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킨스데이 Apr 26. 2024

초파리와의 전쟁, 결국 승자는?


   내 절친 중 하나는 나비를 싫어한다. 아니 나비를 포함해서 날아다니는 곤충을 보면 기겁을 하며 몸사레를 친다. 그냥 그 느낌 자체가 싫단다. 뉴질랜드에 살다 보면 곤충에 대해 관대해지고 약간 무감각해지는 경향이 있다. 해충인지 무해충인지 구분해서 웬만하면 다 살려둔다. 이들도 자연 생태계에 일부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집안에서 다리가 엄청 긴 이름 모를 날개 달린 검은 생명체를 맞닥뜨리면 덜컥 겁이 나고 머리카락이 삐쭉 곤두서기도 하다. 여름밤에 코트야드의 문을 활짝 열어두기라도 하면 온갖 종류의 나방이 몰려들기도 한다. 비 오는 날 초록색 사마귀가 창문틀에 매달려 있던 적도 있다. 평소 같았으면 겁이 나서 빽 소리를 지르며 피했겠지만 침착하게 투명 플라스틱 과일 케이스에 담았다가 담장 너머로 날려 보냈다.


  하지만 영어로 'Fruit fly'라고 불리는 초파리는 달랐다. 웬만한 방충망도 통과하는 2~3 mm 밖에 안 되는 작고 검은 생명체. 쓰레기 관리를 조금이라도 소홀이하면 쓰레기통 주위로 순식간에 몇 배 번식을 하며 날아다녔다. 한국에서는 주로 여름에만 음식 쓰레기통 주변이나 다용도실에 놓아둔 숙성된 과일 주변에서 몇 마리 날아다니는 것을 본 수준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2~3일마다 또는 수시로 아파트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통에다 갖다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뉴질랜드에 내가 사는 집에는 쓰레기 통이 세 개가 있는데 부엌에 하나, 화장실에 하나, 거실에 하나가 있다. 특히 부엌 쓰레기통은 발로 누르면 뚜껑이 열리는 형태였는데 여기 관리를 소홀히 하면 초파리들의 집합소가 될 확률이 높았다.


세계에 3천 여 종이 있다는 초파리 (이미지 출처 : PIXABAY)

  

  어느 여름날이었다. 원래 일주일마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새 쓰레기봉투로 갈아 끼웠었는데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그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스무디 만들 때 사용한 바나나 껍질이며 키위 껍질, 달걀 껍데기, 사과 깡치를 포함해서 요거트 통이나 아이스크림 통 등 초파리가 좋아할 만한 먹거리가 쓰레기통에 가득 차 있었던 셈이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초파리들이 신나게 대환장 번식 파티를 벌였다. 부엌의 벽과 찬장이 모두 다 흰색이었는데 여기저기 붙어있는 까만 초파리떼가 장난이 아니었다. 심지어 부엌 옆에 화장실까지 날아다니며 내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닌가. 화장실도 흰색이라 초파리들이 눈에 정말 잘 띄었다. 심지어 침실과 부엌 사이에 있는 코트야드 공간에도 날아다녔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대책이 필요했다. 주말에 손님도 초대했는데 초파리가 날아다니는 꼴을 보일 수는 없었다.


음식물 쓰레기 (이미지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오전에 온라인 미팅을 끝내자마자 두 팔을 걷어붙였다. '초파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우선 부엌 쓰레기통을 끙끙대며 바깥으로 옮겼다. 안에서 뚜껑을 열면 초파리가 온 집안에 확 퍼질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뚜껑을 열었더니 속에 있던 초파리들이 날개를 펴고 확 날아올랐다. 재빠르게 쓰레기 봉지를 꺼내어 밀봉했다. 비닐봉지 안에 붙어있는 초파리들이 보였다. 너희 다 죽었어. 쓰레기 봉지를 들어다가 월요일 오전마다 수거해 가는 커다란 플라스틱 쓰레기 분리수거통에 던져 넣고 즉시 뚜껑을 닫았다. 새로운 비닐봉지를 씌어놓고 쓰레기통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이제는 날아다니거나 앉아있는 초파리 차례다. 손으로 일일이 잡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냥 살려두려고 해도 이것들이 부엌 주위를 떠돌아 다녀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고 위생상 바람직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에프킬러 같은 스프레이를 사용하기로 했다. 마스크를 쓰고 눈에 보이는 초파리 한 마리씩 겨냥해 '치지직' 죽음의 샤워를 시켜주었다. 박멸인가? 속이 다 후련했다. 다음 날, 초파리 몇 마리가 여전히 부엌 주변에 날아다녔다. 역시 끈질기군. 초파리를 발견할 때마다 고무장갑을 끼고 압사시켰다. 화장실에 세면대나 거울, 샤워 부스에 있는 것들은 물을 뿌려서 저 세상으로 보냈다. 이후로 과일 껍질 같은 음식물 쓰레기는 그냥 쓰레기통에 바로 버리지 않고 당근 봉지나 샐러드 봉지를 말렸다가 거기에 담아서 밀봉하는 방식으로 이중처리를 했다. 다행히 한동안 초파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초파리와의 전쟁에서 승자는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언제든지 모습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긴장을 늦춰선 안됐다. 결국 음식물쓰레기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벌레를 이용해 컴포스팅을 할 수 있게 특수 제작된 음식물 쓰레기통 'Hungry Bin' © 2024 킨스데이

  

  작년에 쿠아오투누(Kuaotunu) 지역을 여행할 때 방문했던 가정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모았다가 퇴비로 발효시켜 채소를 재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웰링턴에 사는 친구 집에서도 특정 애벌레를 특수 제작된 음식쓰레기통에다 넣어 키우면서 그 벌레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배출한 검은 용액을 모아 화단에 주는 '자원순환'방식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었다. 어쩌면 초파리와의 전쟁은 단순히 에프 킬러를 사용해서 일시적으로 없앨 게 아니라 친환경적이면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어떻게 하면 음식물 쓰레기양 자체를 줄일 수 있을까도 고민하게 됐다. 이렇게되니 나의 식습관과 장보기도 점검하게 되었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제한된 공간에서 비용과 시간, 생활 습관과 소비 습관과도 연결되는 이 작지만 중요한 문제라 어떤 방식이 내 상황에 적합할지 관련 정보를 좀 더 찾아보고 주변에 자문도 구해보기로 했다. 이 생태계 안에서 서로 공생,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매거진의 이전글 <눈물의 여왕>도 응원한 자급자족 슬로 라이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