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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May 03. 2024

걸어서는 못 가요, 동네 도서관


  서울에 사는 장점은 바로 대중교통이나 걸어서 편의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접근성'이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서관이든 슈퍼마켓이든 영화관이든 교회든 의지만 있으면 어디든 내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다. 특히 재택근무를 주로 하는데 집에선 늘어진다는 이유로, 카페는 시끄럽고 눈치 보인다는 이유로 선호하지 않는다. 대신 30분을 걸어가면 시민대학 캠퍼스 라운지에서 노트북을 펴고 맘 편히 집중할 수 있다. 왕복 한 시간을 걸어야 해서 운동도 되고 쾌적하게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일하는 기분도 들어서 좋다. 하지만 뉴질랜드는 다르다. 의지가 있더라도 차가 없으면 이런 편의시설로 이동하는 게 어려울 때가 많다.


  구글 지도에서 내 주변 동네 도서관을 검색해 보았다. 타우랑가에는 세 곳이 있었는데 그나마 가까운 곳이 마운트 망가누이에 있는 도서관이었다. 차로 9분, 걸어서 1시간 16분. 아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결국 집에서 착실하게 일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대신 오클랜드에 갈 때면 동선에 맞춰 기회가 될 때마다 그 동네 도서관에 들리려고 노력한다. 워낙에 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도서관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는 나름 힐링의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층 성인을 위한 도서 공간. 나무와 노란색 컬러감으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 2024 킨스데이
오클랜드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책을 볼 수 있는 공간 © 2024 킨스데이
도서관에서 열심하 책을 읽고 있는 아이 © 2024 킨스데이

  

  하루는 친구 가족과 쇼핑몰에 갔다가 근처 도서관에 들렸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책을 보며 각자 쉬는 시간을 잠시 가지기로 했다. 도서관을 빠르게 둘러보았는데 흥미로웠던 점은 아이들 책 보는 공간이었다. 오픈 형태로 공간 자체가 상당히 넓으면서 아이들이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곡선을 활용해 가구를 놓고 책을 구성했다는 점과 어른들이 책을 보는 공간과 분리되지 않고 연결이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위치상 1층 건물 안쪽에 있긴 했지만 디자인을 할 때 부모와 아이들이 단절되지 않도록 동선을 고려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대신 2층과 3층이 공부할 수 있는 테이블과 전문 서적을 배치해서 용도에 맞춰 공간을 분리한 것으로 보였다. 또한 공간이 넓어서 그런지 책장과 책장 사이의 간격도 널찍해서 휠체어가 다닐 수 있고 나무와 따뜻한 색감이 드는 컬러를 사용한 것도 차분하면서 쾌적해 보였다.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등 국가별로 해당 도서를 진열한 코너가 따로 있었다. 마치 ’ 모두를 위한 도서관‘ 느낌이라고나 할까. 웹사이트를 보니 “Inclusive library”라고 적혀있었다. 마오리 스태프가 별도 상주하고 있었고 본 적은 없지만 “Mobile library” 도 운영하는 것 같았다. 서울 동네 도서관이 아이보다는 어른과 청소년 중심으로 디자인되고 운영되고 있는 점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클랜드 센트럴 시티 도서관 내부 전경 (이미지 출처: kenny lucky)


  퀸스트리트 근처에 있는 센트럴 시티 도서관은 실내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규모가 상당히 컸다. 사서가 추천한 책들이 서점에서 광고하듯이 입구 한쪽에 멋지게 진열이 되어있고 신규 도서와 테마를 가지고 책을 소개하는 코너도 꾀나 인상적이었다. 여기도 키즈존이 1층 입구의 오른쪽에 오픈된 공간으로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한 아빠가 자녀에게 열심히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 혹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면 어른들도 학생들도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도록 꾸며진 공간과 분야별 전문 서적이 배치되어 있고 디지털 학습 코너와 메이커 스페이스도 있다. 이 밖에도 어르신을 위한 디지털 클래스 운영뿐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첫 번째 이절판 인쇄본과 윌리엄 블레이크가 직접 각인한  원고 등 각종 문화유산도 보유하고 있어 미리 예약하면 투어도 요청할 수 있다고 한다.


  도서관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클랜드 도서관을 몇 군데 방문한 것으로 뉴질랜드의 문화 수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들이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성’의 관점에서 도서관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두를 위한 도서관, 누구나 환영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 그런 도서관이 주변에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나아가 (욕심이지만)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더 바랄나위 없겠다. 다음에 이사할 계획이 있다면 쉽지는 않겠지만 "도세권(도서관에서 5분~10분 거리 지역)"과 같이 접근성도 충분히 고려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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