리가 가장 확률이 높다고 쓰여있길래 한 장을 주문했다. 현금으로 50달러를 내밀려고 한 순간 갑자기 "25달러짜리를 살까?" 하는 유혹이 훅 밀려왔다. "아, 어떡하지?" 계산대 직원이 이미 프린트를 했지만 원하면 바꿔줄 수 있다고 말해서 순식간에 내면의 갈등이 시작됐다. 마치 수능에서 답안지를 내기 직전에 2번으로 할지, 3번으로 할지 막판에 찍어야 하는 긴장감과 비슷했다. 게다가 내 뒤에 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아니야. 욕심내지 말자." 그래서 계획대로 난 (이미 프린트된) 20달러짜리로 한 장을 구매했다. "Good luck!" 계산대 직원은 모든 복권 구매자에게 기계적인 목소리로 행운을 빌어줬다.  


 디저트를 먹기 위해 젤라토 가게를 향해 걸어가면서 친구와 나는 달콤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넌 당첨되면 뭐 할 거야?" 친구는 당첨이 되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천천히 신중하게 미래를 대비하는 자금으로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나한테도 말 안 해줄 거야?" "웅, 안 할 거야." "치~." 당첨되면 나는 뭐 하지? 일은 일단 접고 금융소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장치를 해둔 다음 맘 편히 한 달 용돈을 펑펑 쓰면서 세계 여행을 다닐까? 아니면 뉴질랜드에 투자이민을 와서 한국이랑 오가면서 지낼까? 그것도 아니면 비영리 재단을 세워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지원하는 것도 멋질 것 같아.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며 바닐라 메이플 월넛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푹 퍼서 입 안에 넣고는 살살 녹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만 해도 멋지다. 그래서 다들 이 맛에 복권을 사는구나. 그날 밤 나는 기분 좋게 숙면을 했다.     

  

내가 샀던 복권의 로또 파워볼 & 스트라이크 추첨 결과 © 2024 킨스데이

 

  다음날, 친구가 로또 결과를  캡처해서 보내줬다. 나는 떨려서 차마 바로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대신 책상 서랍에 로또 복권을 우선 넣어두었다. 혹시라도 당첨이 됐을 때 잃어버리면 절대 안 되니까. 잘 모셔두어야지. 하지만 오후에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이번에 1등 당첨자가 없어 당첨금이 이월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젠장. 역시 나에게 요행이란 1도 없는 건가? 뒤늦게 티켓을 꺼내 당첨 결과와 비교해 보았다. 비껴가도 이렇게 비껴갈 수가 없었다. 인생역전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큰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내심 허탈했다. 아마 내 인생 처음 로또 복권 구매라서 더 그랬나 보다. 결코 Beginner's luck은 없었다. 그래도 하루 동안 행복했으니 그걸로 만족해야 하는 건가. 비록 로또 대박 당첨의 꿈은 물 건너갔지만 복권을 구매했을 때의 잠깐의 설렘과 기분 좋은 상상 그리고 결과를 알고 나서의 씁쓸함까지 감정의 3종 토털 패키지를 처음으로 제대로 경험한 기회였다. 그래서 로또 복권을 또 살건가?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이월금이 충분히 쌓이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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