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만 사는 사람
작심삼일 프로젝트2. 새벽형 인간
새벽형 인간이 되려 애쓰던 시절이 있었다. 타의에 의해서 고등학교 시절, 일찍 일어나야 했다. 엄마가 아침밥을 먹어야 집중력이 높아지고, 쑥쑥 큰다며 자신보다 8CM나 더 크고(이미 그때 168CM였다), 몸무게도 8KG쯤 더 나가는 내게 김에 신김치와 밥을 넣은 김밥이라 부르기에 다소 애매한 형태의 김밥을 입 속 쏙쏙 넣어줬다. 밥을 오물오물 먹으며 그저 더 자고 싶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대학생이 되며 가진 수많은 로망들은 그저 로망으로 남았지만, 잠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는 반증인가. 뭐, 인간이 꼭 치열하게 살고, 줄줄이 비엔나 같은 자격증과 스펙들을 쌓고, 취업에 성공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깐, 지금은 충분히 잠을 잔 그때의 나를 딱히 원망하진 않는다.
직장을 다닐 때는 내 밥벌이를 한다는 사실에 자긍심과 서글픔 사이를 줄다리기 했다. 좀더 나은 밥벌이를 위해 새벽형 인간이 되고 싶었다. 새벽에 일어나 영어공부를 하고, 독서도 하고, 수영도 배우고 싶었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자극을 받아 며칠 쯤은 그랬다. 그때는 새벽형 인간이 되기도 했고, 짠순이 인간이 되기도 했고, 올빼미형 인간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지금 당장 피곤해죽겠다는 하소연으로 체념했다. 밥벌이가 우선순위였으므로 계약서가 없는 일들에 쉽게 포기했다.
두 아이를 키울 때도 가장 간절히 바란 건 ‘잠’이었다. 아기들의 시간은 24시간이 아니라 3~4시간 으로 이루어져 먹고, 자고, 놀고, 싸는 걸 반복할 뿐이다. 즉, 2시간 이상 자기 힘들었다. 특히 의지력 약한 내게 ‘잠’은 거의 포기해본 적 없는 욕구였기에 꽤나 고달팠다. 남들은 전업주부가 되어서 엄마나 아내, 주부가 아닌 오로지 ‘나’로서의 욕망이나 욕구는 없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런 게 없었다. 내가 선택한 일이었다. 어설프게 어느 걸 욕심내기엔 두 아이를 키우고 살림하는 것조차 벅찼다. 순수하게 ‘잠’을 충분히 잘 수 있고, 하루 한 잔의 커피와 30분쯤의 독서시간만 있으면 행복했다.(물론 첫째 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까지 나는 치열한 프리랜서로 살았고, 그때 나의 한계를 느꼈다.)
새벽형 인간은 욕심이 아닐까, 충분히 잠을 잔다는 것도 일상의 행복이 아닐까, 늘 생각해왔지만 삼일쯤은 나도 부지런한 인간이고 싶었다. 삼일쯤은 새로운 꿈을 꾸고 싶었다. 그 꿈에는 남편도 두 아이도 없다. 오로지 나만이 존재한다. 새벽의 시간은 오로지 나만의 시간이다. 하루에 한 시간쯤은 그런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도전해보자.
6시 30분에 일어났다. 어둡다. 기지개를 쭉 폈다. 부엌으로 가 물을 팔팔 끓이고, 커피를 내린다. 노트북을 켠다. 오랫동안 켜지 않았다. 그리고 쓴다. 그저 써보기로 했다. 나의 노트북에는 쓰다 포기한 글들이 많다. 어떤 글은 A4로 100장이 넘었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대부분 10장을 넘기지 못했다. 쓰다 보면 재능이 없고, 내 글이 너무 구리고, 그저 읽는 사람으로서 충분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깨끗하게 포기했었다. 새벽에 일어나 이전의 글들을 보면서 나는 내 글이 구리다는 걸 인정했다. 다른 사람에게 내 글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나를 위해 삼일 동안은 쓰기로 했다. 목표 같은 건 없다. 꾸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저 쓰면서 나의 마음 저 깊은 곳으로 내려가고, 나를 완성해갈 수 있다.
7시 30분 둘째가 나와 안긴다. 쉬를 시키고, 귤을 준다. 첫째 날, 나에게 주어진 아침 시간은 딱 한 시간,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날 하루 종일 솜사탕 위를 걷는 것처럼 푹신하고, 달콤했다. 나를 위한 시간이 글을 쓰는 시간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 다음 날도 6시 30분에 일어났다. 기지개를 켜고, 뜨거운 커피를 끓이고, 노트북을 켰다. 글을 조금 쓰고,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과 짧은 대화도 나눴다. 두 아이 모두 8시에 일어났다. 어제보다 나만의 시간이 길었다. 꼭 해야 하는 숙제를 일찍 끝낸 것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내가 기특했다. 그러나 오후 시간이 힘들었다. 점심 무렵부터 몸이 무거웠다. 좀비처럼 침대에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새벽형 인간으로 살려면 하루 커피 한 잔이 아니라 두 잔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밤에는 일찍 잠들어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마지막 날은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둘째가 독감 주사를 맞고 컨디션이 나빴다. 새벽 내도록 끙끙 앓거나 깨는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커피 두 잔을 마신 탓인지 전날 밤 잠들기가 힘들었다. 그대로 누워 한 시간쯤은 더 자고 일어나고 싶다 생각했지만,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힘을 냈다. 마지막이 있다는 것, 나의 달리기가 50m쯤으로 짧다는 것이 포기하지 않는 힘을 주었다.
기지개를 한번 켜고, 커피를 내리고, 노트북을 켠다. 피곤한 만큼 커피가 맛있다. 뜨거운 커피 한 모금에 몸이 따뜻해진다. 창밖을 바라본다. 3층으로 이사온지 한 달, 단풍이 찬란하다. 어제 서준과 함께 집으로 올 때 단풍을 보면서 노래를 불렀다. ‘빨갛게 빨갛게 물들었네. 노랗게 노랗게 물들었네.’ 두 마디를 부르고 서준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 다음은 뭐야?’하고 물었다. ‘음… 초롷게 초롷게 물들었네.’라며 웃으며 불렀다. 하긴 모든 나무가 빨갛고, 노랗게 물드는 건 아니니깐. 여전히 초록빛으로 서 있는 나무도 있으니깐. 집으로 돌아와 우리가 불렀던 동요를 찾아봤다. 나는 제목도 모르고 있었다.
제목은 ‘가을 길’.
노랗게 노랗게 물들었네. 빨갛게 빨갛게 물들었네.
파랗게 파랗게 높은 하늘 가을길은 고운 길.
트랄랄라 트랄랄라 트랄랄랄랄라 노래부르자.
산넘어 물건너 가는 길 가을 길은 비단길.
동요는 솔직하고 귀엽다. 오늘 아침 서준과 함께 단풍을 걸으며 학교로 갈 때 가을 길 노래를 함께 불러야겠다. 삼일의 마지막 아침은 가을 길을 흥얼거리며 창밖의 단풍을 보며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날이었다.
내일은 토요일, 늦잠을 잘 수도 있다. 그러나 한달 중 스무 날 정도는 아침에 일어나고 싶다. 한 시간정도의 시간도 결코 짧지 않은 행복의 시간이었다. 단, 하루에 커피는 한잔만 마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