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만 사는 사람
작심삼일 프로젝트 1 : 만 이천보 걷기
둘째를 낳은지 3년이 다 되어간다. 지금 몸무게는 임신 8개월째의 몸무게다. 처음 아이를 낳았을 때 백일만에 원래의 몸무게로 되돌아갔다. 고무줄처럼. 그러나 둘째를 낳고는 좀처럼 몸무게가 줄지 않았다. 그 이유를 예측해보자면 나이가 들어서 쉽게 살이 빠지지 않는 것과 두 번째 육아를 하므로 긴장감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가장 큰 이유는 잘 먹었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살이 찐 몸 그 상태로 살을 빼기는 커녕 먹고, 또 먹었다. 힘들어도 먹고, 즐거워도 먹었다. 그로 인해 나는 임신 8개월째 몸무게, 아니 이제는 그냥 내 몸무게로 정착했다. 건강검진을 하면 몸무게는 아슬아슬하게 적정체중에 걸쳐지지만 근육량이 적고, 체지방량은 평균 이상으로 나온다.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가장 간단히 할 수 있는게 뭘까? 지금으로서는 걷기다. 오직 내 다리와 시간만 필요하다. 걷기라면 장소도 시간도 제한이 없다. 그래, 걷자. 그렇다면 얼마나 걸어야 할까? 만보는 적은 것 같고, 이만보는 많은 것 같다. 라면 한 개는 420칼로리다. 420칼로리를 소모하기 위해서는 만 이천보를 걸어야 한다. 만 이천보를 걷기 위해서는 2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래, 만 이천보를 걷자. 운동이 되려면 라면 한 개 칼로리는 소모해야 한다며 호기롭게 첫번째 계획을 세웠다.
나의 만 이천보는 오직 걷기에 집중하며 채워지진 않았다. 나의 하루 걷기의 시작은 아이의 등굣길이다. 여덟 살 첫째 아이와 손을 잡고 학교로 간다. 집에 학교까지의 시간은 10분 정도. 나는 아이를 데려다 주고 돌아와야 하므로 20분을 걷는다. 걸음 수로는 약 이천보다. 그 다음은 둘째를 등원 시킨다. 두 아이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오전 10시. 이미 나의 걷기는 삼천보를 기본값으로 한다. 그 다음은 하교다. 아이의 하교는 보통 1시 전후다. 나는 또 이천보를 걷는다. 거기에 놀이터나 도서관, 태권도를 함께 간다. 특히 태권도 가는 날은 쉽게 만보를 달성했다. 태권도장까지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와 1시간정도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또 태권도에 데리러 갔다가 집으로 와야 한다. 두 번을 반복하면 이미 만보는 훌쩍 넘는다. 나는 하루 평균 등하원을 6번정도 왕복한다.
문득 지금 나의 인생은 아이들의 등하원하는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구나 싶었다. 두 아이를 끊임없이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는 일. 그러나 ‘안전’에 있어서는 쉽게 타협할 수 없다. 학교와 태권도장까지 신호등을 건너지 않는 직선거리다. 내가 여덟 살 때는 학교도 혼자 다녔다. 아홉 살 때는 두 정거장 거리의 학교에 도보로 걸어가거나 버스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아이는 여전히 나의 손을 잡고 등교하고 하교하길 바란다. 그게 중요하다. 아이의 마음. 한편으로 엄마와의 함께하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나의 손을 놓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고, 방문을 닫고 방에서 나오지 않으려는 시간. 그러니 지금을 소중히 여기자고 생각했다. 자유는 그때 충분히 누려도 된다. 나는 네가 자유를 원할 때 혼자만 있길 원할 때 기꺼이 환영하며 나도 나의 자유와 오직 나만의 시간을 누릴 것이다.
아이의 발걸음에 맞춰 걷는 게 과연 운동이 될지는 모르겠다. 길을 걷다가 떨어진 단풍잎을 주우며 단풍방석을 만들어 보겠다는 아이, 편의점에 들려 따뜻한 베지밀B와 킨더조이 초콜릿을 사서 나눠 먹던 시간, 우리의 짧은 산책들은 가을 햇볕처럼 빛나는 시간이다. 아직은 나의 손보다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걸었다. 일부러 더 멀리 돌고 돌아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때로는 만 이천보를 채우기 위해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가기도 했다. 차를 타고 가기엔 가깝고, 걷기에는 살짝 먼 거리라서 일부러 찾아가지 않았던 카페였다. 그러나 가을 바람을 느끼며 망월천을 가로 질러 걸어갔다. 왕복 50분. 평소에는 집에서 커피캡슐로 아메리카노를 마시지만, 라떼만큼은 카페에서 마신다. 커피 한잔의 가격이 결코 싸지 않으므로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바깥에서 커피를 마실 때면 정말 맛있는 라떼를 마시고 싶었다. 향과 맛이 끝내주는 라떼 한잔을 마시며 나는 기꺼이 지갑을 열고, 행복을 산 기분이었다. 라떼를 들고, 망월천을 가로 질러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행복했다. 물론 살을 빼려면 라떼가 아니라 아메리카노를 마셔야하지만.
삼일 동안 가볍게 만 이천보를 걸었다. 걷기 앱에서 라면 한 그릇의 칼로리만큼 걸었다는 메시지를 볼 때 황홀했다. 라면 한 그릇 크기만큼 열심히 산 기분이었다. 몸도 더 가벼워진 것 같았다. 물론 몸무게 변화는 거의 없었다. 곰이 웅녀가 되기 위해 백일동안 쑥과 마늘을 먹었다. 사람이 변화하는데 삼일이 아니라 백일이 필요하다. 아니 그 이상의 인내심과 노력을 갈아 넣어야 한다. 웅녀를 생각하다 나는 왜 곰이 사람이 되려했을까 궁금해진다. 사람으로 사는 건 힘든 일인데… 만약 신이 나에게 백일동안 쑥과 마늘을 먹으면 곰이 되게 해준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숲에 살면서 겨울잠도 자는 곰. 몸무게도 다이어트도 필요없겠지. 털도 있으니깐 겨울도 따뜻하고 늘 푹신푹신하겠지. 나는 신에게 말할 것이다. ‘쑥과 마늘은 못 먹겠어요. 대신 쑥떡과 쑥국, 알리오올리오와 마늘빵으로 대신할 순 없을까요?’ 이러니, 이번 생은 날씬해지긴 글렀다. 그러나 종종, 만 이천보를 걸으며 가벼운 성취감을 맛봐야겠다. 뚱뚱하다고 이번 생을 망친 것도 아니고 불행한 것도 아니니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