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CASE STUDY : 노동 인식 편향
새해를 맞아, 파인 다이닝에 갔다. 그런데 만약, 주문한지 3분 만에 음식이 나온다면 어떨 것 같은가?
A : 어머 이렇게 빨리 갖다 주시다니! 여기 빠르고 너무 좋다
B : 뭐야? 누가 잘못 주문해서 회수한 거 갖다 주는 거 아니야?
A를 고를 사람은.. 없겠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기다리는 걸 싫어한다. 그러나,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과 같이 기대치가 높은 작업에 대해 그 과정이 너무 짧으면 의심을 한다. 금전 거래, 세금 계산, 보안 점검과 같은 분석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그럼 어느정도의 대기 시간이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까? 여기서 중요한 건,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 보다는 작업 프로세스를 보여주는 것이 신뢰도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너무 과하게 긴 대기 시간이 아닐 경우의 얘기다.)
그 파인 다이닝이 오픈 주방 시스템이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주문을 하고, 주문이 주방에 접수가 되면, 웍을 휙휙 돌리며 요리를 하는 쉐프를 볼 수 있고 그 다음에 요리가 나온다. 요리가 오래걸리더라도, 앞에 주문이 밀렸더라도 그들의 요리과정을 보고 있으면 왠지 안심이 된다. 음식이 늦게 나오는 것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눈에 보이니, 분노가 쉽사리 생기지도 않는다.
실제로 사람들은 오픈 주방에서 만든 음식에 대해 22% 더 높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겨우 요리 과정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더 오래 기다릴 수 있고, 결과물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지는 것이다.
이게 오늘 말하고자 하는 ‘Labor Perception Bias : 노동 인식 편향’ 이다. 사람들이 뒤에 숨어있는 작업 과정, 즉 노동 프로세스를 볼 수 있을 때 그 결과물에 대해 더 신뢰하고 가치를 부여한다는 이론이다.
Labor Perception Bias(노동 인식 편향)은 사실, Labor Illusion(노동 착시, 노동 환상 등으로 직역할 수 있지만, 실제 어떤 단어로 정의되는지는 찾지 못했다.) 개념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illusion' 이라는 단어는 환상, 착시 등 속임수를 암시하지만, 실제 이 개념은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이기 때문에 perception (인식) 이라는 단어로 대체했다.
그런데, 노동 과정을 보여주는게 왜 ‘속임수’ 라고 불리는 걸까?
노동 인식 편향의 효과를 아는 기업들이 실제 노동 시간과 상관없이 고객들을 인위적으로 대기 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위적인 지연을 통해 결과물에 대한 고객의 신뢰도를 높이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Tinder(틴더)는 데이팅앱이다. 내 이상형, 취향 등의 정보를 입력하고 사진을 업로드 하면 그에 맞는 상대방을 매칭시켜주는 것이 핵심 서비스이다.
왼쪽 예시는 내 사진을 업로드 하고 아무런 대기 없이 바로 매칭시키는 경우고
오른쪽 예시는 인위적으로 대기를 시키면서 서비스가 매칭하고 있는 화면을 먼저 보여준 후에 추천된 상대방을 보여주는 경우다.
틴더에 등록된 회원들의 데이터와 내가 입력한 데이터를 모조리 분석해서 맞는 사람을 매칭시켜주는 그 과정이 그렇게 단순해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왼쪽처럼 내가 입력하자마자 바로 결과값을 보여준다면, 과연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있을까? 오른쪽은 정말 단순한 애니메이션이지만 서비스가 열심히 분석하고 매칭시켜주고 있는 그 과정을 연상시킨다.
알고나니, 괜히 틴더에게 속은 느낌인가?
꼭 그렇게 억울해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우리도 일상에서 종종 이러한 속임수를 쓰기 때문이다.
메일을 보낼 때, 바로 '보내기'를 누를 수도 있지만, 발송되는 시점을 예약해두는 Schedule send 기능으로 나중에 전송할 수도 있다. 이 기능은 주말이나 늦은 밤 시간대를 피하려고 사용하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답장을 지연시키기 위해 쓰기도 한다. 중요한 메일에 대해 너무 빨리 답장을 하는 경우, 상대방이 자동 답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심사숙고를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Key action 직후에 바로 결과값을 띄우는 것이 아니라 labor screen(노동 과정 화면)을 중간에 먼저 보여주기
간단하게 말하면, 그냥 서비스 작동 과정을 보여주는 UX 라는 건데, 이런 간단한 UX 전략으로 우리는 두 가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1. 고객을 안심시킨다.
2. 고객 인지 가치 (Customer Perceived Value)*를 15%까지 높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고객 인지 가치 (Customer Perceived Value) 란, 소비자가 제품/서비스에 대해 기대하고 있는 정도를 의미하며 이는 곧 지불하고자 하는 가격으로 환산되기 때문에 기업의 성공과 직결되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아래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소비자로 하여금 노동 과정을 인식하게 만들었을 때(초록색)가 그렇지 않을 때(빨간색) 보다 15% 더 높다.
이렇게 입증된 효과가 있는데다가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스크린만 중간에 띄워주면 되는 간단한 UX라서 거의 어느 서비스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국내 서비스 예시도 한 번 살펴보자.
토스와 카카오 페이 모두, 돈을 송금할 때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며 잠깐의 지연을 시킨 후, 송금이 완료 되었다는 메세지를 띄운다. 왼쪽 사진에서 빨간색 원으로 표시한 부분이 아이콘 모션이 작게 재생되는 부분이다.
사실 너무 짧은 애니메이션이라서 이게 과연 적합한 예시인가 고민했다. 하지만 간편 송금의 경우, 사실 상 ‘송금하기’ 버튼을 누른 후 바로 ‘완료’ 창을 띄울 만큼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 작업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자. 바로 완료 표시를 하는 대신 잠깐이나마 지연을 시켜서 사용자에게 일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신뢰감을 주고 안심시킨다.
간절히 기다리는 택배가 오늘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배송 예정이라는 문자를 받고나면 더 초조해지고 기다려지는 마음, 다들 알 것이다.
그래서 CJ택배와 한진택배는 위 사진처럼 배송 기사가 어디서 출발해서 어떤 루트를 거쳐 도착할 건지, 현재 위치는 어디인지 등을 알려준다. 3시에서 5시 사이에 배송 예정이라는 정보를 텍스트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시각화된 루트를 보며 내가 택배를 받기까지 어떤 과정이 소요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더욱 안심된다.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는 어쩌면 택배보다도 더 기다리게 만드는, 음식 배달 서비스다. 그래서 이러한 진행과정을 시각화 하는 페이지가 필수이다. 여기서 궁금한 건, 보여주는 진행과정이 진짜 실시간 작업을 반영하는지다. 그냥 처음에 설정한 예상 배달 시간에 맞춰 적절한 타이밍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거 아닐까?
실제로 도미노 피자도 온라인 주문을 하면, 주문 후 과정을 보여주는데 실제 시간이 아니라 평균 주문 처리 시간을 기준으로 한 근사치를 보여준다고 한다.
이와 같이, ‘가짜 대기 시간’은 소비자를 속이지만, 결국 만족시키기 때문에 미시건 대학교의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교수 Eytan Adar는 이를 ‘호의적인 속임수(Benevlonet deception)’ 이라고 명칭했다. 소비자 기만 디자인 (deceptive design)이나 다크패턴 디자인(dark pattern) 과는 또 다르게 분류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모든 labor screen이 사용자를 안심시키는 ‘호의적 속임수’는 아니다. 오히려 사용자를 조종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한 한 가지 예시가 있다.
클럼프와 트럼프 대선 때의 일이다. 뉴욕타임즈에서 국민들의 데이터를 취합하여 어느 쪽이 이기고 있는지 보여주는 스크린을 만들었다. 위 영상에서 볼 수 있듯 바늘이 1초당 10번 움직이며 굉장히 빠르게 양쪽을 왔다갔다 한다. 그런데 사실 데이터는 15초마다 업데이트 되기 때문에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면 바늘이 그렇게 빠르게 움직일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이 페이지를 들락날락 거리며 불안에 떨었다. 뉴욕타임즈는 대중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이 화면을 통해 웹페이지에 대한 참여율, 페이지뷰, 그리고 사이트에 머문 시간을 증가시켰고 결국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몇몇 독자들은 이 페이지의 소스코드를 분석하여 바늘이 무작위로 흔들리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트위터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이 페이지를 디자인한 Gregor Aisch는 바늘이 예보의 오차범위 내에서만 움직였다고 변명을 했지만, 뭐가 됐든 그 선거 바늘이 미국 전역의 사람들에게 심장마비를 일으킬 뻔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위와 같은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노동 인식 편향을 이용한 UX전략을 세울 땐 몇 가지를 체크해봐야 한다.
1. 너무 긴 대기가 필요하진 않은지
- 30초 이상의 대기는 고객 인식 가치를 오히려 손상 시킨다.
2. key action과 무관한 애니메이션 혹은 텍스트를 넣은 건 아닌지
- 이러한 속임수는 부정적인 사용자 경험을 유발한다.
3. 사용자의 기대치가 높지 않은데 굳이 진행상황을 보여주는 건 아닌지
<사용자 기대치 측정 테스트>
사용자가 어떻게 느끼는가? (기대, 희망 등)
인지된 가치는? (투자한 돈, 시간 등)
사용자의 리스크는? (결제, 개인정보 제출 등)
사전에 고객 조사를 통해 key action 직후 사용자의 감정이나 기대치 등 상태를 조사할 수도 있지만, 작업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 UX와 보여주는 UX의 A/B테스트를 통해 이 전략을 사용하기에 적합한 지점인지 확인해볼 수도 있다.
노동 인식 편향은 어느 서비스에나 쉽게 적용할 수 있는 UX이론 이라서 사례를 다양하게 찾을 수 있었다. 위에 소개한 사례 외에도 비행기표를 찾아주는 네이버 항공권, 스카이스캐너나 최저가 호텔을 찾아주는 부킹닷컴, 카약 등에서 의도적인 대기를 확인했다.
적용하기 쉬운 UX 전략인만큼, 그저 잠깐 스쳐가는 애니메이션, 혹은 progress bar가 아닌 정말로 사용자가 안심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내용 출처
https://growth.design/case-studies/labor-perception-bias
https://www.theatlantic.com/technology/archive/2017/02/why-some-apps-use-fake-progress-bars/517233/
https://www.educative.io/answers/what-is-the-labor-illusion-eff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