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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샛별 May 29. 2020

#1. ‘입 모양’이 보일 때까지

‘못’ 듣는 사람이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기

유난히 청개구리로 살아가고 싶었던 유년기



선천적으로 ‘달팽이관 기형’을 안고 태어났을 때부터 ‘소리’는 당연히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도 나는 ‘소리’를 ‘빛’과 ‘진동’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청각이 아닌 시각에, 보는 것에 의지하며 자랐다. 그러다 보니 빛이 별로 없던 어두운 곳과 밤늦게 길을 걷는 일이 두려웠다.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일에서도 미세한 표정의 변화까지 신경써야 했다. 수어를 만나기 전의 내 습관은 늘 일정했다. 사람을 처음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보는 신체부위가 ‘입 모양’이었다. 입 모양에 이어 표정까지 번갈아 가며 흘러가는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열심히 유추해야 했다.


엄마, 아빠의 ‘입 모양’이 말하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을 때까지는 충주 성심학교에서 입술을 읽는 ‘독순 교육’을 받았다.


독순술  
1.
교육 =독순법(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을 보고 상대편이 하는 말을 알아내는 방법).
(네이버 국어사전)


아들 예준이가 ‘엄마’라고 처음 불러준 시기가 대략 돌이 되기 전이였는데 나는 독순 교육을 받으면서 두 살이 다 되어 비로소 ‘엄마’라는 말을 처음으로 말하기 시작했다던 친정어머니의 기억은 미안하지 않아도 될 일인데 괜히 미안해지면서도 아련했다.


언어 습득 시기인 옹알이 시기가 지나고 나서 언어 훈련이 필요해 특수학교 유치부에 6살 때까지 다니며 입 모양을 보는 방법과 내 목소리로 대화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그 기간을 거친 농인들이라면 큰 공감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지옥훈련’이라기 보다는 그 당시의 엄마, 아빠는 단호하게 가르치지도 않았고, 엄격하지 않았다. 그저 친근하게 ‘언어’와 가까워질 수 있도록 나를 대해 주셨다.


“네가 하고 싶고, 보고 싶은 대로 자라면 충분해.”

그만큼 나도 자라면서 부모의 언어와 문화를 체득하려고 애썼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언어가 ‘한국어’였다.


농인 부모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농인 자녀에겐 첫 번째 언어가 ‘수어’가 될 수 있었던 만큼 내 가족이 쓰는 언어가 ‘한국어’인 만큼 나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 지금의 나는 엄마로서 소리의 세계를 알아가는 아들 예준이의 언어를 존중하려고 애쓴다.


예준이는 이미 태어나서부터 두 언어를 배울 수 있게 됐다. 소리의 세계에서 쓰는 언어인 ‘한국어’와 부모의 언어인 ‘한국수어’를 번갈아 사용할 수 있는 가정에서 태어난 축복을 누리게 됐다.


물론 자라면서 부모의 언어와 사회의 언어를 모두 이해하는 데에 많은 혼란과 상처를 받을 에준이에게 엄마로서 느끼는 감정은 늘 마음이 아린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부모가 되기 이전부터 겪어온 사회의 인식과 차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 때의 차별과 인식은 다르게 예준이가 받을 차별과 인식은 또 다른 느낌이라고 짐작할 수 밖에 없다.

마치 어릴 때의 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신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음처럼.


함께 보는 세상이 더없이 너에겐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찍었던 순간


사회에서 ‘농인 부모’를 향한 시선이 늘 부정적이고 차별일까 할까 하는 이야기는 예준이가 아직 이해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아들이 하는 모든 이야기마다 최선을 다해 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노력파 엄마다. 아들에게 엄마고, 남편에게 아내인 만큼 남편과 아들의 이야기마다 눈을 맞추며 나누는 이야기는 늘 공감이 되고 마음이 닿는다.


아들의 입 모양마다 내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맞춰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어린 시절마다 늘 사랑을 말하고 싶었던
엄마와 아빠의 마음이
내 마음속으로 쏙 스며들었기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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